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웃다가 또 울다가.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뿔이 난다? 고 하던데, 그렇다면 아이들 엉덩이에 하루에 수십 개 뿔이 나야 할 텐데, 아... 웃다가 울기도 해서 뿔이 다시 없어졌나 보다. 아직 유치원 2년 차인 딸내미는 여전히 아기 같은데, 초등학교 2학년 아들 녀석은 이제 제법 몸도 자라고, 목소리도 이젠 아기 티가 사라지고 어엿한 소년의 명랑함이 느껴진다. 몸과 마음이 함께 쑥쑥 자라난다고 하지만, 몸의 자라는 속도가 마음의 그것에 비해 훨씬 빠르다. 겉모습이 자라나면서 그렇게 자란 만큼 아이의 행동도 비례해서 성숙해졌을 거라 지레 생각하곤 하지만, 실제 마음이 성장하는 속도는 그보다는 더딘 것 같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재잘거리기도 하고, 징징거리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마무리를 잘해가고 있었는데, 잠들기 전 아이의 말과 행동으로 조금 혼을 냈더니 제법 서운했나 보다. 훌쩍거리며 저만치 떨어져서 잔다. 아직 어린아이에게 성인인 내가 느끼는 옳고 그름의 잣대를 적용하는 실수를 자주 범한다. 요즘 제법 자랐다고 생각하면서 더더욱 그러하다. 조금 전에도 그러했다. 그냥 아이의 칭얼거림과 투정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했거늘.  그런데 혼내도 언제나 쪼르르 품에 와서 안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훌쩍거리며 팔 하나 간격 정도 떨어져서 잠드는 아이를 보면서, 문득 이 녀석 정말 점점 자라고 있구나 싶기도 하다. 늘 아기 띠에 안고 다니던 내 어린 아기와 점점 자라고 있는 소년의 아들이 내 안에서도 혼재해 있다. 이렇게 아이들이 자라나는 거겠지. 내가 처음 '아빠'가 되었던 그 순간이 낯설고 새로웠듯, 아이가 자라나면서 보여주는 성장의 스틸컷들은 늘 새롭고 낯설 테고. 어찌되었건, 자기 전에 혼내고 훌쩍이면서 잠든 아이를 보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 '아들아... 아빠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널 혼내고 싶지 않았는데. 혼내고 나서도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 아빠의 마음을 너는 알려나?'  

하긴 어떻게 알겠는가. 예전 70년대~80년대 어린 시절  친구 아버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잘못해서 아버지가 회초리로 종아리를 그렇게 때린 다음에 울면서 잠든 친구 방에 들어가, 퉁퉁 불어서 벌게진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마음 아파했다는 이야기. 그 친구 아버지의 마음이 이런 비슷한 종류였을 게다. 다만 그 시절은 아이에 대한 체벌이 사랑의 매. 훈육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란 이유로 합리화되었고 비교적 익숙했던 시절이었다는 차이가 존재할 뿐. 그러나 밤에 친구 아버지가 울며 잠든 친구 곁으로 가서,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며 마음 아파하고, 자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말을 했어도, 그것은 그 친구 아버지의 자기 위안일 뿐. 잠든 친구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물론 나중에 자라서 아이를 키우면서 자기 아버지의 일화를 누군가에게 듣는다면, '그때 어떤 마음이셨겠구나.' 하고 훗날 짐작할 수 있을 뿐. 그날 울면서 잠든 친구에겐 서운함과 아픈 종아리만 남았을 게다. 

오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잠든 아이를 보면서, 마음 아파한들. 어찌 아이가 알겠는가. 그저 서운함만 남았을 뿐. 늘 되뇌는 말이다. 전반적으로 조금만 더 참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자. 아직 어린아이이다. 성인의 잣대로 판단하면 안 된다. 아이들은 그렇게 좌충우돌 커가는 것이다. 또, 부모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방향대로 아이가 움직여주기를 기대하지 말자. 나 또한 그러지 않았고, 또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매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즐거움과 웃음만이 가득한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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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내 아이.   그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인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미루고 미루어졌던 첫 등교.

