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6.01.18 국기에 대한 맹세 1
  2. 2006.01.05 반공의 추억 1


-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5년 11월 8일 22시 35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받쳐 충성을 다할것을
굳게 맹세합니다.



지금 혼자 중얼거려본 국기에 대한 맹세이다. 인터넷을 찾아보지 않았으므로, 몇몇 '단어'나 '조사'는 틀렸을 수 있겠지만, 얼추 저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폐지하자는, 기사를 보았었는데, 시험의 압박으로 읽지 못했고, 그 기사를 모티브로 해서, 포스팅을 한번 해보고자 한다.



1980년대 신촌의 창서초등학교.


교문에 들어서면, 꽃 화단 옆으로 난 길을 따라서 학교건물 쪽으로 진입하게 되는데, 그러기 전에 주번과 선생님이 서 있는 곳이 있다. 그곳에서 등교하는 모든 학생은 '경건히' 오른손을 가슴에 올리고, 저쪽 국기개양대위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바라보며, 이런 국기에 대한 맹세를 중얼중얼하며 읊어야 했다. 병장의 경례와 이등병의 경례가 틀리듯, 짬(?) 좀 되는 5, 6학년 학생들은 장난스레 나는 자랑스러운 으르르르르 아래래래래 굳게 맹세합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갔던 걸로 기억하고, 짬 안되는 저학년들은 또박또박 그 국기에 대한 맹세의 의미와 그것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 따위는 당연히 모른 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 양 또박또박 국기에 대한 맹세를 읊었었다.


이 '국기에 대한 맹세'와 '황국신민서사'가 무척이나 닮아 있다는 것을 오늘에야 새삼 깨닫게 된다. 일각에서는 근대화의 아버지라 칭송받는 박정희라는 사람의 친일경력을 굳이 여기서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박정희라는 사람에게 있어서, 일제 시절의 삶에 대한 흔적들은 분명히 남아있었고, 그것이 의식적이고 의도적이었건, 아니면 무의식적이고 의도적이지 않았건 간에,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과격한 맹세문은 분명 닛폰 제국주의의 '황국신민서사'가 무척이나 닮아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정말 말이나 되나? 초등학생 그 코흘리개들이, 국기를 바라보며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고 있는 그 무시무시하고 험한 광경이…. (짐작건대 박정희라는 인물은 황국신민서사에서 참 큰 감명을 받았던 걸로 추정된다)


이번에 나온 그 기사를 제대로 읽어보지 못해서,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이슈가 생겼던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논란거리가 되었다는 것은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폐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무리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것을 반대할 논거로 무엇을 내세웠는지 심히 궁금해진다. 도대체 왜 반대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것에 반대할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 글 쓰고 한번 기사를 찾아 읽어봐야겠다.


중학교 들어가면서, 업그레이드된 학생으로서의 격에 맞게(?) 국민교육헌장을 외워야 했던 나는, 당시 별생각 없이 '이 땅의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되 내어지기를 강요받았던 존재였다. 물론 그 당시도 그 의미를 알지는 못했다. 정말 글은 보되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까막눈이었던 게지. 일례로는 고3 때, 왼손을 발달시켜보겠다며, 국민교육헌장을 왼손으로 개발새발 써가며 뿌듯해 했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_-;;; 실제 나란 존재는 부모님의 강렬한 사랑에의 열망으로 태어난 것인데 말이다. 결국, 국기에 대한 맹세니 국민교육헌장이니 하는 그런 선언적인 문구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국가주의'라는 것인데, 나 또 한도 왠간히 세뇌교육을 뼛속 깊이 간직한 존재라 국가주의라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에 대해 '왜?'라는 의문은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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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5년 11월 9일 11시 55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의 교육현장에서 대놓고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는 일은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80년대를 돌아보자면, 적어도 나는 반공으로 아주 덕지덕지 점철된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다. 물론 나보다 더 연배가 높으신 분들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반공글짓기, 반공웅변대회, 반공포스터, 반공스크랩, 반공표어 등등등.


이렇게 말하면 과연 이 인간 나이가 몇이야?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나이는 그리 많지 않다. 78년생. 전두환과 노태우를 '국민학생'시절 접했던 새파랗게 젊은 20대.


내가 다녔었던 초등학교가 신촌에 있는, 쉽게 말해서 전두환의 본진과 앞마당(노태우의 집) 근접해있었던 곳이라 그런 게 더 심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전남 목포에서 '국민학생'시절을 보냈던 나의 여자친구님께서는 내가 받았던 반공교육들을 말하자면, "거짓말. 말도 안 돼. 뻥까지마." 라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시곤 하시지. 물론 그녀도 나랑 동갑내기.


