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시간의 지층을 우리는 '세월'이라 칭한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그 거센 물결 속에 서 있을 때는 세월의 위력을 잘 체감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 잠시 무중력상태의 진공과도 같은 균열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퇴적층의 단면을 바라보게 되는 찰나와 같은 순간, 우리는 세월이라는 존재의 위력을 체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 그대로인데, 변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느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보던 내 얼굴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 나는 세월의 민낯과 마주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것.
거울 속에 앳된 얼굴의 아이가 있다. 마냥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그 아이는 연신 웃는 얼굴이다. 그러다 그 아이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호기롭게 담배를 문 대학생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울긋불긋 벌게진 청년의 얼굴도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는 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내가 오버랩되면서,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수염 까칠까칠, 웃으면 누가에 잔주름도 보이는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서 있다. 아뿔싸. 저게 나구나.
그런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슬픈 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변화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사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대개 늘 같아 보이기 마련이거든.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조차, 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공간의 균열이 생기는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선사해주는 진정한 비극은,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늙어가고,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게 참 슬픈 일이더라. '네 나이 먹는 것은 생각 안 하냐?'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제 나이 먹는 것'은 잘 생각 못 하기 마련이거든.
젊고 강하고 매력적이던 아빠, 엄마는 자글자글 주름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렸고, 젊음의 에너지 가득하던 청년이고 아가씨였던 '나의 어른들'은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나의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다.
' Ⅰ. 훈쓰 Story > TaeHunism'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이런 미친... (0) | 2024.12.04 |
---|---|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님. 편히 쉬시기를)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 (2) | 2020.07.10 |
혁명은 없고, 착취는 영원하다. (0) | 2020.06.13 |
하야 (下野) (0) | 2016.11.08 |
정운영-과객의 부(賦) (0) | 2013.10.01 |
신정환씨를 둘러싼 여론에 대한 진중권씨의 의견에 동감... (2) | 2011.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