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훈쓰 Story'에 해당되는 글 191건

  1. 2016.03.04 대대적인 지방흡입과 성형수술을 통해 탄생한 서재.
  2. 2016.02.27 성현이의 두번째 또봇 !!! - 또봇R (& 태권 스마트키 K)
  3. 2016.02.26 성현이의 첫 또봇 !!! - 또봇 태권 K
  4. 2016.02.13 맥북프로 레티나 2015 early 13인치, 클린 설치
  5. 2016.02.12 성현이와 부모님 그리고 나 - 아버지 되기
  6. 2016.02.12 [새 생명] 둘째와 두번째 만남 - 우렁찬 심장소리
  7. 2016.02.08 오랜만의 영화관람 - 레버넌트 : 죽음에서 돌아온 자
  8. 2016.01.29 리틀 타익스 (Little Tikes) 미니 농구대
  9. 2016.01.27 [새 생명] 두근두근, 둘째를 처음 만난 날
  10. 2016.01.13 2016년 - 단 하나의 약속 : 살.빼.기.
  11. 2016.01.01 새해 첫날 저녁녘의 주절거림
  12. 2015.12.12 오늘은 내 생일
  13. 2015.12.04 2015년 12월 3일. 아내의 생일.
  14. 2015.12.04 어렵다... 아버지 되기.
  15. 2015.11.12 마왕 故 신해철 - Welcome To The Real World 한정판 유작 앨범
  16. 2015.11.12 블로그의 일상화
  17. 2015.11.11 성현이와 통큰블럭
  18. 2015.11.08 딴지마켓 벙커링 이벤트 당첨 !!! + 딴지 벙커링 간단 사용기 10
  19. 2015.11.07 매일 내 인격의 바닥을 본다
  20. 2015.11.04 4년 만의 새로운 아이폰 - iPhone 6S+ 128GB SpaceGray 스페이스 그레이
  21. 2015.10.27 마왕의 기일에 날아든 선물 - 마왕 故 신해철 1주기 한정판 LP앨범
  22. 2015.10.27 마왕 故 신해철 1주기 추모식 그리고 오늘 마왕의 기일
  23. 2015.10.17 블로그에 대한 잡설들
  24. 2015.10.16 마왕 1주기 한정판 LP 앨범 구입 4
  25. 2015.09.23 아.버.지.되.기.
  26. 2015.06.12 선택과 집중 - 어떻게 살 것인가.
  27. 2015.05.26 글쓰기 그리고 끄적거림
  28. 2015.04.23 Reboot Myself
  29. 2014.10.27 내 가슴속의 별이 지다.
  30. 2014.01.01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






책장의 사진이다. 책장은 본래 책을 정리하는 공간이지만, 언제부턴가 내방의 책장은 책을 위한 공간만은 아니었다. 온갖 잡동사니들의 전람회. 물론 책들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각종 출력물, 공과금 영수증, 각종 기록과 노트들, 기타 피크, 기타 줄, 튜너부터 시작해서 도저히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의 수많은 물건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 언젠가부터는 치워야겠다는 생각마저 포기하고 마구 쌓아두며 지내왔다. 눈앞의 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장을 보며, 대대적인 장시간의 공사(?) 없이는 정상화 되기 힘들 것을 예감하곤 했다. 실제로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책장과 서랍장 등의 공간에, 이 방의 물건 80% 이상이 여기저기 수납되어 있던 상태. 이 어마어마한 규모에 섣불리 전쟁선포를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시간이 흘러가던 어느 날,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나가 보자는 생각을 하며 작업에 돌입했다. 다소 무모하게 저질러 버린 느낌이랄까? 그러나 무모하게 시작하지 않으면 시작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굉장히 긴 시간을 투자했다. 2주 이상의 시간을 들여서 차근차근 진행된 작업이었다. 거의 20일에 근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짧은 기간에 몰아치기엔 너무나 무리가 될 작업이었고, 그렇게 파르르 떨면서 죽을 둥 살 둥 하며 목숨 걸고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맘 편히 먹고 차근차근히 해나가자는 생각이었다. 


이 작업에 임하면서, 나에게 계속해서 읊조렸던 이야기는 ‘버리자. 여태까지 안 써왔던 건 앞으로도 안 쓴다’였다.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이라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을 쌓아두느라 이 난장이 벌어진 것인데, 그 잡동사니들을 모두 다 안고 가면서, 그것을 차곡차곡 쌓아 아무리 어여쁘게 재배치한들 상황이 개선될 리가 없었다. 버렸다. ‘언젠간 쓰이겠지’, ‘언젠간 보게 될 거야’ 등등의 마음으로 여기저기 쌓아놓았던 많은 것들을 버렸다. 과감히 버렸다. 그리고 분류하고 정리했다. 정말 힘들게 작업했다. 대대적인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보고, 빠른 시일 내에 이 정리된 것을 바탕으로 2차로 버릴 것을 다시 추려낼 생각이다







지난했던 작업의 시간을 돌아보니 이건 흡사 머리부터 발끝까지 지방흡입을 하고 성형수술을 한 후 새로 태어난 사람과도 같다. 어마무시한 고생을 하면서 탄생한 After를 Before 와 비교해 보면서 새로운 느낌을 만끽하는 중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작 할 준비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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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또봇 K가 우리 집에 도착했고, 오늘은 또봇 R이 부모님 댁으로 도착했다.


예전에 종하에게 두 돌 선물로 이걸 사주었는데, 혹시 종하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또봇 R을 보고 자기 것이라고 착각할까 봐, 우선 이 또봇 R은 부모님 댁에 배치하는 것으로 했다.


성현이가 소방차라는 단어도 많이 쓰기에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장난감 자체가 덩치가 크고 시원시원하고, 자동차로 변신한 상태에서 굴리면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불이 들어온다. 성현이가 많이 좋아한다. 역시나 이 또봇 R도 주로 자동차로 변신한 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뭔가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성현이가 후다닥 달려드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사진이 오히려 저 장난감 개봉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것도 같다. 성현이가 기쁜 마음으로 ‘우와’ 하면서 달려들던 저 순간. 내 입가에는 아빠 미소가 한가득.


오늘의 선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름도 복잡한 태권 스마트키 K. 이것은 제품을 보면서, 성현이가 제대로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이른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있는 또봇 태권 K와의 조화를 기대하며 구매했다. 아직 성현이가 이것을 용도에 맞게 가지고 놀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하다. 어제도 말했듯 또봇 만화를 본 이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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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의 장난감 인프라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는 자각을 한 이후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 장난감류를 잘 챙겨주는 것도, 무척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부모가 육아 관련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거나, 아니면 주변에 또래 집단이 있거나 해야 비교 대상이 생기는데, 성현이의 경우 통큰블럭 이후로 크게 신경 못쓴 게 사실이다. 아빠인 내가 성현이 장난감만은 정말 빵빵하게 갖추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그러지 못해왔던 것 같다.


우선 그 시작이 또봇이다. 이 또봇은 성현이가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려면, 아마 또봇 만화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봇의 적정연령이 37개월령 정도로 쓰여 있던데, 아직 성현이에겐 좀 이른 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현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성현이가 요즘 자동차 종류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 있기 때문인지, 로봇 형태의 또봇이 아니라 자동차로 변신한 모습을 더 선호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로봇 형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또봇 종류를 하나하나 다 모아주고, 그다음에 카봇으로 넘어가 봐야겠다.


성현이에게 짜잔- 하고 또봇 상자를 앞에 놓았을 때, 성현이 얼굴에 퍼지는 미소, 상자를 개봉하고 안에 내용물을 보여주었을 때, ‘우와-’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심정은 너무나 행복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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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새 출발을 하는 의미(?)에서 맥북 클린설치(포맷 후, OS 재설치)를 단행했다. 국내 맥북 사용자들에게 오아시스이자 바이블과 같은  백투더맥  블로그(클리앙의 Maclien에서 활동하시던 원님의 블로그)와   클리앙의 소모임 MaClien의 글들을 검색해서, 설치 디스크 만들기와 클린설치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를 확인한 후 클린설치 돌입. 과정을 크게 나누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아니 간단하다.