2020년 5월 27일.  오늘 아이는.

인생의 또 하나의 관문을 열어 젖히며, 인생의 새로운 여정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 설렘 가득 담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그대에게...

아빠는, 그 첫 순간의 사진을 담아 미래의 그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  보너스(?) 사진 - 2017년 3월. 첫 등원을 하던 아이의 모습 / 격세지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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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ILCE-9 #A9 #SEL85F14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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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처음 부모가 된다. 연습은 없다. 물론 각자의 준비상황들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것도 일종의 상상의 영역일 뿐. 리허설은 없고, 오직 실전일 뿐이다. 2013년 12월 26일 새벽 3시 57분. 세상에 태어난 성현이를 어설픈 몸짓으로 안아 들던 그날. 나또한 아버지로 새로 태어났다. 

 

그리고서 매번 새로운 상황과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기쁨. 어색함. 셀레임. 걱정. 모든게 새로웠다. 

 

이제 성현이가 한국 나이 여섯 살(올해 12월 26일이 만 다섯 번째 생일이다). 그럼 내년이면 일곱 살이라 불리운다. 어머나 깜짝이야. 일곱 살이라니 !!!  ‘일곱 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섦과 거리감만큼 성현이는 자라났고, 독립된 개체로써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신을 ‘하나’로 동일시하던 시기가 지나가고, 분리 독립의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체감한다. 

 

부모가 혼내면 울음을 터뜨리고서고, 두 팔 벌려 안아주면, 울면서 달려와 품에 폭 안겨서 고개를 파묻고 눈물 콧물 범벅이던 시기는 지나가고. 외부의 자극(?) 대한 반응으로써의  ‘서운함’을, 말과 행동으로 조금씩 표현하는 시기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언젠간 반항의 시기도 오겠지.

 

이런 변화의 조짐이, 사실 좀 낯설다. 늘 품 안에 안고, 함께 울고 웃는 ’내 아이’라는 게 나에겐 여전히 익숙한데, 아이는 일방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이기를 서서히 거부해나간다. 어설픈 날갯짓일지언정, 푸드덕푸드덕. 부모라는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이것은 본인이 의식적으로 의도한 과정은 아니다. 아이의 키가 자라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음도 자라난다. 의식적으로 깨우쳐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라나고 있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서적 지체를 경험하기 십상이다. 나와 아이를 둘러싼 이러한 역학관계(?)의 변화를 직시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한 것 같다. 이러는 사이, 육아의 제2막이 시작되고 있다.

 

잠자리에 들 때,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잠들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과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울타리를 칠 것이다. 역시나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결국, 이 순간을 즐기고,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 귀찮아하지 말고, 두 팔 벌려 안아 들고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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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ILCE-9 #A9 #SEL85F14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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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ILCE-9 #A9 #SEL2470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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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난 지는 이제 50일을 향해가고 있고, 올해 12월 26일이면 세 돌이 되는 아들 성현이는 나날이 놀랍게 발전해간다. 이전에도 그러했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요 녀석이 자신의 뚜렷한 의지와 주관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13년 12월 26일생. 아직 36개월도 안 된 아이이지만, 벌써 몇 개월 후면 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 된다. 한창 예쁜 짓을 많이 할 시기. 애교도 많이 부리고, 뜻밖의 언어적 성장을 보여주어서 주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제법 말도 잘 통한다. 감정표현도 풍부해지고, 스스로의 감정 그 자체도 성인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또 혼내면 자못 서운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당연하겠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혼내고 훈육하면 그것을 그대로 아무 서운함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듯 했던 영유아시기는 이제 거의 다 지나간 듯하다. 아이는 하루하루 드라마틱하게 자라가는데, 정작 부모인 나는,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제대로 인지 못 한 채 아이를 대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부모가 챙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부모가 선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수동적 객체에서, 점점 능동적 주체로 자라나고 있다. 오로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의 통제(?)에 따라야 했던 아이가, 이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날기 위한 어설픈 날갯짓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이는 무언의 이야기를 한다. ‘아빠 !!! 나도 이제 컸어요!!!’


