2020년 연남동, 그리고.

 

"혁명은 없고, 착취는 영원하다."




1990년대, 종로 한복판에서 노동절 집회의 대오가 지나간 후, 그 종로 거리의 어딘가 한켠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벽에 쓰여있는 구호가 아니다. 맞아, 아마 그 시절 목격했더라면, 약간 얼치기 같은 어설픔을 느꼈을 것 같다. 대학 들어와서, 사회과학 책을 막 접한 새내기가 아직 사회과학적 문법도 익숙하지 않은 채 써 내려간 글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90년대 중후반에도, 유려한 혁명의 문체로 문학적 서사를 쏟아내던 무수한 익명의 그들이 있었으니. 사실 저 몇 마디 문구는 어설프기 그지없다. 그 당시의 시선으로 보면 말이다.


이미. 혁명의 시대가 아니라, 퇴각의 시대…. 라는 자조적인 읊조림을 되뇌어온 지도…. 20-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가 대학 새내기시절. 메이데이 집회에서 최루탄이 터지고, 꽃병이 날아다니고, 쇠파이프가 아스팔트 위에서 둔탁한 무게감을 확인시켜주던 그때, 울려 퍼지던, 혁명의 노래들…. 예를 들면, '혁명의 투혼'. 으아아아. 여전히 가슴 뛰게 만드는 그 노래에서의 '혁명'이라는 단어. 혁명... 혁명... 혁명.  그때 그 시절, 나에게 혁명이라는 단어는,  내가 가슴 가득 받아 안고는 싶은데 왠지 낯설고 영원히 품을 수 없는 단어일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혁명이라는 단어를 오롯이 가슴속에 품을 수 있는 척하고 싶었다.  그때 나는 스무 살 청춘이었으니까.


흔히 말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대기업에 다니는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의 보살핌 아래서 크게 부족할 것도 없고, 또 그렇다고 아주 충만하지도 않은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내가 느꼈던 '혁명'에 대한 감상. 어찌 보면 마음속 깊숙이 진정 혁명을 믿지 않으면서도, 혁명을 외쳤던 20대 청춘은... 혁명을 외치는 해방구적 공간 안에서, 사회적인 예속과 억압에의 해방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으으으…. 이런저런 주절거림이 길었다. 그냥, 딱 보고 심쿵했던 순간에 대한 포스팅이라.




그런데, 내가 이것을 목격한 것은... 2020년의 6월의 어느 날 아침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즈음 핫플레이스라는 연남동의 어느 곳.


딸아이 유치원 등원시켜주면서, 아직은 이른 시간. 문 열지 않은 음식점의 외부 주차장 벽의 모습.


그냥... 혁명이란 모습을 마주한. 마음만은 스무 살 그때 그대로인, 43살 청년(?)의 감상이라고 해둡시다.


딸아이 등원시키면서, 유치원 버스 오기 전까지,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그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었답니다. ^^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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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시간의 지층을 우리는 '세월'이라 칭한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그 거센 물결 속에 서 있을 때는 세월의 위력을 잘 체감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 잠시 무중력상태의 진공과도 같은 균열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퇴적층의 단면을 바라보게 되는 찰나와 같은 순간, 우리는 세월이라는 존재의 위력을 체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 그대로인데, 변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느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보던 내 얼굴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 나는 세월의 민낯과 마주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것.



거울 속에 앳된 얼굴의 아이가 있다. 마냥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그 아이는 연신 웃는 얼굴이다. 그러다 그 아이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호기롭게 담배를 문 대학생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울긋불긋 벌게진 청년의 얼굴도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는 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내가 오버랩되면서,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수염 까칠까칠, 웃으면 누가에 잔주름도 보이는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서 있다. 아뿔싸. 저게 나구나.


그런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슬픈 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변화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사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대개 늘 같아 보이기 마련이거든.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조차, 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공간의 균열이 생기는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선사해주는 진정한 비극은,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늙어가고,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게 참 슬픈 일이더라. '네 나이 먹는 것은 생각 안 하냐?'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제 나이 먹는 것'은 잘 생각 못 하기 마련이거든.


젊고 강하고 매력적이던 아빠, 엄마는 자글자글 주름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렸고, 젊음의 에너지 가득하던 청년이고 아가씨였던 '나의 어른들'은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나의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입관하던 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죽음'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실체화된 모습에 대한 낯섦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내가 알던 나의 세상, 그 세계의 한 축을 짊어져 오던 친숙한 존재가, 영원히 퇴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서글픔과 허망함이었다.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떠밀려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 역시 그렇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그 시절 '나의 어른들'에게 거금 1000원을 받고 300원을 쓴 어린 꼬마아이. 거스름돈으로 남은 그 크나큰 700원을 어찌할 바를 몰라, 남의 집 대문  앞 계단 위에 일곱 개의 동전을 고스란히 쌓아놓고 집으로 돌아오던 유치원생 아이가,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되었으니, 그만큼의 세월만큼 '나의 어른들'도 저만치 앞으로 걸어 나가신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할게다. 그렇지만 그 퇴적된 시간의 단면을 체감하는 그 순간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의 세월이 흘러가고, 내가 나이를 먹어감과 동시에, '나의 어른들'도 나이를 먹고, 늙고 약해져만 간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문득문득 인식될 때마다, 애잔하고 슬프다. 생로병사. 우리네 삶에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그 과정들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다가,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 나에게 있어 세월이란, 그런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는 슬픈 상념들을 일단 끄적여본다. 
그냥 끄적여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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