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내 아이.   그가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초유의 사태인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미루고 미루어졌던 첫 등교.

2020년 5월 27일.  오늘 아이는.

인생의 또 하나의 관문을 열어 젖히며, 인생의 새로운 여정에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그 설렘 가득 담긴 첫 발걸음을 내딛는 그대에게...

아빠는, 그 첫 순간의 사진을 담아 미래의 그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  보너스(?) 사진 - 2017년 3월. 첫 등원을 하던 아이의 모습 / 격세지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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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가딸기 떠나간 , 계속해서 딸기가 보고 싶다며 딸기를 찾는다.


딸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다음 . 딸기가 아픈 몸을 벗어났다고 말해주며 딸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고  나서도 5 넘게 시간이 지났건만, 성현이는 계속 딸기를 찾는다. 다시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딸기를 찾는 것은, 아직은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하기만한 아이의, 재회의 소망이 담긴 물음일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곁에 있던 딸기가 이제는 없다는 것 -  ‘존재의 부재(不在) 대한 자각을 해나가고 있는 같다. 


마왕(故 신해철)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에서, 말한 것처럼. 얄리의 죽음을 보고, ‘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 영원할 없다.’  삶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까지는 아니더라도. 2013년생, 한국 나이 7살의 성현이는 분명죽음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러했듯,  아이도 이렇게 또 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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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나 보다.  기나긴 뜨거운 여름의 터널을 지나 서늘한 바람의 감촉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 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보면 어김없이 마왕의 기일이다. 그가 떠난 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마왕 신해철 5주기 추모식.  2주기 추모식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은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  그런데... 각자 저마다의 치열했던  '생'의 시계를 멈추고 영면하신 분들이 계신 곳이기 때문일까?  이 곳에 오면. 시간이 정지해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본관 안에 들어서자, 팬들의 모습이 보였다. 철기군( 故 신해철 팬클럽 : http://cromfan.com/xe/ )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이곳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에서 5주기 추모식을 마친 후, 다시 서울로 이동하여 노들섬에서 열리는 공연에 참석하는 일정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들 둘에 아내와 함께 참석하기를 소망했던 나는...  열심히 운전해서 와야 했다. ^__^   핑크퐁 메들리(?)를 들으며...^_^;;;




철기군의 익명게시판 글에서,  참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에 대한 아쉬움의 글을 보았다. 마왕 팬의 연령대를 미루어 짐작하건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정신없이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기에,  그것을 감안하면 5주기임에도 이 정도면 많이 모였다고 나스스로에게 쓰담쓰담을 했지만,  줄어든 숫자에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깃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 마왕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있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이라는 곳에 모이지 못했을 뿐... 작년의 내가 그러했듯. 마왕의 기일. 아쉬움과 그리움을 저마다의 가슴에 품었을 게다. 




사진 출처 : 철기군 익명게시판 12879 번 게시글


공식적인 분향은 없다고 들었고, 예식실에서 유가족분들이 기제사 올리시는 것을 먼발치에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유가족분들 기제사 끝나고 헌화하러 가신 다음에 잠시 비공식적(?)으로 팬들이 분향할 수 있는 시간이 잠시 있었나 보다. 그런 상황을 알지 못했기에, 유토피아 추모관 본관 안의 팬분들이 헌화하러 이동하실 때 우리 가족도 같이 나가서 헌화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는데 아쉽다. 





내 아이들도 정말 많이 자랐다. 그가 떠나던 2014년 10월. 채 돌도 되지 않았던 성현이. 아기 띠에 안긴 채 짙은 슬픔 가득했던, 아산병원으로... 극적인 결정이 있었던, 원지동 서울 추모공원으로 같이 함께했던 성현이는,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생이 된다. 2016년 9월에 태어난 유리. 유리는 '신해철 아저씨'에게 온 것이 처음이다. 2016년 10월 2주기 추모식. 유리가 태어난 지 1달 약간 넘었던 시점이라, 내가 아들 성현이만 데리고 참석했었다. 마왕도 그대로... 나도 나이만 한 살씩 더 먹어갈 뿐 그대로인 것 같은데... 아이들은 하루하루 자라난다.