이제 아직 세 돌도 안 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좀 과한 것일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시원섭섭함. 뭐랄까… 아쉬움이 좀 더 진하게 배어 나오는 감정이다. 시간은 화살과도 같이 날아가고,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잡을 수 없다. 뒤집기도 못하던 그때,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그때, 배밀이를 하던 그때,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던 그때, ‘아빠, 아빠, 아빠’ 말 한마디에 기뻐하며 동영상을 찍던 그때 그 시절들엔, 아이가 좀 더 빨리 자라나서 의사소통도 하고 같이 능동적으로 교감하게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앞날을 바라보며 정겹기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시간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면 안 될까… 아들아. 내사랑 성현아. 



마왕의 추모식에 참석한 아들 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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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으로는 연신 우와- 우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무언가를 쳐다본다. 그걸 지켜보는 내 입가엔 흐뭇한 아빠 미소가 떠오른다. 여기까지 성현이를 데리고 온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과연 성현이가 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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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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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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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기차다. 


낮에 공원을 산책하러 나가면, 성현이는 나에게 ‘기차 보러 가자’고 조르곤 한다. 집에 있을 때도 기차 지나가는 소리는 놓치지 않는 성현이다. 그렇다. 성현이는 요즘 기차홀릭 시즌이다. 자동차와 기차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길을 지나갈 때나 관련된 소리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따사로운 봄날, 성현이를 안고 밖에 나간다. 이 모든 것 하나하나가 성현이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리라. 공원 산책을 나가서  경의선 숲길 공원의 끝자락, 지나가는 기차를 잘 볼 수 있는 곳에 선다. 그리고 기차가 지나간다.




아빠(나) : 성현아~ 우와~~~ 기차 엄청 길다. 우와~~~ 기차 진짜 길다.

성현이 : 우와~~ 기차 엄청 길다. 기차 진짜 길다.






모든 것 하나하나가 마냥 신기하기만 한 성현이, 정말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스펀지가 잉크를 빨아들이듯 배워나가는 모습을 본다. 자기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면서 아빠를 힘들게 할 때도 있지만, 점점 대화의 상대로 자라나는 아이를 바라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28개월을 향해 다가가는 아이를 보며 벌써 부터 ‘대화의 상대’라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게 조금은 이른 것일 수도 있겠다. 곰곰이 내 안을 들여다보며 생각해보니 내가 바라는 건, 아이가 어서 빨리 대화의 상대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기보다는 내가 성현이에게 늘 대화의 상대로 남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실 그 마음과 바램은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이다. 내 인생에서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사랑하는 아들아. 그 예쁜 미소 늘 지켜주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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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84 태권V를 기억한다. 1978년에 태어났던 나에게, 1976년과 1982년의 태권V보다는 1984년 태권V가 시간적인 접점을 가진다. 여전히 태권V의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릴 수 있는 내가 내 아들과 함께 태권V를 만났던 하루였다


오늘 일요일, 별생각 없이 부모님과 함께 일주일 치 장을 보러 신촌 현대백화점으로 향했다. 1층 입구부터 거대한 태권V 피규어가 서 있는 것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긴 했었다. 지하 식료품 매장에서 물건을 구입하고 상품권 교환을 위해 5층 데스크에 들렀다가, 두둥- 스탬프 이벤트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미션 용지에 스탬프 5개를 다 모으면, 태권V 엽서나 태권V 피규어를 준단다.