1. 클린설치 전 App Store에서 OSX(El Capitan) 다운로드 

2. DiskMaker X로 설치디스크 제작

3. 클린설치 (하드 포맷후, OSX 재설치)


어젯밤부터 오늘 오전까지 틈틈이 짬을 내어, 엘 캐피탄을 다시 클린 설치하고 사용할 앱들만 다시 설치하고 이것저것 다시 세팅해주었다. 뭔가 문제가 있어서 클린설치를 한 것은 아니다. 10개월간 사용하면서 크게 느려진다거나 뭔가 버벅이는 문제는 없었다. 그냥 새로운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시스템을 밀어버리고 새로 설치한 것뿐이다. 윈도우 쓸 때는 가끔 이것저것 꼬이곤 해서, 가끔 포맷하고 시스템을 재정비하곤 했는데, OSX 사용하면서는 그럴 필요성을 아직 느껴보진 못했거든.


어쨌거나 새로 태어난(?) 맥북으로 블로그에 정진해보도록 하자.




앗차차 !!!좀 전에 정확한 날짜를 확인해보니, 2016년 4월 8일이면 내 맥북의 무상 수리 보증기간도 끝이 난다. 그전에 이미 구매해둔 애플케어도 등록해야겠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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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대상이,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말, 대략 10월~11월 정도만 해도 수영장 가기 위해서 부모님 댁에 성현이를 맡기고 나오려면,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를 쓰곤 했는데, 이제는 부모님 댁에 가서 성현이를 데리고 오려면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얼마 전까지는 할아버지만 좋아하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요근래부터는 부쩍 할머니에 대한 애착도 보인다. 하긴 성현이를 제일 많이 챙기시는 게 내 어머니이시기도 하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는 어머니의 육아패턴은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믿을 수 있는 존재이시다.


예전에는 ‘하지~ 하지’ 하면서 할아버지를 물렀는데, 얼마 전부터는 ‘할아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제대로 된 발음을 한다. 할머니를 부를 때에도 ‘할~ 할~’ 하던 것에서 발전해 ‘할머니’라는 발음을 제법 제대로 해낸다. 1월 후반 즈음부터 보였던 변화 같다. 2015년 10월 처음으로 ‘할~할~’하며 부모님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짧은 기간 사이에 성현이의 언어능력은 천지개벽하듯 발전했다.


성현이가 태어나고, 부모님께서 참 많이 웃으신다. 물론 성현이의 활동량과 떼쓰기 등으로, 성현이 봐주실 때 체력적인 힘듦을 느끼시지만 그래도 성현이로 인해서 정말 많이 웃으신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로 인해 부모님을 웃으시게 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나는 성현이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성현이의 할아버지는 내가 봐도 정말 훌륭한 아버지이시다. 역시나 훌륭한 할아버지이시기도 하다. 성현이가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가시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로서 나의 목표가 있다면, ‘내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대하시는 태도, 배려. 모든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한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왔으므로, 내 안에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씨앗들은 이미 잉태되어 있다고 믿는다. 성현이를 대할 때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조금만 더 참아주고, 조금만 더 인내하자. 그게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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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그저께구나. 2월 10일 수요일, 임신 7주차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5주차에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고 오면서, 2주 후에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첫째 성현이 때는 모든 게 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하면서도 다소 정신없이 지나쳤던 일들이, 둘째 때는 하나하나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성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사실 두려움만 컸던 것 같다. 성현이가 태어나고, 성현이와 26개월을 보내면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물론 여러 어려움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낯설기만 했던 아빠라는 이름이 멀게만 느껴졌던 2013년과는 달리, 아빠가 된 나는 아빠의 이름으로 둘째를 만난다. 성현이를 통해 내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2주 만에 초음파 영상을 통해 둘째의 모습을 보았다. 제법 자라난 모습이다. 지난번에 둘째의 모습이 동그란 형태였다면, 이제는 아주 작지만 제법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머리와 몸통, 다리. 인상적인 것은 벌써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심장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심장은 이렇게 생명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맹렬히 뛰기 시작하는구나. 생명 그 자체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초음파 동영상도 함께 올리려고 했는데 동영상 편집툴을 다루지 못해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iMovie 강좌를 찾아 듣고, 네이버 카페 맥쓰사에서 아이무비 강좌를 들어야겠다고 결심^^ 나중에 이 게시물에다 둘째의 초음파 영상을 붙여놓을 예정이다. 


아, 맞다! 그리고 태명 !!! 첫째 성현이는 쑥쑥이라고 태명을 지었었는데, 둘째의 태명은 아직 제대로 짓지 못했다. ‘새해의 희망’이라고 ‘새희’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실제 불리는 태명은 아니다. 아내와 의논해서 태명을 어서 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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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내부자들'을 본 이후로 꽤 오랜만에 아내와 영화를 보러 나왔다. 이제 갓 두 돌을 지난 아이를 가진 부부가 영화를 보려면, 그 시간 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필요한데, 늘 그래 왔듯 부모님께서 수고해주셨다. 아이를 맡기고 후다닥 메가박스로 차를 몰아, 표를 끊고 음료와 먹을 것을 사서 기다리는 그 시간. 어찌 보면 그 시간이 가장 기분 좋은 설렘의 시간이다. 


신촌 메가박스엔 제로칼로리 콜라가 없어서 아쉽다고 말하면서, 나초콤보 세트를 주문해서, 나초에 치즈 소스를 듬뿍 묻혀서 먹으며, 카라멜 팝콘을 우걱우걱. 이러니까 살이 안 빠지는 거라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자. 자정이 넘었으므로 칼로리는 이미 리셋되었다 !!! 그리고 이 글을 포스팅하고, 난 바로 넷플릭스에서 브레이킹 배드 시즌3을 한편 때리며, 사이클을 돌리고 잘 거거든. 하루하루를 그때그때 기록하지 않으면, 결국 그냥 안 하게 되어버리기에 부랴부랴 포스팅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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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개월 차에 접어든 내 아들 성현이. 요녀석이 점점 커가는 것을 보면서, 새로운 놀이 수단을 고민하게 되었다. 요근래, 성현이가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빈약한 놀이 장난감 인프라를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라는 사람이 저녁만 되면 부어라 마셔라 하고 아침에는 피곤함에 쩔어 일어나는 생활을 반복해 왔으니. 쯧쯧쯧. 반성 또 반성한다. 


늘 머릿속으로 생각해왔던 아이템을 그저께 구매해서 어제 배송받았다. 이름하여 미니농구대. 몇 시간 동안 검색하면서, 여러 가지 종류의 아이용 미니농구대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이런저런 비교를 해보았다. 그리고 성현이에게 잘 어울릴만한 농구대를 골랐다. 안방 문의 위치가 성현이가 뛰어놀기는 부적절한 위치에 있으므로 문에 설치하는 농구대 제외. 벽걸이 농구대도 제외. 우리 집의 제반 조건 등을 고려해가며 하나둘씩 리스트를 지워나가면서 심사숙고하여 고른 제품이다. 리틀 타익스 (Little Tikes) 미니 농구대. 높이 조절되는 제품이다. 검색사이트에 검색하면 이미 많은 블로거의 후기를 볼 수 있다. 








조립 설명서 같은 건 없다. 구성물도 복잡하지 않고, 한눈에 보기에도 그냥 끼워 맞추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박스에 조립순서가 나와 있는데, 설명서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건 그만큼 조립이 간단하다는 것. 조립은 정말 간단하다. 조립해놓고 보면 꽤 그럴듯한데, 마무리나 퀄리티가 완벽하지는 않다. 약간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한다.



이 제품의 특징적인 부분인 농구대 높이 조절. 저 빨간색 레버 같은 것을 뒤로 당기고, 농구대를 원하는 높이로 조정한 후, 농구대의 홈에 저 빨간색 레버 같은 부분을 고정하는 방식인데, 내가 위에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한 것이 이 부분이다. 빨간색 레버가 완전히 안정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고정하려고 움직이는 과정에서 빠지기도 하기에. 단, 레버를 홈에 밀어 넣고 고정한 후, 실제 아이와 농구대를 사용할 때 레버가 빠지거나 하지는 않는다.