2주기 때, '신해철 아저씨 편히 쉬세요' 하며 국화꽃을 놓았던 아들 성현이. 이제 훌쩍 자라 미운 일곱 살의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내 아이. 제법 의젓하게 마왕에게 헌화를 한다. 유리도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신해철 아저씨'에게 국화꽃을 드렸다. 


여담이지만, 아들 성현이를 보면서. 마왕의 노래, '아버지와 나'가  조금은 다른 느낌으로 내게 다가온다.  내가 1992년 아버지의 차 안에서 테이프로 그 노래를 틀었을 때 나는 '아들'이었다. 한창 사춘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던 10대였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고 싶어 했던 나. 그리고, 지금 내 나이 즈음의 아버지가 계셨고. 그런데, 이제 내가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게 되었다. 사실 아이들과 나 사이의 진정한(?) '아버지와 나'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그에게 나도, 국화꽃 한 송이 올리고 그의 앞에서 다짐했다. 결의했다.  내년 이맘때 즈음, 다시 이곳에 와서 마왕에게, 나 이렇게 잘 지켜냈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을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마지막으로 그의  묘비 앞에서 묵념을 올리고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말고 기억해줘요 ' 



갑자기 왜 이 노래가 떠올랐는지는 모르겠다.



마왕... 늘 잊지 않고 기억할 거야. 피눈물이 흐르는 듯한 원통함은, 세월의 퇴적이 만들어낸 감정의 굳은살 아래 침잠한 채, 그 시퍼렇게 날이 선 감정이 조금 무디어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잊지 않을 거야. 기록하고 기억하고. 그렇게 내 안에 계속해서 마왕은 살아있겠지.











아버지와 나 PART Ⅲ - 'Statman' (↑↑↑ 유튜브 영상 9:00 부터)


그와 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강물은 여전히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 위로는 화해의 비가 내렸고 심지어는 가끔은 꽃구름이 흘러 다닐 때도 있다

우리 두 사람은 강의 이편과 저편에 서서 가끔씩 손을 흔들기도 하지만

그저 바라 볼 때가 사실은 대부분이다

그의 잔소리가 언제부터서인지 모르게 살갑게 느껴지는 것은 

나의 삶이 타들어가는 번뇌의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인지

혹은 그의 삶이 휴식과 완성의 시기를 원하기 때문인지

분명한 것은 천진한 웃음을 띤 그의 얼굴은 아들의 어릴적 얼굴을 닮아가고

정작 아들의 거울에 비친 얼굴은 아버지와 닮아 있다

난들 왜 그가 기뻐할 번듯한 세속의 성공과 안정을 주고 싶지 않았겠는가만은

아무래도 내가 그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멀지 않은 미래에 안겨줄

그의 얼굴과 나의 얼굴을 모두 가지고 태어날 그의 손주뿐인듯하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내가 그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언어들을

순간의 울음소리로 알리리라

그렇게도 나는 나일뿐이고 싶어 했으나 이제는 또 다른 그가 되어 주고 싶다

나는 이 세상에 그가 남긴 흔적 혹은 남기고 갈 증거이다

나는 그의 육신을 나누어 받은 자


Hey STARMAN

Hey STARMAN

지구의 별이 되어 살다 우주의 별로 돌아가다


아이는 열리지 않는 그의 방문 앞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칭찬에 굶주리고 대화에 목이 마른 아이였다.

기다림이 원망으로 바뀌자 아이는 망치를 들어 문에 못질을 해버리고 그곳을 떠났다.

세상의 머나먼 끝에서 고독에 눈물을 흘리던 날

아이는 그가 스스로 방문을 열어준 적은 없었으나

문을 잠근 적 역시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Hey STARMAN

Hey STARMAN

Hey STARMAN

Hey STARMAN


아이가 오래 전 박아 넣은 날카로운 못들을 하나씩 빼내자 문짝에선 피가 흘렀고

문을 떠밀자 그 문은 힘없이 열렸으며 그 문의 저편엔 주름과 세월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하여 수줍은 아버지와 겸연쩍은 아들은 난생 처음 뺨을 맞대게 되었다.


