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아버지 되기'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21.09.15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있는 그대로의 진실일 수도.
  2. 2021.09.05 악역도 맡아야 하는 자의 슬픔

 


어쩌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일 수도 있다고 제목을 쓰려다가, 그건 다소 터프한 글 제목 같아서 살짝 수정.  지난밤 [아빠의 밥 한 끼] 카테고리의 글을 작성해놓고, 블로그 메인화면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이, '육아 블로그'인데? 라는 생각이었다. 그 화면을 캡쳐해서 띄워놓고 보니 더더욱. 

예전, 대학 시절. 우리들의 선배가 그랬듯. 나도 새내기들이 들어오면, 그들 중 몇몇을 사회과학 서점으로 데리고 가서 책을 사주곤 했었다. 대부분은 내가 사주는 생소한(?) 책들을 그냥 받아들게 마련인데. 어떤 당돌한 후배 녀석이 있었다. 선배가 고르는 책을 보면, 선배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했던 녀석.  '한번 골라보세요~'하는 느낌이랄까? 순간 괜히 뜨끔 했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의도가 읽혀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책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뭐 그 녀석(녀석이라는 단어가 꼭 남성을 의미하진 않는다)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는 말이 있듯 얼마 지나지 않아 참으로 의식 있는 대학생이 되었다. 

다시 원래 글로 돌아와. 내가 쓰는 글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존재의 상황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일 수도 있다.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가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그냥 원테이크 글쓰기로 그냥 써 내려가고픈 주제들이 여럿 있었다.  '요즘 좀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핑계를 주섬주섬 꺼내 들어보지만, 그러한 내면의 목소리를 뒤집어보면, 내가 유한한 시간에 굳이 취사선택한 주제들이 위의 글들이라는 것이다. 내 안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간택된 주제들이라는 것. 물론 나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내 블로그상에 진열된 글의 가판대가 다소 좁긴 하지만... 그래도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화두가 아이들이고, 아버지 되기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Posted by HunS
,

이번 주말, 기분 좋게 아침을 열고 싶지만, 곧 시작되는 아들과 딸의 티키타카. 그리고 다툼. 그 결과 ;;;  아들 녀석을 혼내면서, 문득 예전에 읽었던 홍세화 씨의 책 제목이 떠올랐다.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아이들에게 악역만 맡는 것은 아니니 '악역도 맡아야 하는 자의 슬픔'이 오늘의 상황에 더욱 어울리겠다. 

오늘 아들 녀석에게 3분가량 정자세로 서 있도록 하는 벌을 주면서, 단호한 어조로 잘못된 점을 말해주었다. 최대한 감정적인 언사가 섞이지 않도록 노력했는데, 3분이 지나고 이 녀석. 방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버린다. 좀 기다렸다가 가서 쓰다듬어 주니, 잔뜩 서운한 얼굴이다. 역시나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온데간데없고, 그저 혼내는 아빠에 대한 서운함만 남았나 보다. 하긴 나도 '자식'이라는 배역을 맡았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혼났다는 기억. 그것에 대한 서운함이나 무서웠던 기억만 남아있지, 내가 왜 혼났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그래, 누구나 마찬가지인 게지. '아버지'라는 역할. 처음 '아빠'라고 불렸던 그 어색함도 잠시. 몇 년 지나고 나니, 태어날 때부터 '아빠'이고 '부모'였던 것만 같다. 분명 나도 '자식'의 입장에서 자라왔기에, 역지사지가 가능한 일인데도 '아빠'가 된 지 몇 년 지났다고, 벌써 그게 잘 안된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아이들의 몸이 자라나는 속도만큼이나, 아이들의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혼내고 나서 두 팔을 벌리면, 그렁그렁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쪼르르 달려와 안기는 아기가 아니라,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서 자라나고 있다. 머지않아 아이들은 '부모'라는 이름의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자신의 시선과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래 왔듯 말이다. 나도 그러한 과정을 겪어왔고, 우리 부모님들도 지금 내가 겪어나가는 '부모'로서의 과정을 겪어왔겠지.

아이들에게 늘 웃으며 좋은 이야기만 해줄 수는 없다. 때론 아이들의 행동을 제지하기도 해야 하고,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주기도 해야 한다. 고삐 풀린 망아지들처럼 들떠서 폴짝거리는 아이들을 잡아주다 과정에서 때때로 아이는 서운함을 느끼게 될 수도 있을 게다. 다만 아이들에게 그러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의 모습은 부모들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혼내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올바른 방법으로 아이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성현이가 아기 때 육아에 관한 책들을 이것저것 사들였는데. 생각해보면 이게 조급한 선행학습이었던 것 같다. 왜냐면 아이들이 이제 막 아장아장 걸어 다니기 시작했던 그때는 그 책들의 방법론들이 필요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히려 지금 그 책들이 필요한 것 같다. 다시 책들을 읽어야겠다. 악역을 맡아야 하는 때도 분명 있고, 그 상황들을 피할 수 없다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르게 아이들을 대하는 방법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배우는 일이다.

좋은 아버지 되기. 아이들에게 웃음으로 기억되기. 아이들에게 '대화의 상대'로 남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고, 나또한 아이들의 기억 속에 웃음과 미소로 기억되고 싶다.








Posted by Hu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