또 검은 색상의 밑판에 물을 채우면, 아이가 놀 때도 흔들거림이 없다. 모래나 물을 채우라고 하던데, 나는 물을 채웠다. 아마 다른 분들도 그게 편할듯하다. 중요한 팁 하나 !!! 저 검은색 밑판에 물 주입구는 돌려서 여는 게 아니다. 펜치나 플라이어 같은 것으로 콱 잡고, 당겨서 빼야 한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아이들 장난감의 평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성현이의 반응인데... 완전 대박 !!! 무척 좋아한다. 꺄르르 거리면서 뛰어다니고. 아... 진작에 사줄걸 ㅠㅠ  성현이가 너무 좋아해서, 나도 너무 만족스럽다. 짱 !!!



"아빠 !!! 보세요 !!!" 왼손은 거.들.뿐 1

"아빠 !!! 보세요 !!!" 왼손은 거.들.뿐 2

투핸드 덩크슛 !!!

덩크슛 작렬~~~!!!

아들. 덩크슛 폼이 제법이다. 그래, 나중에 진짜 농구 골대에 덩크슛 할 만큼 쑥쑥 크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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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1월 25일. 둘째를 공식적으로(?) 만나고 왔다. 둘째 아이가 우리 부부에게 와주었다는 것을 진작 알게 됐었지만, 그 녀석의 모습을 처음 눈으로 확인한 것은 엊그제가 처음이다. 9월 말에서 10월 초 정도가 예정일.



1월 11일, 첫 검사. 그래도 저기 라인이 아주 살짝 보인다. "나 왔어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하는 듯.


1월 13일, 제법 뚜렷하게 라인이 보인다. 이 날이후로, 비공식적인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월 25일, 병원에서 초음파 사진. 아기집이 자리잡은게 보인다. 반갑다 !!! 2주후에는 아이의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단다.



2013년 4월 29일, 성현이를 이렇게 공식적으로 첫대면했었고, 2013년 12월 26일 성현이가 태어났었다. 성현이가 2013년생이고 둘째는 2016년생이니, 세 살 터울의 형제 혹은 남매가 되겠지. ‘두 살 터울이었으면 아이들에게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다가도, 첫째 성현이를 충분히 사랑해줄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선 세 살 터울도 좋다.


둘째를 생각하니, 더욱더 정신이 퍼뜩 든다. 제대로 살아야지, 둘째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에 흐리멍텅해졌던 정신이 다시금 제대로 각성하는 느낌이다. 물론 책임감이라는 이름이 주는 중압감보다는, 두근거리는 설렘이 더 크다. 그냥 기분 좋다. 


20대 청춘도 고생인 시간일 텐데, 나랑 동갑내기 말띠 아내에겐 정말 몸에 무리가 가는 시간들일게다. 첫째 성현이 때는 임신한 아내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받들어 모셔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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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그리고 10여 일 정도(+약간 더? ^^) 가 흘렀다.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또 삶 속에서 마냥 신기해할만한 그 무언가가 거의 소멸해가는 나이이기도 하기에, 삶을 마주하면서도 매너리즘에 빠져있다.어찌 보면 진지한 관조의 시선인데, 이게 좋은 쪽으로 발현된다면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 속에서 철학자(?)가 될 수도 있겠지만, 술 한잔 달뜬 취기에 달아올라 온갖 생각을 꽃피워내며 하늘을 날다가, 어김없이 찾아오는 아침 숙취의 자괴감이 주는 현실의 중력에 잡아 이끌려, 보잘것없는 나 자신의 바닥에 내팽개쳐지는 경험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글쎄 머릿속이 그냥 텅비어가는 것만 같다. 바보가 되어가는 것 같아. 그러니까, 뇌에는 알코올이 아니라, 적당한 카페인과 약간의 달달함. 그리고 책이 필요하단 말입니다. 김태훈 씨.


지금 나에게 복잡하게 무언가를 계획할 여력이 없는 것 같다. 딱 하나만 1년의 목표로 상정해보자. 오로지 하나만. 욕심부려서 이것저것 다 계획한다 한들 그것을 다 이루어낼 현실적인 시간이 허락되지 않을 수 있고, 이것저것 욕심부려서 머릿속에 산개시켜놓은 계획들 자체가 무언가를 이루는데 방해요소가 되어버리기도 한다. 무의식 속에서 올해의 단 한 가지 목표를 생각했을 때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들려오는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자. 


살 빼기. 체중감량. 다이어트.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그것. 이게 내 올해 목표다. 내 경우에 있어, 요놈은 술을 멀리하는 생활태도를 함께 옵션으로 요구한다. 지난 12월 연말이라는 핑계로 이래저래 술을 달리고 나니 9kg가량이 불어버리는 저주받은 몸의 소유자이다. 고무줄처럼 널뛰기 하는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너무해 ㅠㅠ  지난 연말부터 새해가 밝은 지금까지 열심히 술을 끼고 있다 보니, 거의 10kg가 불어버린 상태. 고로 올해의 목표는 20kg 감량이다. 아놔. 광란의 연말만 아니었다면, 이렇게 무시무시한 숫자가 목표가 아니었을 텐데. 에효. 어쩌겠는가. 니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거늘.



20kg 감량 (& almost 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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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2016년. 붉은 원숭이해라는데, 그 한자를 한글로 읽어보자면, 여러 가지 국내 정세와 맞물려 왠지 모르게 입에 착착 달라붙는 느낌이다. 뭐 굳이 여기에 타이핑 하지는 않겠지만. 


새해. 2015년 12월 31일과 2016년 1월 1일이, 지구의 공전주기의 일정 사이클을 재시작하는 지구 공전의 위치변화를 제외하고 본다면(참고로 저는 불하무식한 문돌이ㅠㅠ) 그 어떤 의미의 차이가 있는가 하고 왠지 좀 삐뚤어진 반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기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자면 나에게도 이 새해라는 게 참 두근두근 뭉클뭉클했던 적이 있었더랬다.


아마도 꼬꼬마 시절을 막 벗어나 나 자신 그리고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해, 조금 서툴기는 하지만 나만의 시선을 가지기 시작했던 국민학교 5-6학년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냥 살아지던 인생에서 깨어나, 나의 자아가 눈을 뜨게 되면서 나를 중심에 놓고 세상의 흐름을 사고 하기 시작했던 첫 시기였을 게다. 마치 첫 몽정을 경험한 꼬마 총각이 느끼게 되었던 두려움과 당혹감 또 일말의 설렘 마냥. 그렇게 뭔가 제대로 정의되지 않던 그 시기. 나는 새해를 맞이하며 설렜고, 의미를 부여했었고, 어제와 오늘은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직은 30대라 나를 위로하고 있다. 여전히 40대는 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두 돌이 지나면서 하루하루 업그레이드 속도가 빨라지는 아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부모로서의 뭉클한 자의식이 주는 감동이 나를 휘감기도 한다. 부모가 된다는 것.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참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아이가 커가면서 같이 늙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산울림의 청춘이라는 노래를 중얼거리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이 새해가 전혀 설레지 않는다. 그냥 하루하루일 뿐이고, 나를 둘러싼 불안감들과 가라앉아버린 마음의 무게를, 희망의 언어로 밀어내버리기는 나 자신이 너무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다. 술 때문인가. 우울함의 진득한 무게감이 나를 지배하는 지금. 뭔 새해의 설렘을 찾겠는가.


새해에 대한 희망찬 포부는, 이 우울함을 극복해낸 이후로 미루어둬야겠다. 하긴 생각해보니 음력 설날도 있잖아… 빨리 여기서 탈출하자. 우선은 술을 좀 멀리해야겠다. 어찌 된 게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는게 아니라, 더 가라앉고 우울우울 이러고 있는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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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 벌어진 일로 내 머릿속은 온통 헝클어져 있다. 내가 그동안 보냈던 나의 생일 중, 이렇게 심란했던 생일날이 있었던가.  그래도 내 곁에서 내 마음을 도닥여주려는 아내가 고맙고, 든든하게 내곁을 지켜주시는 부모님께 감사드릴뿐이다. 다시 태어나는 생일이 되자. 오늘까지만 심란해하고, 오늘까지만 울적해하자.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 그리고 난 다시 내일의 내가 될 것이다. 당면한 상황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자.