언젠가 그들의 이야기는 먼지가 되리라 세상 모든 것들이 그러하듯이

언젠가 이 노래는 잊혀지리라 세상 모든것들이 그러하듯이

그러나 아들은 아비를 기억하고 또 아들의 아들이 그 아비를 기억하며

그들의 피는 이야기나 노래보다 조금. 더 오래 흐르리라

그리하여 우리 세상에 잠시 있었던 것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이야기하리라


다른시간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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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처음 부모가 된다. 연습은 없다. 물론 각자의 준비상황들은 천차만별이겠지만, 그것도 일종의 상상의 영역일 뿐. 리허설은 없고, 오직 실전일 뿐이다. 2013년 12월 26일 새벽 3시 57분. 세상에 태어난 성현이를 어설픈 몸짓으로 안아 들던 그날. 나또한 아버지로 새로 태어났다. 

 

그리고서 매번 새로운 상황과 경험들의 연속이었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기쁨. 어색함. 셀레임. 걱정. 모든게 새로웠다. 

 

이제 성현이가 한국 나이 여섯 살(올해 12월 26일이 만 다섯 번째 생일이다). 그럼 내년이면 일곱 살이라 불리운다. 어머나 깜짝이야. 일곱 살이라니 !!!  ‘일곱 살’이라는 단어가 주는 낯섦과 거리감만큼 성현이는 자라났고, 독립된 개체로써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가고 있는 것 같다. 부모와 자신을 ‘하나’로 동일시하던 시기가 지나가고, 분리 독립의 시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어렴풋이 체감한다. 

 

부모가 혼내면 울음을 터뜨리고서고, 두 팔 벌려 안아주면, 울면서 달려와 품에 폭 안겨서 고개를 파묻고 눈물 콧물 범벅이던 시기는 지나가고. 외부의 자극(?) 대한 반응으로써의  ‘서운함’을, 말과 행동으로 조금씩 표현하는 시기로 접어들어 가고 있다. 언젠간 반항의 시기도 오겠지.

 

이런 변화의 조짐이, 사실 좀 낯설다. 늘 품 안에 안고, 함께 울고 웃는 ’내 아이’라는 게 나에겐 여전히 익숙한데, 아이는 일방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이기를 서서히 거부해나간다. 어설픈 날갯짓일지언정, 푸드덕푸드덕. 부모라는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자라나고 있다. 이것은 본인이 의식적으로 의도한 과정은 아니다. 아이의 키가 자라나듯. 그렇게 자연스럽게 마음도 자라난다. 의식적으로 깨우쳐야 하는 건, 아이가 아니라 부모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 자라나고 있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정서적 지체를 경험하기 십상이다. 나와 아이를 둘러싼 이러한 역학관계(?)의 변화를 직시하려고 노력하지만, 아직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한 것 같다. 이러는 사이, 육아의 제2막이 시작되고 있다.

 

잠자리에 들 때, 아이를 품에 꼭 안고 잠들 수 있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자신만의 공간과 세계 안에서, 자신만의  울타리를 칠 것이다. 역시나 내가 그러했듯 말이다. 결국, 이 순간을 즐기고, 이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는 다소 진부한 결론에 도달한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다. 아이들이 나를 부를 때, 귀찮아하지 말고, 두 팔 벌려 안아 들고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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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5 #ILCE-9 #A9 #SEL85F14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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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 안의 자식...?  일단은, 품에 안은 자식 !!!


 #2018.07.01 #ILCE-9 #A9 #SEL35F14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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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21 #ILCE-9 #A9 #SEL2470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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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둘째 유리가 2016년 9월 18일 태어나고, 두 아이들과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아가느라 1년이란 시간이 눈 깜짝 할 사이에 흘러가 버린듯하다. 작년 마왕 2주기 때는 유리가 태어난 지 한 달 약간 넘었던 시기라, 내가 성현이만 데리고 2주기 추모식에 다녀왔었다.