성현이에게 로봇 태권V 피규어를 안겨줄 생각을 하니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성현이 엄마가 언제 그걸 다 찍고 왔다 갔다 하냐고 말했지만 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이므로. 하하하. 그리하여 나와 성현이 엄마, 아버지, 어머니 이렇게 4장의 미션 용지를 들고, 신촌 현대백화점 본관 1층, 5층, 10층, 그리고 U-PLEX 1층, 12층에 흩어져있는 스탬프 데스크를 모두 찾아가 스탬프를 모두 다 찍었다. (생각해보니 성현이도 한 사람의 사람인데, 성현이 몫까지 찍어야 했던 것 같다. 태권V 피규어도 5개가 풀세트 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열심히 도장을 찍어 받은 피규어 인증샷은 이 글의 맨 마지막으로 미루기로 하고, 글을 이어 나가보자. 앞에 말했듯 현대 백화점 신촌점 곳곳을 누비면서 도장을 찍는데 그중에는 U-PLEX 12층도 있었다. 거기에서는 태권브이 40주년 특별 전시가 진행 중이었는데, 성현이를 꼭 데려와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행사를 하는 걸 보면서도 그냥 지나친다면 왠지 부모로서 직무 유기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하여 피규어를 받자마자 부모님과 성현이, 나와 아내 이렇게 다섯 명이 다시 전시장으로 고고고.












신촌 현대백화점에서 진행하는 전시는 약간 약식 전시 같고, 고덕동에 브이 센터에서 대규모 전시를 진행하는 것 같다. 아이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물해주러 간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잠시나마 아빠인 내가 추억에 빠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내가 직접 가져 놀던 그 장난감을 발견하고 어찌나 반갑던지. 어찌 보면 정말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이다. 내 아들을 데리고, 내가 내 아들만한 나이의 아이였던 시간의 추억들과 만나게 되는 경험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인생이란 게 참 짧고 금방 지나간다는 것… 영원을 꿈꾸지만, 유한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인간의 한 세대, 그리고 그 안에서도 찰나와 같은 젊음의 시절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룻밤의 꿈과 같이 짧은 것인지…


오늘 스탬프 미션을 다 수행해내고 받은 피규어. 왠지 차렷 자세한 태권브이 하나가 빠진 것 같아 좀 찝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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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6일이면 두 돌이 되는 내 아들 성현이.


아이는 정말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전날까지만 해도 쓰지 못했던 단어들을 오늘 갑작스레 발음하기 시작한다. 자기 주관 & 자기 고집이 형성되었고, 좋고 싫은 것에 대한 의사표시를 명확히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가에 대한 큰 상들을 제대로 확립해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는데,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다른’ 존재가 되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감정 표현이 풍부해진 지는 오래다. 진정 의미를 가지고 기뻐하며 박장대소 꺄르르 웃기도 하고, 강력크하게 떼쓰는 일도 많아졌다. 특히나 요 며칠 사이에 그 떼쓰기의 강도가 확 올라갔다. 아들 녀석은 자기 고집이 있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아이이다. 좋고 싫은 걸 명확히 표현하는 아이. 이러한 성향의 아이를 부모가 잘 키워낸다면, 그 자기 고집과 자기 주관은 아이의 장점이 되어 아이를 빛나게 해줄 것이고, 아이의 삶을 지켜주는 버팀목이 될 것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자기 고집과 자기 주관을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꺾어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무작정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키울 수도 없다. 그래서, 고민은 시작된다.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 할 것인가?’ 라는 것은 여태까지 다소 추상적인 차원의 고민이었는데, 이제는 굉장히 현실적인 차원의 고민이 되었다. 내가 아이가 심하게 떼쓰는 상황을 목도하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훈육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너무 거창하게 말했나? 딱 한마디로 쉽게 표현하자면, ‘어떻게 혼내야 할 것인가?’ 에 대한 고민을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일이 무척이나 잦아졌다. 현재 나는, 나 스스로 이런 상황에의 행동지침이나 메뉴얼 같은 게 확립되어 있지 않기에, 내 행동의 일관성이 담보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아이가 느끼기에도, 아버지의 반응이 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좋지 못하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하건 간에, 아이가 예측 가능한 ‘아버지’여야 한다. 