너무나도 인상적인 2015년 12월 11일 ~ 12일의 시간들이었다. 많이 놀랐지? 태훈아. 너무 많이 걱정하지마. 아... 그리고 !!!  생일 축하한다. 내년 한해도 잘해보자.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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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어제 아내의 생일. 아내는 음력 생일을 지내기에 매년 생일 날짜가 바뀐다. 2000년부터 지금까지 16번째 함께 맞이하는 아내의 생일이었다. 이번 아내의 생일에는 부모님께서 아내를 위한 깜짝 선물을 준비하셨고, 나도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느라 한 달여 동안 노트북 고르고, 또 보안을 유지하느라. 꽤 압박감을 느낀 한 달을 보냈다. 그리고 어제, 아내가 너무나 많이 기뻐했기에 나도 기쁘고, 우리 부모님께서도 기뻐하셨다. (LG 그램 15인치 개봉기 포스팅도 나중에 작성해야지.)



나의 사람, 내 안의 해. 나의 아내여. 16년이라는 시간. 함께 잘 보내왔네요. 앞으로도 늘 지금처럼 함께 합시다!!! 



12월 3일로 넘어가는 새벽.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성현이도 잠에서 깨어 엄마의 생일을 축하해줬다^^

뭐, 우리 이제... 그냥 생일케잌의 초는 간단하게 세팅합시다.

가든호텔에서 부모님과 점심식사. 2007년 우리는 이 호텔에서 결혼했었다.

부모님의 깜짝선물. LG그램 15인치. 아내도 정말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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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6일이면 두 돌이 되는 내 아들 성현이.


아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전날까지만 해도 쓰지 못했던 단어들을 오늘 갑작스레 발음하기 시작한다. 자기 주관 & 자기 고집이 형성되었고, 좋고 싫은 것에 대한 의사표시를 명확히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큰 상들을 제대로 확립해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지는 오래다. 진정 의미를 가지고 기뻐하며 박장대소 꺄르르 웃기도 하고, 강력크하게 떼쓰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나 요 며칠 사이에 그 떼쓰기의 강도가 확 올라갔다. 아들 녀석은 자기 고집이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이다. 좋고 싫은 걸 명확히 표현하는 아이. 이러한 성향의 아이를 부모가 잘 키워낸다면, 그 자기 고집과 자기 주관은 아이의 장점이 되어 아이를 빛나게 해줄 것이고, 아이의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자기 고집과 자기 주관을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꺾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키울 수도 없다. 그래서, 고민은 시작된다.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인가?’ 라는 것은 여태까지 다소 추상적인 차원의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굉장히 현실적인 차원의 고민이 되었다. 내가 아이가 심하게 떼쓰는 상황을 목도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너무 거창하게 말했나? 딱 한마디로 쉽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혼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이 무척이나 잦아졌다. 현재 나는, 나 스스로 이런 상황에의 행동지침이나 메뉴얼 같은 게 확립되어 있지 않기에, 내 행동의 일관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가 느끼기에도, 아버지의 반응이 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좋지 못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건 간에, 아이가 예측 가능한 ‘아버지’여야 한다. 


요즘 반복되는 상황을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우선 나는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의 떼쓰기가 나의 인내력의 허용범위 내에서 그친다면, 아이는 좋게좋게 이야기하며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떼쓰기가 나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거나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내 인내력이 급격히 낮아진 상태라면, 아이는 버럭 큰소리로 혼내는 모습의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나도 아버지이기 이전에, 부족하디 부족한 그냥 인간이기에, 내 감정적 상태에 따라 내 반응의 양태가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나 스스로가 컨트롤되지 못했음을 느낄 때, 너무나 크게 후회하게 된다.


어떠한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  그때그때의 감정에 기대어 아이를 키울수는 없다.  아마도 내 고민의 종착지점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일듯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것.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봐야겠다.




목욕하러 들어가기 전 한 컷. 아이의 해맑음 웃음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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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문자가 왔다. 지난번 LP 한정판 앨범의 CD 버전의 앨범 발매소식. 예약안내 문자가 오자마자 바로 예약을 했다. 지난번 포스팅에 말했듯 무조건, 무조건이니까. 그게 울궈먹기던 장삿속이던 신해철의 이름을 팔아먹는 자본의 상술이든 뭐든 기꺼이 그 장단에 맞춰 춤을 춰주리라 생각했으니까. 


마왕이 살아생전, '있을 때 잘하라고' 그렇게 늘 말해왔었건만. 뭐랄까 마왕이 가고 나니 깍듯이 챙기는 느낌이 든다.  어린 시절 들었던 청개구리 동화 얘기도 생각이 나고. 마왕… 다 그런 건가 봐. 미안.







어제 11월 11일 앨범이 발매되었다. 발송되었다는 문자가 오고, 정확히 하루가 지나서 택배가 도착했다. 지난번 LP 한정판 앨범 배송 때의 삽질로 욕을 먹고 정신 차린 YES24가 이번엔 아주 적절한 상자에 제품을 넣어서 배송했다. 제품의 구성은 LP 앨범과 동일하다. 다만 LP가 CD로, 그리고 사진 5매와 가사포함 포토북의 사이즈가 그것에 맞게 다운사이즈 되었다. 배송받자마자 사진을 찍고, CD를 부랴부랴 아이튠즈로 리핑했다. 지금 음악을 틀어놓고 포스팅을 작성 중이다. '단하나의 약속' 데모 버전이 이런 느낌이었던 거로구나. 참 애절한 발라드 곡이다. 앨범에 실린 '단 하나의 약속'이 나오기 위해 존재했을 수많은 데모 버전 중의 하나이겠지. 이 앨범에 들어있는 Welcome To The Real World 나 I Want It All 같은 마왕의 유작을 듣고 있는데, 반가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이 곡들을 마왕이 온전히 완성하지 못했고, 미완성된 상태에서 다른 이들을 통해 완성되었다는 것이 말이다.


네 번째 CD의 타이틀 곡으로 '더 늦기 전에'가 실려 있다. 한국 사회의 기념비적인 공연이라 할 수 있는 '92 내일은 늦으리 앨범의 타이틀 곡을 들으며, 나는 수십 년의 시간을 워프해서, 중학교 2학년의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간다.  2015년의 시공간에 앉아 있지만, 나는 1992년을 느낀다. 그때의 시간들. 느낌들. 그리고 지금의 나. 그리고 마왕의 부재. 다시 '존재의 부재'라는 현실 앞으로 돌아온 나는 무기력하다. 그저 과거의 시간들. 그 순간들을 추억하는 것밖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립고, 그립고, 또 그립다.


마왕의 한정판 유작앨범, Welcome To The Real World 개봉하며 찍은 사진을 붙여놓고, 포스팅을 마무리해야겠다. 우리의 보물창고 유튜브에서 찾은 '92 내일은 늦으리 공연의  피날레곡 '더늦기전에' 실황 영상은 보너스. 





4CD + 사진 5매 + 가사포함 포토북 + 1DVD(포토북 맨 뒷페이지에)


4CD + 사진 5매 + 가사포함 포토북 + 1DVD(포토북 맨 뒷페이지에)






포토북 맨 뒷페이지. Welcome To The Real World 뮤직비디오 DVD


마왕이 떠나가고 발매된 앨범들.







[[Various Artists_더 늦기 전에_1992 내일은 늦으리]]





 1992 '내일은 늦으리' Album [Produced by Shin Hae Chul]
- Composed & Lyrics by 신해철(Shin Hae Chul)
- 넥스트(N.EX.T), 봄여름가을겨울, 윤상, 유영석, 신성우, 015B, 김종서, 이승환, 신승훈, 서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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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인 내용을 담아내는 블로그를 생각하고 이 공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내가 써내려간 글들은, 귀차니즘과 게으름으로 인해 일상으로 외연을 넓혀가지는 못해왔다. 물론 반짝 일상적인 주절거림 들은 며칠간 담아보기도 하였으나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주로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써내려간 포스팅이 꽤 많았다. 


