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21.08.27 우리집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 프롤로그 again
  2. 2020.07.10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故 박원순 서울시장님. 편히 쉬시기를)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자세. 2
  3. 2019.12.09 베티가 떠나가다
  4. 2019.11.07 죽음의 의미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아이
  5. 2018.08.27 비와 당신의 이야기 - 구구, 별이 되다 7
  6. 2018.07.26 고인이 되신, 노회찬 의원님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7. 2018.07.12 비강 종양 투병 중인 고양이 '구구'의 곁을 지키며 10
  8. 2018.06.27 세월이 가면…(부제 :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
  9. 2018.06.20 죽음의 무게가 너무 힘들다. 구구. 비강종양 진단.
  10. 2017.03.25 15년지기, 앙팡이... 별이 되다.
  11. 2016.10.30 우리들의 영원한 마왕, 故 신해철 2주기 - 어찌, 빼앗긴 들에 봄이 오겠는가
  12. 2016.05.27 숙이를 보내고.
  13. 2016.05.25 9년 지기 숙이에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 1
  14. 2015.10.27 마왕 故 신해철 1주기 추모식 그리고 오늘 마왕의 기일
  15. 2014.10.27 내 가슴속의 별이 지다.
  16. 2014.08.01 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
  17. 2013.07.05 아픈 기억의 기록들. 3
  18. 2012.10.24 바람이 분다...
  19. 2012.04.15 고양이별로 떠난 아이들 - '금동이', '까뮈' 그리고... 8
  20. 2012.01.24 곁으로 다가온, 죽음과 다시 마주하기... 10
  21. 2011.11.14 그리운 나의 똘레야... 14
  22. 2011.09.08 고양이 남녀상열지사...?! 2
  23. 2011.08.27 아기고양이들과의 너무나도 짧았던 만남. 6
  24. 2010.05.22 똘레와의 이별... 4
  25. 2009.12.23 길냥이의 죽음 8
  26. 2008.09.25 잔인한 9월... 그리고...
  27. 2008.01.22 우리 집의 새로운 고양이 식구 - 웅이와 미애 2
  28. 2007.12.12 12월 12일.
  29. 2007.12.05 시간 그리고 기억 1
  30. 2007.11.27 짱이가... 조금전 조금전 무지개다리를 건너갔습니다.

2019년 11월 1일.  [우리집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 프롤로그]라는 제목의 글을 작성했었다. 그리고 지금 2021년 8월. 그 사이 4마리의 냐옹이들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집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라는 블로그 포스팅 연재 프로젝트에 소개되어야 했던 아이들을 소개할 기회를 잃어버린 셈이다.  이렇게 차일피일 미루어진 것은 나의 나태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글을 쓰고 얼마 되지 않아 베티가 투병을 시작했고, 한 달가량 지났을 때 베티가 떠나갔다. 이어 찌롱이의 유선종양 진단과 수술. 얼마 후 암의 전이, 재발. 그리고 몇 개월 동안의 긴 투병. 그리고 찌롱이와의 이별.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많이 지쳐갔고, 전의를 상실했다.

내 블로그에 비공개 상태로 남아있는 이별의 흔적들.




그로부터 거의 2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코비가 떠났고, 얼마 전에는 초롱이가 떠나갔다. 내 블로그에는 완성되지 않은 채 비공개 상태로 남아있는 이별의 메시지들이 계속해서 쌓여가고 있다. 떠나간 아이들에 대한 기록도 모두 복원해야 한다. 그러나 죽음에 대한 기록에 앞서, 生의 기록들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의 첫 발걸음은 바로 우리집 고양이들을 소개하는 글들일 것이다.  이제 가장 어린 냥이들이 11살이다. 말 그대로 '묘르신'공화국.  서른마리가 훌쩍 넘었던 거대한 대제국이 부흥의 전성기를 지나, 이제 조금씩 저물어가는 느낌이다. 현재 우리와 함께하는 냥이들은 스물한 마리. 냥이들이 더 떠나가기 전에, 삶의 기록, 생의 기록을 조금씩이나마 남겨야겠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삶의 동반자인냐옹이들에 대한 기록을 다시 시작해야겠다.

2019년 12월 9일. 별이 된 베티.
2020년 8월 2일. 별이 된 찌롱이.
2021년 6월 17일. 별이 된 코비.
2021년 8월 10일. 별이 된 초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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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제 저녁 즈음. 故 박원순 서울시장님의 실종 관련 속보를 접했다. 처음에는 뭐 작은 해프닝이겠거니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저런 안 좋은 속보들이 쏟아지고, 가슴속에도 좋지 못한 예감이 들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12시 즈음 수색 관련 뉴스를 보고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얼마 후. 노컷뉴스에서 뜬 속보를 보았다. 


오보 아닐까 하는 초라한 기대를 가졌지만, 사망을 확인해주는 공식적인 뉴스들이 여러 언론 매체에서 쏟아졌다. 새벽 2시.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장의 브리핑을 보면서, 이름조차 언급해주고 싶지 않은, 우익 유튜버의 저열한 질문을 보면서 분노했다. 자살 보도 권고 기준 관련 보도지침http://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2 )  자체를 알 리도 없지만, 알았더라도 지킬 생각도 없었을 그의 역겨운 질문들.  일단 그런 브리핑 현장에, 우익 유튜버 나부랭이가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참 의아스러운 일.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가슴이 무겁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정방향으로 움직여왔던 중요한 한 축이 무너져 내린 듯한 상실감.  물론 어제 이야기 되었던, 좋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변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단 지금은. 적어도 죽음을 애도할 기간 동안은 이런저런 모든 이야기는, 일단 미루어두고... 故 박원순 서울시장님의 명복을 빌고 싶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편히 쉬소서.