올해, 팍팍한 일상을 이유로 3주기 추모식에 불참하게 된다. 계속 철기군을 확인해가며, 질문 글도 올리며, 마왕의 3주기 추모식 참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변했다. 조금전까지도 불참의 결정을 쉽사리 내리지 못하다가 결국 이렇게 선택을 하게 되었다. 마음이 한켠이 무겁다. 내년에는 꼭 추모식에 참석하리라.


마왕... 애들하고 아내와 같이 곧 보러갈께... 

의미도 없이 잊혀지지 않도록, 영원히 기억할께... 마왕.


철기군 홈페이지로부터. ( http://cromfan.com/xe/ )

철기군 홈페이지로부터. ( http://cromfan.com/x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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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나 아빠가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무언가를 하려 했을 때, 이를테면 양치하자고 한다거나? 그러면 성현이는 숨어야 한다면서 숨는 시늉을 한다. '성현이 숨어야 해' 라고 말하면서, 몸은 훤히 내놓고 눈만 살짝 가린채 나를 쳐다보면서 배시시 웃는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이렇게 사진을 남겨본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 청춘이 흘러가는 것도 너무 아쉽지만, 성현이의 이토록 예쁜 영유아 시절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같이 흘러가버린다는 것또한 너무 아쉽다.


28개월 차, 성현이. 나날이 예뻐져 간다. 다들 한창 예쁠 때라고 말하는 시기이다.  이제 말을 제법 배워가면서, 의사소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화가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본인의 의견도 제법 잘 표현하고. 아직은 서투른 말들. 바로 그 ‘서투름’ 때문에 말하고 있는 걸 보면 너무 귀엽고 입가엔 아빠 미소가 지어진다. 능숙하지 않은데에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그것만으로도 예뻐해주고 기뻐하는 마음. 아버지로서 늘 기억해야 하는 마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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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부터 성현이가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 이전부터 우리 부부가 먼저 코를 훌쩍거렸는데 성현이도 옮았나 보다. 하루 이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며 기다렸는데 증상이 빨리 호전되는 것 같지 않아서 오늘 정오에 늘 다니던 망원동의 닥터훈 소아청소년과에 다녀왔다. 도착하니 앞에 대기하고 있는 아기들이 19명가량. 환절기인지 아기들이 감기에 많이 걸리나 보다.


약 한시간 가까운시간을 대기하는데, 성현이 요녀석 무척이나 활동성이 좋다. 자동문을 버튼 눌러 여는 것에 재미를 붙였는지 연신 들락날락 거리느라 정신없이 뛰어댕기고, 나는 그 뒤를 커버하기 바쁘다.  








병원에 다녀와서 약 먹자고 하니, 기대 어린 똘망똘망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어렸을 때 약 먹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 약이 참 먹기 좋게 나온다. 약 같지 않고 달달하다. 어린 시절 고이 접힌 종이봉투에 담긴 가루약을 엄마가 숟가락에 물로 개어서 새끼손가락으로 휘휘져어 주시곤 했다. 구토감을 겨우 참으며 목구멍안으로 억지로 넘겨야 했던 약의 그 쓰디쓴 맛은 이제는 더이상 없다. 아이들이 그 쓴 약을 군말 없이 삼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의젓함을 증명해야 할 일도 없어졌다. 이러하니 성현이가 이렇게 약 먹는 것을 고대하며 좋아할 수밖에. 그래도 다행이다. 먹이는 사람의 수고도 덜어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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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또봇 K가 우리 집에 도착했고, 오늘은 또봇 R이 부모님 댁으로 도착했다.


예전에 종하에게 두 돌 선물로 이걸 사주었는데, 혹시 종하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또봇 R을 보고 자기 것이라고 착각할까 봐, 우선 이 또봇 R은 부모님 댁에 배치하는 것으로 했다.