특히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때, 일상 속에서의 아이들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일이 생겼을 때(죽음)의 이야기들을 써내려갔었기에 주로 비공개로 잠자고 있는 글들이 대부분이고, 공개된 글들도 무겁고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사실 ‘죽음’이라는 차가운 이별을 담아내는 것은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다. 기억기록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으로 글을 쓰지만, 가슴속 기억의 심연에 잔잔히 가라앉아 있는 슬픔 들을 다시 끄집어내는 일은 과거에도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너무나 불편하고 힘든 일이다. 


그렇게 죽음과 같은 특별한 사건 중심의 포스팅에 매몰되어, 일상의 소소한 살결들을 드러내지 못하다 보니 진정 기억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기록하지 못하는 상황들의 반복이 된다. 그러다 보니 ‘훈쓰 Lovely cat ♡’ 카테고리를 클릭해보면, 아이들과 함께해온 시간이 별로 없다. 그저 처음과 끝만 보인다. 이는 온전한 실체가 될 수 없다. 우리의 인생에서 탄생(출생)과 소멸(죽음)이라는 시작과 끝이, 분명 중요한 지점들이긴 하지만, 그것만 이야기해서는 온전한 우리의 인생을 말한다 할 수 없을 것이다. 탄생과 소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삶의 나날들이 진정한 우리의 인생 아니겠는가. 


꼭 고양이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이다. 블로그가 일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뭔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가뭄에 콩 나듯 글을 쓰다 보니 포스팅의 가뭄은 이어진다. 막상 뭔가를 쓰려고 해도, 특별한 것이 아니기에 잠시 주저하다 보면 글을 써보겠다는 욕망의 추동은 금방 힘을 잃곤 한다. 어차피 내 블로그의 성격 자체가 ‘정보제공형’ 블로그 같은 것이 아니라, 그저 공개되어있는 사적 공간에 가깝다. 불특정다수 앞에 공개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내 공개 일기장정도 되겠다. 고로, 그냥 생각 났을 때 아무거나 끄적이자. 그냥 꼴리는 데로 쓰자는 말이다. 


그걸 거창하게 포장하면, 블로그의 일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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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전 즈음이었다. 집에 성현이가 가지고 놀만 한 장난감이 너무 없다는 생각에, 성현이 장난감들을 골라보다가 블럭을 사기로 했고 가성비 좋다고 하는 통큰블럭을 주문했다. 처음 주문할 때는 성현이와 함께 블럭을 맞추고 놀 기대에 부풀어있었지. 부푼 가슴을 안고, 롯데마트 서울역점에 가서 직접 블럭을 픽업해왔다. 후다닥 사진 찍고 블럭을 펼쳐서 놀려고 하니, 내가 상상했던 것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성현이는 블럭을 맞추기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다. 주로 집어 던지기, 거기에 내가 모양을 조립해주면 우악스럽게 해체하기 놀이.  뭐랄까, 블럭이 본연의 용도로 사용될 날은 요원해 보였다. 아, 그날은 언제 온단 말인가.


그!런!데!


아이의 변화는 순식간이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성현이가 지그시 앉아서, 블럭을 조립하고 놀고 있다. 불과 며칠 전까지는 크게 블럭에 크게 관심을 둬 주지 않던 아이가, 갑자기 집중해서 블럭을 맞추고 있다. 아이가 또 한 단계 성장했구나. 업그레이드(?) 된 성현이를 보면, 건담프라모델을 가지고 놀 날도 아주 멀지 많은 않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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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바야흐로 우리나라의 초고속인터넷 인프라가 막 깔리기 시작하던 김대중 정권 1년 차, 1998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담이지만, 당시에는 수강신청도 지정된 학교 컴퓨터실에 입실해서 해야 했다. 그 당시 암모나이트 급의 초 고학번 선배들은 그조차도 세상 좋아졌다며, 예전에 정말 아날로그틱하게 수강신청을 해야 했던 전설의 시대를 이야기하곤 했던 그때.  학교의 컴퓨터실에 가면, 많은 학생들이 같은 사이트를 띄워두고 키득거리며 읽고 있었다. 바로 이름도 요상한 '딴지일보'. 정말 혜성같이 등장했다. 넷스케이프라는 이름의 웹 브라우저가 더 친숙하게 느껴졌던 그 시절. 인터넷이라는 수단 그 자체도 참 신선하게 느껴졌는데, 그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그전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한 파격적인 뉴스 미디어(?)의 등장이었다.


그후로 17년이 흘렀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니 '딴지'의 성은을 입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아이폰 6s+ 를 구매하면서, 다른 건 다 마음에 드는데 그동안 써왔던 아이폰4s에 비해 거대한 크기에 걱정을 하던 차, 딴지 벙커링을 떠올렸다. 그동안 팟캐스트 들으며 무수히 들어왔던 딴지 벙커링 광고의 효과가 실현된 순간인 거다. 다른 메이커의 비슷한 제품들이 있었지만, 고민할 것 없이 딴지 벙커링을 구매했다. 어여쁘게 아로새겨진 DDANZI 마크도 마음에 들었지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무광 재질과 견고해 보이는 외관도 구매를 결정케 한 이유였다.


딴지 한정판 프리미엄 에디션 ?! 2+1 이벤트로 블랙 2개 + 골드1개 구매

맥풀 필드케이스와 딴지 벙커링의 조합




일단 잘 사용하고 있다.  처음 붙이고서 얼마 정도는 다소 어색한 느낌을 받기도 했으나, 오래지 않아 손에 착 달라붙는 편안한 그립감을 느낄 수 있었다. 링크기가 적당히 큰 것도 사용에 편의를 제공하고, 또 링의 힌지 부분이 후발 경쟁사(?)의 제품과 달리, 정중앙이 아니라 중앙에서 약간 옆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이 점이 왼손 오른손 파지 시 방향을 달리해가며 밀착된 그립감을 제공해준다(아래 사진 참고).  


손가락을 링 안에 밀어 넣어 깊숙하게 파지하는 자세는 당연하게 안정적인 자세이므로 생략하고, 한 손으로 아이폰 6s+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을 조작하는 자세의 사진을 찍어보았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잡은 채 손을 뒤집어 꺾은 후, 다른 한 손으로 미러리스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묘기 아닌 묘기를 연출한 터라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했는데, 링의 위치가 정중앙이 아닌 게 오히려 더 좋은 그립감을 만들어주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얼마간 벙커링을 사용해보니, 벙커링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크게 느껴진다. 벙커링 없이 그냥 손으로만 파지한다면, 아이폰 6s+ 의 경우 한손조작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 손으로 핸드폰을 감싸 안듯 파지한 상태에서는 엄지손가락의 움직임이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벙커링 덕분에 한손으로 편하게 또 안전하게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단언컨대 벙커링을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사람은 있을 것이나, 벙커링을 단 한 번만 사용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말해 지난 금요일(11월 6일). 정체불명의 택배가 날아들었다.

너... 넌 누구냐 !!!


처음엔 도무지 그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택배 상자에 스티커를 찬찬히 읽어보고 나서야 딴지 벙커링 이벤트와 관련된 물품이라는 것을 알았다. 맞아! 구매 후기 쓰면 추첨해서 벙커링 4개 세트를 준다고 했지. 내가 당첨되었단 말인가? 오호라 ~ !!! 후다닥 딴지마켓에 접속해보니,

닉네임 '똘레'가 바로 나 !!!



안 그래도 기존에 구매했던 것을 다 사용한 상태. 추가로 구매한 여분의 케이스에 장착하고 아내 핸드폰에도 붙여줄 요량으로 몇 개가 더 필요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절묘한 타이밍에 날아든 선물이었다. 2+1 이벤트(거의 상시 이벤트인듯하다.)로 구매했으니 결국 2개 가격을 지불하고, 총 7개를 받은 셈이다. 덕분에 여러 케이스 돌려가며 즐겁고 안전한, 명랑 아이폰 라이프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Thanks~~~ DDANZI !!!




블랙, 실버, 화이트, 골드


블랙, 실버, 화이트, 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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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을 인(忍) 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들 한다. 참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늘 생각하지만, 그러한 나의 결심은 길게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뒤집지도 못하고 누워서, 배고프면 빼에에 울고 눈만 껌뻑이던 신생아 시절을 지나, 이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자기 고집도 제법 생긴 22개월짜리 아들. 요 녀석과 조금 부대끼다 보면, 내 인격의 바닥을 본다. 아… 이 부족하디 부족한 아버지여. 그대의 아버지는 진정 어른스러운 아버지이셨건만 그대는 왜 그러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고 아버지로서 역할 하면서, 내 아버지가 진정 성인군자셨다는 것을 느낀다. 