그냥 그때 그 시절을 돌이켜보다가, 머릿속을 문뜩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당시 나름대로 신동 소리 들으면서 잘나갔던 시절이라(뭐 국민학교때 잘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마는) 여러 가지 상들을 쓸어모았었기에, 혹 상장 같은 것으로 그런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20여 년 전의 흔적과 증거자료들을 더듬어 가기 시작했었다. 물론 세월이 워낙 오래 지난 지라, 많은 자료가 유실된 상태였고, 그나마 몇 가지 증거물을 찾아내는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투....투철한 애국정신이라니~!!! 도대체 애들 데리고, 이게 뭐하는 짓이었는지.


과연 국민학교 2학년짜리 '어린이'가 도대체 어떤 '투철한 애국정신'을 발휘하였기에 타의 모범이 되었던 것일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민학교 2학년짜리 코흘리개에게도 6월 25일 보훈의 달 행사에서 투철한 애국정신을 요구했던 제5공화국 전두환과 대한민국이 있었다는 것. 한가지 또 기억나는 건, 그때 나와 내 친구들이 흥얼거렸던 노래.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6.25의 노래.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노래를 중얼거리는 국민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마치 지금 우리가 북한의 꼬마 아이들이 등장하는 선전용 영상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반공독후감. 국민학교 2학년 시절의 나는 도대체 어떤 글을 써내려갔던 것일까.


국민학교 4학년때는 반공글짓기까지 섭렵 !!!


반공교육은 노태우 정권 들어서도 여전히 이어졌다는 명백한 증거. 물론 그 당시의 나는 노태우 대통령님을 참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었고, 그것은 당시 민족민주운동진영과 재야의 이미지 정치의 실패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반공이데올로기'의 효과적 선전의 측면도 부인할 수 없을 듯.



다행히(?) 그림 그리는 데는 재능이 전혀 없었기에, 반공 포스터 같은 미술 관련 상장들은 없고, 또 어린 시절에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꼬마였기에 반공 웅변대회의 상장도 없다. 그러나 내 아련한 기억 속에는 반공의 기치를 '이 연사 소리높여 외쳤'던 그때 그 시절 반공 웅변대회와 친구들의 기억이 존재한다.


반공. 이제 조금은 흐릿해져 가는 코드일 수도 있겠다. 물론, '반공'이란 정서가 이 땅에서 완전히 일소되었다 평가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94년 한국통신 노조의 파업을 '반공'이데올로기로 몰아붙이며,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식의 탄압이 가능했던 시대보다는 진일보한 것이겠다. (물론 노조의 파업을 짓밟는데 선봉대장이었던 '반공'을 대신해, '집단이기주의'니 '귀족노조'니 하는 말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생각해보면 감히 일개 방송사의 PD수첩이 황우석 교수를 검증했다고 길길이 날뛰셨던 분들께선 고개를 돌려 97년 말을 떠올려보시면 좋겠다. 그때 조갑제 같은 극우 인사를 필두로 한 극우세력들과 한국논단(이라는 별시덥잖은 극우 잡지)이 대통령 후보들의 '사상을 검증'하겠다며 메이저 방송사에서 사상검증의 굿판을 벌이기도 했던것을 기억하시나? 물론 그들이 검증하려 했던 건 이회창도 아니었고, 이인제도 아니었고. 바로 한 사람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그 20세기 말에 펼쳐진 쪽팔린 사상검증의 굿판의 중심에는 '반공'이 있었다. 딱 까놓고 이놈이 '빨갱이'인지 아닌지를 검증하자는 것이었고, 실상은 그 사상검증토론회를 통해, 그해 대선에 임하는 김대중에게 뭔가 미심쩍은 그런 혐의를 알게 모르게 풍김으로써, 과거 박정희가 그랬던 것 처럼 그런 식으로 선거전에서의 승리를 꿈꾸는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기억 못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당시 97년 대선투표일 자정. 그러니까 투표개시를 6시간 정도 앞둔 그 야밤에, 한나라당의 대변인 논평은 정말 가관이었다. 배경의 CG로 남한의 모습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는 그래픽을 내보내면서, '과연 믿을 수 없는 사람에게 이 나라를 맡기시겠습니까.'라는 대변인의 논평. 이게 정말 97년 말에 일어날법한 일인지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조선일보의 만행들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고) 그해 대선에서는 이 땅에서 또 하나의 민감한 화두 중 하나인 병역문제에 이회창 후보가 태클 걸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 땅 민중들의 의식이 반공이데올로기의 자극 따위는 이미 초월한 의식 수준을 가졌기 때문인지. 어쨌든 야당후보였던 김대중 후보가 당선이 됐었다.


반공에의 추억. 그 치열했던 80년대를, 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온몸으로 항거하며 죽어갔었던 그때 그 시절을, '하늘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임승차했던 나에게도 그 어린 나에게도 '반공'에의 추억은 살포시 남아있다. 똘이장군과 함께. 이승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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