성현이가 소방차라는 단어도 많이 쓰기에 좋아할 것으로 생각했다. 우선 장난감 자체가 덩치가 크고 시원시원하고, 자동차로 변신한 상태에서 굴리면 사이렌 소리가 나면서 불이 들어온다. 성현이가 많이 좋아한다. 역시나 이 또봇 R도 주로 자동차로 변신한 상태를 선호하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뭔가 그림을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성현이가 후다닥 달려드는 바람에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었다. 그런데 저 사진이 오히려 저 장난감 개봉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해주는 것도 같다. 성현이가 기쁜 마음으로 ‘우와’ 하면서 달려들던 저 순간. 내 입가에는 아빠 미소가 한가득.


오늘의 선물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이름도 복잡한 태권 스마트키 K. 이것은 제품을 보면서, 성현이가 제대로 가지고 놀기에는 너무 이른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있는 또봇 태권 K와의 조화를 기대하며 구매했다. 아직 성현이가 이것을 용도에 맞게 가지고 놀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듯하다. 어제도 말했듯 또봇 만화를 본 이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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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의 장난감 인프라가 다른 아이들에 비해 너무 빈약하다는 자각을 한 이후로,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 장난감류를 잘 챙겨주는 것도, 무척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부모가 육아 관련 커뮤니티를 자주 들여다본다거나, 아니면 주변에 또래 집단이 있거나 해야 비교 대상이 생기는데, 성현이의 경우 통큰블럭 이후로 크게 신경 못쓴 게 사실이다. 아빠인 내가 성현이 장난감만은 정말 빵빵하게 갖추고 행복하게 지내게 해주겠다고 생각해왔었는데, 그러지 못해왔던 것 같다.


우선 그 시작이 또봇이다. 이 또봇은 성현이가 감정이입을 심하게 하려면, 아마 또봇 만화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봇의 적정연령이 37개월령 정도로 쓰여 있던데, 아직 성현이에겐 좀 이른 편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성현이가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인다. 성현이가 요즘 자동차 종류들에 부쩍 관심이 많아져 있기 때문인지, 로봇 형태의 또봇이 아니라 자동차로 변신한 모습을 더 선호하고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로봇 형태에도 관심을 가질 것이다.


또봇 종류를 하나하나 다 모아주고, 그다음에 카봇으로 넘어가 봐야겠다.


성현이에게 짜잔- 하고 또봇 상자를 앞에 놓았을 때, 성현이 얼굴에 퍼지는 미소, 상자를 개봉하고 안에 내용물을 보여주었을 때, ‘우와-’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아빠의 심정은 너무나 행복함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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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가 제일 좋아하는 대상이, 할아버지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말, 대략 10월~11월 정도만 해도 수영장 가기 위해서 부모님 댁에 성현이를 맡기고 나오려면, 나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떼를 쓰곤 했는데, 이제는 부모님 댁에 가서 성현이를 데리고 오려면 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곤 한다. 얼마 전까지는 할아버지만 좋아하는 듯 보이기도 했는데, 요근래부터는 부쩍 할머니에 대한 애착도 보인다. 하긴 성현이를 제일 많이 챙기시는 게 내 어머니이시기도 하다. 원칙을 철저히 지키시는 어머니의 육아패턴은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믿을 수 있는 존재이시다.


예전에는 ‘하지~ 하지’ 하면서 할아버지를 물렀는데, 얼마 전부터는 ‘할아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제대로 된 발음을 한다. 할머니를 부를 때에도 ‘할~ 할~’ 하던 것에서 발전해 ‘할머니’라는 발음을 제법 제대로 해낸다. 1월 후반 즈음부터 보였던 변화 같다. 2015년 10월 처음으로 ‘할~할~’하며 부모님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짧은 기간 사이에 성현이의 언어능력은 천지개벽하듯 발전했다.


성현이가 태어나고, 부모님께서 참 많이 웃으신다. 물론 성현이의 활동량과 떼쓰기 등으로, 성현이 봐주실 때 체력적인 힘듦을 느끼시지만 그래도 성현이로 인해서 정말 많이 웃으신다. 내가 언제 이렇게 나로 인해 부모님을 웃으시게 해드린 적이 있었던가.