늘 반성하고 경계하자. 나의 편의를 위해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가장 쉬운 선택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또 아이를 혼낼 때 그것이 긍정적인 훈육이 아닌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제어 해내지 못한 ‘못난 화풀이’ 수준의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는 순백의 도화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훗날에는 아이 스스로 그 도화지 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나가겠지만, 지금 이렇게 어린 영유아 혹은 어린이 시기에는, 부모의 행동과 역할이 그 도화지에 자국을 남기게 마련이다. 내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란 그 도화지에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화지에 나쁜 얼룩이 묻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가 그 위에 마음껏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것일진대, 내가 내 인격의 미성숙함으로 내 아이의 도화지에 얼룩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 내 아들 성현이. 사실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내가 이토록 아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참 많은 게 바뀌었지.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나 또한 점점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10대 시절에도 또 그 이후에도 대화의 상대로 남을 수 있는 아버지 되기. 그게 아버지로서 나의 목표인데, 그러려면. 요즘 들어 자주자주 마주하게 되는 내 인격의 바닥을 좀 멀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성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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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아이폰 4s의 예약판매에 참여해서 한국에 출시되자마자 사용한 지 어언 4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애플 제품을 사용하는 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아이폰으로 시작하여 아이패드 에어 1, 맥프레까지 ’폰-패드-맥’의 삼위일체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간 아이패드와 맥북을 사용하게 되면서 각 기기 간의 분업이 이루어지게 되었고 아이폰의 역할분담 무게가 점점 더 줄어들어서 나중에는 진짜(!) 전화기로써의 역할을 주로 해왔기에 4년 동안 사용하면서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이제는 많이 작게 느껴지는 3.5인치 화면, 한손에 쏙 들어오는 아담한 그립감의 아이폰 4s(& 1년전의 성현이)



이번에는 새 아이폰을 영접하고야 말리라~~~!!!


2015년 10월 19일 월요일에 아이폰 6s/6s+ 예약판매를 개시한단다. 전날 밤 알람 맞춰놓고 가슴설레 여하며 예약개시 시간만을 기다렸다. 사이즈에 대한 고심 끝에 ‘ 아이폰 6s+ / 128GB / SpaceGray(이하 스그)’를 SK기기 변경으로 구매하기로 마음먹은 상태. 미리 일어나서 아침 9시 정각을 기다렸다. 


개삽질 끝에   우여곡절 끝에 iPhone 6s+ 128GB SpaceGray 예약.




진행과정 요약


2015년 10월 19일    SK 기기변경 예약(3차) 아이폰 6s+ 128GB SpaceGray


2015년 10월 22일    티다이렉트 진행현황이 ’접수완료’에서 ’배송준비’로 바뀜. 운송장 번호 등록(확인해보면 기표지출력 상태)


2015년 10월 26일   진행현황 예약접수로 바뀌고, 운송장 번호도 사라짐. 잠시 좌절 ㅠㅠ


2015년 10월 27일    티다이렉트에 전화 걸어서 문의. 알 수 없다. 물량이 부족하다. 기다려야 한다. 좌절 또 좌절. 다시 마음 비우기로 함. 그런데 저녁때 ‘배송중’으로 상태가 급변 !!!


2015년 10월 28일    아이폰의 갑작스러운 도착. 상황종료





아이폰 6s+ 128GB 스페이스 그레이 '사진' 개봉기


택배박스를 열어보니 등장한 어여쁜 하늘색 박스. 두근두근~~~!!!


아이폰 박스와 Nano USIM


iPhone 6S Plus~~~!!!


언제봐도 질리지 않는 애플로고




박스를 개봉하자, 첫 모습을 드러낸 나의 아이폰~


심플한 구성의 내용물. 충전기가 여전히 1A짜리라는것은 좀 아쉽다.





아이폰 6s+ 와 아이폰 4s 비교샷 (앞)


아이폰 6s+ 와 아이폰 4s 비교샷 (뒤)


아이폰 6s+ 하단 - 헤드셋 잭, Lightning 커넥터, 스피커


아이폰 6s+ 좌측면 - 벨소리/무음 스위치, 음량 조절 버튼


아이폰 6s+ 우측면 - 잠자기/깨우기 버튼, USIM카드 트레이





그랑클레어 3D 풀커버 강화유리를 붙이기 직전 샷


3D 풀커버 강화유리를 붙이고 난 직후!!! 측면의 곡률까지 깔끔하게 완벽히 커버된다








그랑클레어 3D 풀커버 강화유리를 붙인 6s+, 그리고 아이폰 4s


그랑클레어 3D 풀커버 강화유리를 붙인 6s+, 그리고 아이폰 4s





맥풀 필드 케이스(블랙), 3D 풀커버 강화유리와 간섭없이 잘 호환된다


맥풀 필드 케이스 그리고 딴지 벙커링


그랑클레어 3D 풀커버 강화유리, 맥풀 필드케이스, 벙커링의 조합


적어도 2년이상은 나와 함께 하게 될 아이폰 6s+ 마무리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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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기일이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비가 뿌려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내리쬐던 점심때 즈음, 1년 전 오늘을 떠올리며 마음이 꽁깃꽁깃해져 있는데, 벨이 울리고 어마무지하게 큰 박스 하나가 택배로 날아들었다. 처음에는 박스가 너무 커서 마왕의 한정판 LP 앨범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더랬다. 아마 마왕의 한정판 LP 앨범을 구매해서 오늘 택배로 받은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을 듯. 


이런 오픈케이스류의 포스팅은 몇 마디 말 아닌, 사진으로 이야기하는 게 옳을듯싶다.



박스크기를 가늠할 수 있도록, 일반적 사이즈의 CD 케이스를 올려놓았다


오잉?


흠...?!





오동나무 박스 케이스








4LP(투명,화이트,레드,블랙) + 사진 5매 + 가사포함 포토북 + 넘버링 카드(번호 랜덤) , 오동나무 박스 케이스


넘버링 카드, 번호는 2033
















우측은 지난해에 발매되었던, 한정판 베스트 앨범 Reboot Yourself




23살 즈음이었나, 집을 이사하면서 턴테이블은 완전히 나와 작별하였더랬다. 당시로써는 굳이 그 불편함을 감수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또 모든 앨범을 CD로 사기 시작한 지도 오래되었을 때였으니까. 그리고 15년여가 흐른 지금, 마왕의 LP 한정판 앨범을 구입하게 되면서, 다시 조금은 불편한 과정을 통해서 음악을 듣는 아날로그적 회귀를 해보려고 한다. 장비병 돈 잔치를 할 여력은 없고, 입문용으로 가볍게 들을 수 있는 턴테이블을 한번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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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마왕의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포스팅을 작성하는 지금은 10월 27일 새벽. 마왕의 기일이다. 창 밖에는 울적하게만 느껴지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신해철이라는 이름을 가슴속에 담았던 사람이라면, 오늘 마왕의 기일에 내리는 창밖의 비를 보면서 나와 같은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게다. 


벌써 1년. 


그러나 여전히 너무나도 원통하고, 원통하다. 정말 너무 소중한 존재를 빼앗겨 버린, 아픈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마냥 슬퍼하고만 있진 않겠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중요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기에...



마왕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러,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으로 출발하기 직전


아들 성현이에게도 보라색 리본을 달아주었다


내가 그랬듯, 성현이도 마왕의 음악과 말들을 들으며 자라길 바랬었다



'Here I stand for you'라 명명된 이번 1주기 추모식. 실내 추모관에 모셔졌던 마왕의 유골함을 야외 안치단으로 옮겨서 모시는 봉안식도 거행되었다. 추모식, 유골함, 야외 안치단, 봉안식. 이런 단어들을 내 손으로 써내려가다가도,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게 된다. '신해철'이라는 이름과 이 단어들이 같이 쓰이고 있다니. 신해철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故 라는 글자를 붙여야 한다니. 알 수 없는 차가운 낯설음의 감촉이 내 가슴을 할퀸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린 이 상황들에 조금씩 익숙해져만 가는 나 자신이 슬프다. 죽음에 대해 여러 고민 어린 메세지들을 던져왔지만, 왠지 죽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던 한 남자의 부재(不在)는, 나에겐 죽음-영원한 소멸의 무한한 지속-이라는 관념만큼이나  받아들여지기 힘든 그 무언가이다. 

