요즘 반복되는 상황을 거칠게 요약해보자면, 우선 나는 최대한 참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의 떼쓰기가 나의 인내력의 허용범위 내에서 그친다면, 아이는 좋게좋게 이야기하며 달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이의 떼쓰기가 나의 인내력의 한계를 넘어서거나 그때그때의 감정에 따라 내 인내력이 급격히 낮아진 상태라면, 아이는 버럭 큰소리로 혼내는 모습의 아버지를 보게 될 것이다. 나도 아버지이기 이전에, 부족하디 부족한 그냥 인간이기에, 내 감정적 상태에 따라 내 반응의 양태가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 상황에서 나 스스로가 컨트롤되지 못했음을 느낄 때, 너무나 크게 후회하게 된다.


어떠한 포지션을 취할 것인가.  그때그때의 감정에 기대어 아이를 키울수는 없다.  아마도 내 고민의 종착지점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일듯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 아버지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행동들을 하지 않는 것. 그것에 초점을 맞추어봐야겠다.




목욕하러 들어가기 전 한 컷. 아이의 해맑음 웃음 지켜주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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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을 인(忍) 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들 한다. 참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늘 생각하지만, 그러한 나의 결심은 길게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뒤집지도 못하고 누워서, 배고프면 빼에에 울고 눈만 껌뻑이던 신생아 시절을 지나, 이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자기 고집도 제법 생긴 22개월짜리 아들. 요 녀석과 조금 부대끼다 보면, 내 인격의 바닥을 본다. 아… 이 부족하디 부족한 아버지여. 그대의 아버지는 진정 어른스러운 아버지이셨건만 그대는 왜 그러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고 아버지로서 역할 하면서, 내 아버지가 진정 성인군자셨다는 것을 느낀다. 


늘 반성하고 경계하자. 나의 편의를 위해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가장 쉬운 선택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또 아이를 혼낼 때 그것이 긍정적인 훈육이 아닌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제어 해내지 못한 ‘못난 화풀이’ 수준의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는 순백의 도화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훗날에는 아이 스스로 그 도화지 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나가겠지만, 지금 이렇게 어린 영유아 혹은 어린이 시기에는, 부모의 행동과 역할이 그 도화지에 자국을 남기게 마련이다. 내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란 그 도화지에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화지에 나쁜 얼룩이 묻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가 그 위에 마음껏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것일진대, 내가 내 인격의 미성숙함으로 내 아이의 도화지에 얼룩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 내 아들 성현이. 사실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내가 이토록 아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참 많은 게 바뀌었지.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나 또한 점점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10대 시절에도 또 그 이후에도 대화의 상대로 남을 수 있는 아버지 되기. 그게 아버지로서 나의 목표인데, 그러려면. 요즘 들어 자주자주 마주하게 되는 내 인격의 바닥을 좀 멀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성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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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성현이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여전히 기억한다.


약간의 피로감이 뒤섞인 채 바라보았던 그 분만실의 어두운 조명과 잔잔한 클래식의 선율. 우리 부부가 이전에 미리 선택했던 출산의 조건들이었다. 단 한 가지가 달랐다. 우리가 선택했던 건, 내가 출산의 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출산이후 탯줄을 자르는 것이었다.진통이 오고, 양수가 터지고 얼떨결에 분만실로 아내의 손을 붙잡고 들어갔고, 출산의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얼떨떨한 그 느낌. 어색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내가 부르는 이름이었지, 내가 불리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임신을 지켜보면서,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을 머리로 인식해가긴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던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21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 속에서 이름만 아버지였던 나는, 조금씩 아버지가 되어갔다.


누구나 처음 부모가 되어보고, 처음 아이를 키워본다. 미리 상상해보고 책을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글로 배워지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닌듯하다. 대부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 그 속에서의 선택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부모가 되어간다.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나의 철학이 아이 앞에서 갈지자처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내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육아 일기 일수도 있고, 그냥 푸념 어린 끄적임일수도 있다. 정확히 무언가를 정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기록이 기억을 이끌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록해야 한다.



우선, 돌잔치 때의 성장 동영상이나 2013~2014년 1년간의 기록으로 모아놓은 사진 업로드부터...^^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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