나는 성현이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게 된다. 여전히 나는 나 스스로 만족스러운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나의 아버지, 성현이의 할아버지는 내가 봐도 정말 훌륭한 아버지이시다. 역시나 훌륭한 할아버지이시기도 하다. 성현이가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가시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아버지로서 나의 목표가 있다면, ‘내 아버지’ 같은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대하시는 태도, 배려. 모든 것 하나하나를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한다. 내가 아버지의 아들로 자라왔으므로, 내 안에 내 아버지와 같은 ‘아버지’가 되기 위한 씨앗들은 이미 잉태되어 있다고 믿는다. 성현이를 대할 때 조금만 더 기다려주고, 조금만 더 참아주고, 조금만 더 인내하자. 그게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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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니 자정이 지났으니 그저께구나. 2월 10일 수요일, 임신 7주차에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다. 5주차에 병원에서 초음파를 보고 오면서, 2주 후에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첫째 성현이 때는 모든 게 다 처음 겪는 일이라 신기하면서도 다소 정신없이 지나쳤던 일들이, 둘째 때는 하나하나 기대감으로 다가오는 느낌이다. 


성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부모가 된다는 것,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사실 두려움만 컸던 것 같다. 성현이가 태어나고, 성현이와 26개월을 보내면서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물론 여러 어려움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낯설기만 했던 아빠라는 이름이 멀게만 느껴졌던 2013년과는 달리, 아빠가 된 나는 아빠의 이름으로 둘째를 만난다. 성현이를 통해 내가 다시 태어난 것이다.




2주 만에 초음파 영상을 통해 둘째의 모습을 보았다. 제법 자라난 모습이다. 지난번에 둘째의 모습이 동그란 형태였다면, 이제는 아주 작지만 제법 사람의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다. 머리와 몸통, 다리. 인상적인 것은 벌써 강렬하게 움직이고 있는 심장의 모습이었다. 우리의 심장은 이렇게 생명이 만들어지는 순간부터 맹렬히 뛰기 시작하는구나. 생명 그 자체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초음파 동영상도 함께 올리려고 했는데 동영상 편집툴을 다루지 못해서 잠시 미뤄두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iMovie 강좌를 찾아 듣고, 네이버 카페 맥쓰사에서 아이무비 강좌를 들어야겠다고 결심^^ 나중에 이 게시물에다 둘째의 초음파 영상을 붙여놓을 예정이다. 


아, 맞다! 그리고 태명 !!! 첫째 성현이는 쑥쑥이라고 태명을 지었었는데, 둘째의 태명은 아직 제대로 짓지 못했다. ‘새해의 희망’이라고 ‘새희’라고 부르려고 했는데 실제 불리는 태명은 아니다. 아내와 의논해서 태명을 어서 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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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다 보면, 참을 인(忍) 글자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고들 한다. 참아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늘 생각하지만, 그러한 나의 결심은 길게 이어지지 못할 때가 많다.


뒤집지도 못하고 누워서, 배고프면 빼에에 울고 눈만 껌뻑이던 신생아 시절을 지나, 이제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자기 고집도 제법 생긴 22개월짜리 아들. 요 녀석과 조금 부대끼다 보면, 내 인격의 바닥을 본다. 아… 이 부족하디 부족한 아버지여. 그대의 아버지는 진정 어른스러운 아버지이셨건만 그대는 왜 그러하지 못하는 것인가. 아이를 키우고 아버지로서 역할 하면서, 내 아버지가 진정 성인군자셨다는 것을 느낀다. 