그에 대한 기억을 글로 써내려가기도 힘든 지난 1년여의 시간이었다. 정말로 글을 쓰지도 못하겠더라.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과 슬픔의 실타래들이, 부정과 분노의 감정들과 뒤엉킨 채 정리되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이렇게 떠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다.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사람. 


그가 무슨 암 투병이라도 하다가, 그렇게 치열하게 병마와 싸우다가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으리라. 신해철이라는 사람에게서, 스스로 마지막을 정리하거나 사고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앗아가 버린 그 상황들은 분명 인간의 실수와 실수의 연속이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로 그는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아산병원으로 이송되는 앰뷸런스 안에서 잠시 눈을 떴었다고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을 세상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어찌 그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끝내고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겠는가. 원통하고 또 원통할 뿐이다.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여행을 끝내리...미련없이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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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라는 걸 만든 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돌이켜보니 처음 블로그를, ‘훈쓰블로그닷컴’이라는 이름으로 개설한 지 벌써 10년여가 되었다. 10년 차 블로거? 훗. 실상 사용하거나 글을 쓴 시간은 찰나와 같이 짧다. 그냥 터를 닦고 집을 지어놓고 그렇게 세월을 보냈다는 말이다. 가끔 집을 리모델링하거나 아예 재건축하는 ‘토목사업’을 진행하긴 했지만, 실제로 집의 곳간을 채운 적은 별로 없었다.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 블로그의 정체성이, 주로 '고양이'였던 시절에는 연속되어 이어지는 죽음, 그 차가운 이별을 기록하는데 힘겨워하기도 했다. 내 개인적으로 무언가를 해보자 하며 동분서주하기도 했고, 많은 시간은 술독에 빠져 지내느라 주변을 돌보지 못하기도 했지. 또 때로는 내 안이 텅 비어 버려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버린 세월도 있었다. 짧은 잡설이나마 글이랍시고 주절거리고 싶었을 때에도, 배는 더부룩한데 아무것도 쏟아내지 못하는 불임의 세월이 계속되었다.


이러저러하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결국 가끔 생각 날 때마다 블로그에 접속하여, 위에서 예시로 든 토목사업을 진행하며 블로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다가, 정작 토목사업이 종료된 후에는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가 버리는 반복에 반복. 내용을 채우기보다 수단과 시스템을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다시 텍스트큐브나 워드 프레스 같은 설치형 블로그로 돌아가야 하느냐를 고민하기도 했다. 참 쓸데없어. 공부 못하는 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맨날 필기구 관련 사이트에서 샤프들 사모으는 꼴이랄까.


기업의 영업이익에 대한 판단에 따라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서비스형 블로그보다 다시 웹호스팅 기반의 설치형 블로그로 돌아가는 것을 꿈꾸지만, 가끔 잘못 검색한 번 잭팟 터지면, 계속해서 트래픽 초과되어버리는 일 년에 몇천 원짜리 호스팅의 한계를 한두 번 경험하기도 했고, 지금 나에게는 티스토리가 서비스를 중단할까 걱정하는 것보다는 내가 블로그에 글을 안 쓰게 되는 것을 걱정하는 게 더 현실적인 걱정일듯싶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아직은 시기상조.


한적한 이 공간이 좋다. 많은 사람이 네이버 블로그와 티스토리를 비교하면서, 네이버 블로그가 가지는 압도적인 유입 방문자 수를 장점으로 들던데, 그 글들을 보고 더더욱 티스토리로 마음이 안착함을 느꼈다. 적당히 한적한 공간이 좋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개된 공간에 포스팅되는 글들이지만, 장소 자체는 적당히 한적하다는 것. 마음에 든다. 집에서 혼자 노트 펴놓고 펜으로 일기 쓰는 것과는 좀 다른 맥락이 블로깅의 묘미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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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10시경 휴대전화로 문자가 날아들었다. 너무 늦게 잠든 터라 무척 피곤한 상태였는데, 그 문자를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여전히 그의 이름은 내 가슴 한켠을 애리게 한다. 





건드리기만 해도 버벅이는 아이폰4s로 페이지에 접속하려다가 포기하고, 컴퓨터를 켰다. 비몽사몽간에 페이지에 접속하고, 살펴보다가 구매했다. 무조건이라는 말. 그래 무조건이다. LP판 버젼으로 나오는 한정판이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 턴테이블 하나 들여놓으면 되는거지.







앞으로도, 이런 앨범들은 가끔 나올 것이다. 어쩔 수 없다. 더는 신해철이나 N.EX.T의 이름으로 신곡은 나오지 않는다. 이미 그가 세상에 들려준 노래들을 여러 가지 형태로 묶어놓은 앨범이 나오겠지. 물론 그가 만들어 놓고 발표하지 않는 곡들이 깜짝 선물처럼 함께 들어있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일련의 앨범들이 신해철이라는 이름을 팔아먹는, 산업자본의 상술이라도 좋다. 기꺼이 그 상술 위에서 원 없이 춤을 춰주리라. 신해철이니까. 마왕의 이름이 아로새겨진 앨범이니까. 이 세상에 남겨진 그의 흔적과 숨결이니까. (그리고 조금이나마 남겨진 그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말이다.)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동안 도무지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수많은 기억과 생각들과 말들이 회오리쳐 맴도는데, 밖으로 쏟아낼 수가 없었다. 조금씩 써내려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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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성현이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여전히 기억한다.


약간의 피로감이 뒤섞인 채 바라보았던 그 분만실의 어두운 조명과 잔잔한 클래식의 선율. 우리 부부가 이전에 미리 선택했던 출산의 조건들이었다. 단 한 가지가 달랐다. 우리가 선택했던 건, 내가 출산의 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출산이후 탯줄을 자르는 것이었다.진통이 오고, 양수가 터지고 얼떨결에 분만실로 아내의 손을 붙잡고 들어갔고, 출산의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얼떨떨한 그 느낌. 어색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내가 부르는 이름이었지, 내가 불리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임신을 지켜보면서,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을 머리로 인식해가긴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던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21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 속에서 이름만 아버지였던 나는, 조금씩 아버지가 되어갔다.


누구나 처음 부모가 되어보고, 처음 아이를 키워본다. 미리 상상해보고 책을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글로 배워지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닌듯하다. 대부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 그 속에서의 선택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부모가 되어간다.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나의 철학이 아이 앞에서 갈지자처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내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육아 일기 일수도 있고, 그냥 푸념 어린 끄적임일수도 있다. 정확히 무언가를 정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기록이 기억을 이끌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록해야 한다.



우선, 돌잔치 때의 성장 동영상이나 2013~2014년 1년간의 기록으로 모아놓은 사진 업로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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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보면 역시나 인생은 무수한 선택들의 연속이다. 제한된 시간속에서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이, 미래의 내 삶의 얼굴들을 결정케 할 것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머릿속으로 되내이며 서 있는 지금. 역시나 그 선택은 쉽지가 않다.  지금보다 더 어렸던 시절에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라는 '재화'가 유한하다는 현실 직시를 하지 않고 마치 무한한 듯한 착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기에, 무언가를 선택한다기 보다는 이것저것 다 해보려고 주어담기만 했던것 같다. 물론 이것 저것 다해보지도, 역시 성취해내지도 못했다.  


아직은 욕심을 부릴 나이이다. 아직은 욕망하기에 익숙한 나이이다. 


그래서인지, 손에 잔뜩 움켜쥔 무언가를 비워내듯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비워내기'보다는 선택과 집중을 위한 '가지쳐내기' 정도라고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욕망의 자아들을 토닥이며 안심시켜본다.  그리고는 하고 싶은것들, 혹은 해야 한다고 생각 하는 것들 - 그 욕망들을 깎고 잘라내본다. 이것만큼은 내 삶의 어깨에 둘러매고 가야겠다 싶은 것들 몇가지가 남는다. 여전히 많기는 하다. 


