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저 편으로 멀어져가는 똘레와의 추억들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그 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고운 모래알과 같았다.    '4월 22일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을때는 똘레가 떠나기 한달전이었네...',   '어제 이맘때쯤엔 똘레가 내곁에 살아있었는데...',   '이틀전 이맘때즘엔, 삼일전 이맘때쯤엔...'  그렇게 똘레와의 이별을 기준으로 시간들을 세어온지 이제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더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꼽아가는 시간들이 열손가락을 넘어서면서...그 숫자가 커져갈수록... 그렇게 슬픔의 빛깔도 조금씩 옅어져 가겠지. 똘레의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듯 하다가도, 불현듯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똘레가 없는 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9일이라는 시간동안 똘레가 없었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진다.


#1 / 똘레의 마지막 인사

   5월 21일 저녁, 똘레가 활동성과 식욕이 급감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몇 시간후 5월 22일 새벽에도 똘레를 곁에서 보는데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듯 보였다. 호흡도 나빠지고 걷지도 못한채  아예 얼굴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일어나서 걸으려 할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양옆으로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병원에 갈 요량으로 우선 집에 내려가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눈을 붙였다. 2시간정도 잤을까... 전화벨이 울렸고,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똘레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예 옆으로 누워서 오줌을 싼다는 것이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침 9시가 약간 넘은 시간, 택시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똘레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똘레를 보내주고 이틀정도 지난 월요일인가 어머니가 나에게 한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똘레의 마지막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똘레가 병원가기 몇시간전 아침 6-7시즈음에 부모님께서 식사하시고 계시는데. 똘레가 '야앙'하면서 자기방에서 마루쪽으로 나오더란다.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똘레방에 갔을때도 누워있기만해서 그냥 쓰다듬어주고 나오셨다는데... 얼마 있다가 똘레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야앙~'하면서 마루로 나와 부모님께서 식사하고 계시는 식탁쪽으로 걸어와서는 식탁에 앉아계신 부모님 다리 사이를 몇 번 자기 몸으로 툭툭 부비며 지나가더란다. 그래서 부모님은, 저 녀석이 힘을 차렸나보다하며 잠시 안도하셨다는데. 그러다가 방으로 들어가서 야옹거리더니,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아예 누워서 오줌을 싸는 것을 보시고는 바로 나한테 전화를 하신거라는 이야기였다. 어머니께서는 '그날 아침 똘레가 엄마하고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던것 같다'며 눈물 지으셨다. 똘레의 마지막 인사. 밤새 몸조차 일으키지 못했던 똘레가 자신의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인사... 자신이 다음 날 아침을 맞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이었을까...




#2 / 내 동생 같았던 똘레

   2000년 7월부터 옹이를,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가 키우기는 했었지만
  똘레는 내가 키운 첫 고양이였다. 나만의 똘레였고, 똘레만의 나였다. 추운 겨울이면 두툼한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 내 종아리 근처에 몸을 누이고 자던 녀석이었다. 가끔 술한잔 기울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자는 녀석을 깨워서  그녀석을 향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고... 슬플때 똘레에게 하소연하고 있으면 그녀석은 책상에 앉아있는 내 두 팔사이로 와서 털써덕 안겨서는 나의 이야기에 화답하기도 했다. 모기가 출현하면...똘레와 합동작전을 벌이며 그 모기를 잡기도 했다(사람눈은 모기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똘레는 모기의 움직임에 시야확보가 가능했다)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을 함께 해왔던 추억을 어찌 이 짧은 글에 다 담을수 있을까... 똘레는 내 동생이었고, 나는 똘레에게 때론 퉁명스럽고, 마음만 앞서는 그러나 행동은 상냥하지 못했던 못난 형이었다.

   똘레야...우리 처음만난 날... 넌 조리뽕 과자봉지에 몸이 다 들어갈 정도로 작았었어. 그런 너를 보며  아가였던 네가, 밖에서 겪었을 배고픔과 두려움 대신, 따뜻한 편안함과 안식의 자리를 주겠다 맹세했었어. 그렇게 작았던 네가... 나보다도 훨씬 늦게 태어나고, 어렸던 네가 어째서 나보다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형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길을 먼저 떠나간거니... 미안하다. 넌 언제나 나에게, 그 누구에게 보다도 가장 큰 신뢰와 믿음을 보내주었는데. 난 그에 화답하지 못한 것만 같다.




#3 /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간다

   5월 22일, 아침에 나에게 야옹거리던 똘레를 맡기고 왔던 병원에서, 더이상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똘레를 안고 병원을 나서던 그날 저녁. 아무 것도 먹기 싫었다. 똘레는 배가 고팠을텐데... 나혼자 무언가를 먹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미안했고, 나의 슬픔이 가식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똘레를 보내주고 돌아주고 오는 차 안. 슬픔 속에서 고개를 드는 강한 배고픔을 느꼈다.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인 인간...그 생의 억척스러움이었을까...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강과 상승 이미지의 대비니 뭐니 하는 텍스트의 이해가 아니라, 그 말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먹어야 산다는 것. 누군가의 떠나감을 슬퍼하면서도, 눈물을 훔치며 우걱 우걱 무언가를 입으로 밀어넣어야 생을 유지 할 수 있는 유기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의 억척스러움을 보며 느끼게 되는 서글픔이랄까... 말로 풀어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꼈다.  그래...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가지만... 떨어지는 눈물은 여전히 짭자름하고 아프다.



#4
/ 2006년 8월 11일

   똘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더듬어보다가 똘레 가출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그 당시 느꼈던  간절함과 다시 똘레를 만난 안도감을 그 글에 기록해둔 것 같았는데,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예전 블로그를 훑어보아도 도통 그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작년 11월에 블로그를 새로 갈아엎으면서, 예전 블로그의 글들은 무료호스팅계정에 걸어두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가출사건(?)에 대한 포스팅은  '비공개 상태'로 잠자고 있었다.  그 글의 포스팅의 말미에 난 이렇게 써놓고 있더라...

 [  똘레 실종사건 060811 (부제 : 다시 찾은 똘레)   http://hunsblog.tistory.com/161  ]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늘 소중한 존재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는데, 늘 함께 있을때는 그 존재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다가, 그 소중한 존재의 '부재'상황을 맞이하고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는것 같다. 늘 내곁에 있는 모든 소중한 존재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과연 나는 그날로부터, 똘레를 정말 보내야했던 2010년 5월 22일까지... 4년에 가까운 시간들을, 내가 내뱉은 그 말처럼 살았던 것일까...혹시 그 소중함과 간절함을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희석시켜온 것은 아니였을까... 난 선언적인 말만 내뱉을 줄 알았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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