늘 반성하고 경계하자. 나의 편의를 위해서 아이의 행동을 통제하면서, 그것이 여의치 않았을 때 가장 쉬운 선택을 해오지는 않았는지? 또 아이를 혼낼 때 그것이 긍정적인 훈육이 아닌 스스로 감정을 제대로 제어 해내지 못한 ‘못난 화풀이’ 수준의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는 순백의 도화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훗날에는 아이 스스로 그 도화지 위에 여러 가지 그림을 그려나가겠지만, 지금 이렇게 어린 영유아 혹은 어린이 시기에는, 부모의 행동과 역할이 그 도화지에 자국을 남기게 마련이다. 내 아버지로서의 역할이란 그 도화지에 멋들어진 그림을 그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도화지에 나쁜 얼룩이 묻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가 그 위에 마음껏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것일진대, 내가 내 인격의 미성숙함으로 내 아이의 도화지에 얼룩을 남길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나의 분신. 내 아들 성현이. 사실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내가 이토록 아이를 좋아할 줄은 몰랐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아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아이가 태어나고 이제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참 많은 게 바뀌었지. 아이가 태어나고 커가면서, 나 또한 점점 아버지가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아이가 10대 시절에도 또 그 이후에도 대화의 상대로 남을 수 있는 아버지 되기. 그게 아버지로서 나의 목표인데, 그러려면. 요즘 들어 자주자주 마주하게 되는 내 인격의 바닥을 좀 멀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성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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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나는 아버지가 되었다. 성현이와 처음 마주했던 그 순간의 느낌을 여전히 기억한다.


약간의 피로감이 뒤섞인 채 바라보았던 그 분만실의 어두운 조명과 잔잔한 클래식의 선율. 우리 부부가 이전에 미리 선택했던 출산의 조건들이었다. 단 한 가지가 달랐다. 우리가 선택했던 건, 내가 출산의 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은 채, 출산이후 탯줄을 자르는 것이었다.진통이 오고, 양수가 터지고 얼떨결에 분만실로 아내의 손을 붙잡고 들어갔고, 출산의 전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얼떨떨한 그 느낌. 어색함이라고 해야 할까? 그랬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내가 부르는 이름이었지, 내가 불리는 이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내의 임신을 지켜보면서, 내가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리라는 것을 머리로 인식해가긴 했지만, 가슴으로 느끼진 못했던 것 같다. 어찌 되었던 나는 아버지가 되었고, 21개월 가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그 시간 속에서 이름만 아버지였던 나는, 조금씩 아버지가 되어갔다.


누구나 처음 부모가 되어보고, 처음 아이를 키워본다. 미리 상상해보고 책을 읽어볼 수도 있겠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글로 배워지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닌듯하다. 대부분 처음 마주하게 되는 상황들. 그 속에서의 선택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부모가 되어간다.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할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리고 나의 철학이 아이 앞에서 갈지자처럼 갈팡질팡 우왕좌왕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여기에 내가 아버지가 되어가는 과정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육아 일기 일수도 있고, 그냥 푸념 어린 끄적임일수도 있다. 정확히 무언가를 정하고 시작하는 건 아니다. 기록이 기억을 이끌어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기록해야 한다.



우선, 돌잔치 때의 성장 동영상이나 2013~2014년 1년간의 기록으로 모아놓은 사진 업로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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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26일 03시 57분. 나는 새로운 미지의 시공에 첫발을 내딪게 되었다. 

내 인생 새로운 막의 문을 열고, 새로운 장에서 태어난 느낌이다. 어두운 조명이 안개처럼 잔잔하게 깔린 분만실,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고의 고통을 온 몸으로 받아 안은 아내의 곁을 지키던 그때. 꿈꾸는 듯한 몽환의 끈적함 속에서, 내 아이를 만났다. 묘한 낯설음을, 잔잔한 설레임과 기쁨이 잠식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내가,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는게 피부에 와닿지 않고 어색하기만 하다.

 

 

'아버지'라는 이름은, 나에게 있어 '부르는' 이름에서, 이제 '불리워지는' 이름으로 그렇게 다가왔다. 내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 그 무거운 의미를 이제 배워나가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한발...한발... 발걸음을 옮기게 되겠지.

 

다사다난 했던 2013년이 가고, 2014년이 왔다. 내 아이와 함께 할 2014년.

열심히...치열하게 살아내봐야겠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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