돌이켜보면 늘 이것저것 다 주어담고자 했다.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어라? 저건 필수지!? 이러면서 욕심부려대다가 정작 그 어떤 것에서도 유의미한 결과를 남기지 못했던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예를 들어보자. 많은 이들이 비슷한 류의 욕망들에서 허우적 거렸을 것이다. 


올해는 영어 공부해서 TEPS의 제왕이 됨과 동시에, 운동을 통해 내 Body와 너무 친화적이기만한 지방들과 작별을 고하자. 그런데, 싸나이가 칼을 들고 무만 썰순 없지. 어찌 유산소운동만으로 만족하랴. 남자의 로망은 역시나  스파르타... 근육운동. 덤벨하고 친해지면서 아놀드의 젊은 시절을 내몸으로 빙의시키겠다. 허허허 여기서 만족할순 없다!!!   왠지 허전하거덩~~~  문화 시민답게  Photoshop과 LightRoom같은 툴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놀아줘야 카메라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머리를 사로잡는다. 책은 구입했으니 익히는 것만 남았다. 자...눈을 돌려 방을 보니 먼지쌓여가는 기타가 보인다. 왠지 나도 코타로 오시오의 황혼 정도는 쳐줘야 할 것같다. 음...그러자면, 폭풍 크로매틱부터 시작을...블라블라...

 


기억하자. 


나는 늘 그 어떤 것도, 유의미한 내 삶의 족적으로 남기지 못해왔다. 언제까지 이럴수는 없다. 욕망과 욕심을 다 쳐내버리고... 작은 몇가지에 집중하자. 제발.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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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글은 쓰지 않고, 머릿속으로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지내왔다. 수많은 주제어들이 머릿속을 휘집고 다녔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갖추어지면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만 해왔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글쓰기 도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옛날 아날로그 시절로 비유하자면, 질좋은 원고지를 고르고 펜촉과 멋드러진 펜대를 이것저것 사모으고, 그러다가 잉크의 메이커별 색감 차이에까지 눈을 돌리는 식이랄까? 이런 '도구찾기'를 21세기의 방식으로 디지털화 시켜보자면 '글쓰기 어플 구매'로 환원된다. 


MAC용 글쓰기 어플로 Ulysses 3와 Scrivener를 한참 동안 살펴봤고, 트라이얼 버젼을 다운받아 글쓰기 툴의 기능을 이것저것 테스트해보기도 했다. 정작 글은 쓰지 않은채. 실상, Scrivener는 왠간한 글쓰기 용으로 사용키에는 너무 거대해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논문등 복잡한 구조를 가진 장문의 글을 쓸때 사용하는 어플이기도 하다. 물론 여전히 트라이얼버젼과 어떤 고마우신분이 손수 번역해주신 메뉴얼은 차근히 읽어볼 생각이다. 어쨌거나 나의 선택은 Ulysses 3 였다. 적당한 길이의 글, 다층의 구조의 글을 가진 글쓰기. 블로그용 글쓰기에 딱이라는 실상은 넘친다는. 그러나 여기서 멈출수 있으랴. 맥북과 연동해서 쓸 아이패드용 글쓰기 어플 고르기에 착수했다. 메인 글쓰기는 맥북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므로, 아이패드용 글쓰기 어플은 글재료를 모으기위한 용도로 사용할테야. 아이패드용 어플은 내가 Ulyesses 3를 구매한 순간 결정된 것일 수도 있다. Ulysses와 연동되는 Daedalus Touch 구매. 외부에 나가있을때나, 가볍게 생각이 떠올랐을때 Daedalus Touch를 사용하여 아이패드로 가볍게 글감들을 기록해놓고, 제대로 글쓰기할때 Ulysses로 정리하여 마무리. 이 큰 그림이 얼추 완성되었다. 더이상 글쓰기 어플을 찾아헤매일 필요는 없어보인다. 왠지 뿌듯해지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그런데 각잡고 멋진 제목이나 특정한 키워드를 가지고 글쓰기를 하자고 마음 먹으니, 오히려 글을 쓸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변비에 걸린듯 머릿속에 거대한 혹은 근사한 키워드들만 맴돌 뿐, 내 밖으로 글들이 써지지 않았다. 오호라...통재라. 오랫동안 짧은 글조차 제대로 끄적여보지 않았는데, 머릿속에 상념들을 차곡차곡 쌓고 구조화시켜 거창한 글더미를 완성시켜보겠다는 욕심은 말그대로 과욕이었나보다. 어찌 아이가 배밀이도 하지 않고 걸음마를 하고, 뛸수 있으랴. 


오늘 아침 블로그에 글을 끄적이고 싶어졌다. 그냥 맥북을 켜고 사파리(웹브라우져)로 티스토리의 내 블로그에 접속후 그냥 글을 이렇게 끄적이고 있다. 그렇게 이것저것 알아보고 구매해놓은 어플들을 통하지 않고 이렇게 직접. 한동안은 이렇듯 가벼운 일상적인 끄적임이나 독백들을 이렇게 끄적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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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짓누르는, 나에게서 온 묵직한 무기력과 우울의 감정들 속에서 스스로에게 침묵을 강요당해왔다. 2014년, 그리고 2015년의 시간들.  함께 했던 냥이들을 고양이 별로 떠나보내기도 했고, 내 정신적 우상의 갑작스런 죽음이 주는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점점더 빠져들어가는 듯한 처절한 무기력속에서 술에 찌든채 허우적 거리며 삶의 바닥을 마주하기도 했다.  



물론 절망만이 나를 휘감았던 것은 아니다. 나를 부모로 만들어준, 아버지로 만들어준 내 아이를 보며 찬란한 순도 100%의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한가지 확실한건 지나온 시간들속에서의 나자신을 채웠던 그 무언가들을, 그것이 슬픔의 감정이건 기쁨의 감정이건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채 세월의 고개들을 넘고 넘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돌아보니, 나는 그냥 걸었을 뿐이다. 어디로 가는지, 내가 걸어간 발걸음들이 어떤 궤적을 그려왔는지조차 되돌아보지 못한채. 



그 지난한 흐름들 속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쳤다. 술병을 손에서 내려놓았고, 조금씩 조금씩 내 삶을 정상적 궤도위로 올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겨우. 저앞에 출발선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그 출발선에서조차 심하게 낙오되어 있었던게다. 다시한번 '새로운 출발'이라는 시작점 앞에 서고자 한다. 


Reboot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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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혼자 나가던 고양이 밥주는 길.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와이프와 같이  아들 성현이를 아기띠로 가슴에 안고선, 세식구가 길냥이들을 만나러 나갔었다.  처음이었다. 그때 사촌동생의 문자를 받았다. 요며칠사이 늘 조마조마해왔던 일이었다.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 마음속 불안의 그림자속에 부유하던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신해철.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

 

수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슬픔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눈물이 많이 말라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내 가슴 속으로 훅하고 파고 들어오는 그 감정들. 가드도 올리고 있지 않다가 정통으로 한방 맞아버렸다. 길위에서 아기띠로 아이를 가슴에 안은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37살짜리 남자가 바보같이...   

 

여전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오늘밤. 술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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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03시 57분. 나는 새로운 미지의 시공에 첫발을 내딪게 되었다. 

내 인생 새로운 막의 문을 열고, 새로운 장에서 태어난 느낌이다. 어두운 조명이 안개처럼 잔잔하게 깔린 분만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고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 안은 아내의 곁을 지키던 그때. 꿈꾸는 듯한 몽환의 끈적함 속에서, 내 아이를 만났다. 묘한 낯설음을, 잔잔한 설레임과 기쁨이 잠식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게 피부에 와닿지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나에게 있어 '부르는' 이름에서, 이제 '불리워지는' 이름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 그 무거운 의미를 이제 배워나가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발...한발... 발걸음을 옮기게 되겠지.

 

다사다난 했던 2013년이 가고, 2014년이 왔다. 내 아이와 함께 할 2014년.

열심히...치열하게 살아내봐야겠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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