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나 보다.  기나긴 뜨거운 여름의 터널을 지나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 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면 어김없이 마왕의 기일이다. 그가 떠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마왕 신해철 5주기 추모식.  2주기 추모식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  그런데... 각자 저마다의 치열했던  '생'의 시계를 멈추고 영면하신 분들이 계신 곳이기 때문일까?  이 곳에 오면. 시간이 정지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본관 안에 들어서자,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철기군( 故 신해철 팬클럽 : http://cromfan.com/xe/ )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이곳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5주기 추모식을 마친 후, 다시 서울로 이동하여 노들섬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석하는 일정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 둘에 아내와 함께 참석하기를 소망했던 나는...  열심히 운전해서 와야 했다. ^__^   핑크퐁 메들리(?)를 들으며...^_^;;;




철기군의 익명게시판 글에서,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글을 보았다. 마왕 팬의 연령대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정신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에,  그것을 감안하면 5주기임에도 이 정도면 많이 모였다고 나스스로에게 쓰담쓰담을 했지만,  줄어든 숫자에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깃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 마왕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이라는 곳에 모이지 못했을 뿐... 작년의 내가 그러했듯. 마왕의 기일. 아쉬움과 그리움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었을 게다. 




사진 출처 : 철기군 익명게시판 12879 번 게시글


공식적인 분향은 없다고 들었고, 예식실에서 유가족분들이 기제사 올리시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유가족분들 기제사 끝나고 헌화하러 가신 다음에 잠시 비공식적(?)으로 팬들이 분향할 수 있는 시간이 잠시 있었나 보다. 그런 상황을 알지 못했기에, 유토피아 추모관 본관 안의 팬분들이 헌화하러 이동하실 때 우리 가족도 같이 나가서 헌화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는데 아쉽다. 





내 아이들도 정말 많이 자랐다. 그가 떠나던 2014년 10월. 채 돌도 되지 않았던 성현이. 아기 띠에 안긴 채 짙은 슬픔 가득했던, 아산병원으로... 극적인 결정이 있었던, 원지동 서울 추모공원으로 같이 함께했던 성현이는,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2016년 9월에 태어난 유리. 유리는 '신해철 아저씨'에게 온 것이 처음이다. 2016년 10월 2주기 추모식. 유리가 태어난 지 1달 약간 넘었던 시점이라, 내가 아들 성현이만 데리고 참석했었다. 마왕도 그대로... 나도 나이만 한 살씩 더 먹어갈 뿐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라난다.







2주기 때, '신해철 아저씨 편히 쉬세요' 하며 국화꽃을 놓았던 아들 성현이. 이제 훌쩍 자라 미운 일곱 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 아이. 제법 의젓하게 마왕에게 헌화를 한다. 유리도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신해철 아저씨'에게 국화꽃을 드렸다. 


여담이지만, 아들 성현이를 보면서. 마왕의 노래, '아버지와 나'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내가 1992년 아버지의 차 안에서 테이프로 그 노래를 틀었을 때 나는 '아들'이었다. 한창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10대였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고 싶어 했던 나.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즈음의 아버지가 계셨고. 그런데, 이제 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과 나 사이의 진정한(?) '아버지와 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에게 나도,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그의 앞에서 다짐했다. 결의했다.  내년 이맘때 즈음, 다시 이곳에 와서 마왕에게, 나 이렇게 잘 지켜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을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마지막으로 그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 



갑자기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마왕... 늘 잊지 않고 기억할 거야. 피눈물이 흐르는 듯한 원통함은, 세월의 퇴적이 만들어낸 감정의 굳은살 아래 침잠한 채, 그 시퍼렇게 날이 선 감정이 조금 무디어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잊지 않을 거야. 기록하고 기억하고. 그렇게 내 안에 계속해서 마왕은 살아있겠지.











아버지와 나 PART Ⅲ - 'Statman' (↑↑↑ 유튜브 영상 9:00 부터)


그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 위로는 화해의 비가 내렸고 심지어는 가끔은 꽃구름이 흘러 다닐 때도 있다

우리 두 사람은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서 가끔씩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 볼 때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그의 잔소리가 언제부터서인지 모르게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삶이 타들어가는 번뇌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인지

혹은 그의 삶이 휴식과 완성의 시기를 원하기 때문인지

분명한 것은 천진한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은 아들의 어릴적 얼굴을 닮아가고

정작 아들의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버지와 닮아 있다

난들 왜 그가 기뻐할 번듯한 세속의 성공과 안정을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만은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멀지 않은 미래에 안겨줄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날 그의 손주뿐인듯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그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언어들을

순간의 울음소리로 알리리라

그렇게도 나는 나일뿐이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 주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그가 남긴 흔적 혹은 남기고 갈 증거이다

나는 그의 육신을 나누어 받은 자


Hey STARMAN

Hey STARMAN

지구의 별이 되어 살다 우주의 별로 돌아가다


아이는 열리지 않는 그의 방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칭찬에 굶주리고 대화에 목이 마른 아이였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자 아이는 망치를 들어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상의 머나먼 끝에서 고독에 눈물을 흘리던 날

아이는 그가 스스로 방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문을 잠근 적 역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Hey STARMAN

Hey STARMAN

Hey STARMAN

Hey STARMAN


아이가 오래 전 박아 넣은 날카로운 못들을 하나씩 빼내자 문짝에선 피가 흘렀고

문을 떠밀자 그 문은 힘없이 열렸으며 그 문의 저편엔 주름과 세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수줍은 아버지와 겸연쩍은 아들은 난생 처음 뺨을 맞대게 되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는 먼지가 되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 이 노래는 잊혀지리라 세상 모든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아들은 아비를 기억하고 또 아들의 아들이 그 아비를 기억하며

그들의 피는 이야기나 노래보다 조금. 더 오래 흐르리라

그리하여 우리 세상에 잠시 있었던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하리라


다른시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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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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