아…. 그리고 한가지. 죽음을 대하는 자세.


어제 내가 놀랐던 것은, 관련 뉴스를 보도하는 실시간 생방송 채널에 올라오는 채팅창의 글들이었다.  죽음을 두고, 진심으로 낄낄낄 거리는 글들. 아무렇지 않게 그런 글들을 써 내려 갈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악플을 달아보지 않았다. 반대하고 싶은 의견엔 정중하게 반박 글을 달았었다. 저열한 욕지거리나 악플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이라 생각했다.  


뭐 요즘 워낙 악플들이 일상화되어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저렇게 악플을 달고, 죽음 앞에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시시덕거리며 조롱의 글을 뱉을 수 있는 사람들이, 알고 보면 내 곁에 평범한 얼굴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에, 끔찍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 DAUM 뉴스의 댓글을 보면서 우연히 MY 라는 것을 눌러보니, 내가 쓴 댓글들을 볼 수 있더군. 사실 댓글을 거의 보지도 않고, 달지도 않기에 잊고 있었던 댓글들이 보이더라. 

아래는 2013년 고 성재기 씨 사망 사건에 내가 쓴 댓글이다. 

뭐 나의 방식만이 옳다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죽음 앞에선... 이래야 하지 않을까.

상대방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어도 죽음 앞에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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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가 오늘 오후 2 45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지난 11 16, 약간의 식욕 저하와 활동성 저하로 병원에 가서 입원을 하고 투병을 시작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우리 고양이를 소개합니다.] 라는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번째로 체라에 대한 글을 쓰고 있던 도중 베티의 투병이 시작되었고, 모든 것은 멈추어버렸다. 그리고, 오늘, 나는 살아 있는 베티를 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투병이라는 것은, 우리 일상의 시간을 블랙홀처럼 압축해서 흡입해버리는 것인지, 돌이켜보면 전이라는 시간이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처음 입원했다가 퇴원하고, 다시 상태가 많이 좋아져서 슬픈 예감을 하며 번째 입원. 그러나 베티가 정말 드라마틱하게 회복해주었고, 굉장히 컨디션이 좋아져서 퇴원했고, 그다음 스스로 캔을 먹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같이 함께 있다는 희망을 던져준 것도 잠시. 


12 3 저녁밥을 먹었던 베티는 다시 12 4일부터 컨디션이  다운되기 시작했고이런저런 방법을 찾아 노력해보았지만, 오늘 12 9 월요일 14 45 아픈 몸을 벗어나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너무나도 건강했고, 풍채도 좋았던 베티. 방문을 나서면, 냐아아앙 ~ 하며 나를 반겨주며 자신의 존재를 채웠던 베티. 우리 집의 마스코트처럼, 언제나 있어 같았던 베티의 부재는 너무나도 냉혹하리만치 크게 다가온다.


베티는 내가 많이 좋아했던 고양이였다. 잘해주지는 못했지만, 왠지 정이 가는 아이. 내가 우리 집에서최애하는 고양이라고 주저 없이 말할 있는 아이였다. 워낙 고양이들에게 잘하는 아내와 달리 부족한 많은 나를 많이 좋아해 주던, 흔치 않은 고양이이기도 했다.  베티가 이렇게 갑작스레 떠나갈 것이라는 생각도 했는데.  멍하다.  베티에 대한 기억을 움켜쥐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아득하게 멀어져만 가는 같다. 내가 디디고 있는 일상을 열심히 안아주지 못한 것에 대한 벌이리라


베티는 곤히 잠든 고요한 표정으로 누워만 있다.


집안이 고요하다. 정수기 물소리만 들릴 .  지금이라도 문을 나서면, 베티가 입을 활짝 벌려가며 냐아아앙하며 따라붙고, 다리에 몸을 부빌 것만 같은데. 


그 베티가 없다. 


베티는 잠들듯이 누워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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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이가딸기 떠나간 , 계속해서 딸기가 보고 싶다며 딸기를 찾는다.


딸기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다음 . 딸기가 아픈 몸을 벗어났다고 말해주며 딸기에게 마지막 인사를 시켜주고  나서도 5 넘게 시간이 지났건만, 성현이는 계속 딸기를 찾는다. 다시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계속해서 딸기를 찾는 것은, 아직은죽음이라는 것이 막연하기만한 아이의, 재회의 소망이 담긴 물음일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곁에 있던 딸기가 이제는 없다는 것 -  ‘존재의 부재(不在) 대한 자각을 해나가고 있는 같다. 


마왕(故 신해철)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에서, 말한 것처럼. 얄리의 죽음을 보고, ‘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것이 영원할 없다.’  삶의 유한함에 대한 자각까지는 아니더라도. 2013년생, 한국 나이 7살의 성현이는 분명죽음 의미를 깨달아가고 있다. 어린 시절의 내가 그러했듯,  아이도 이렇게 또 자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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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발 태풍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 '솔릭'이라는 녀석이 올라올 때도, 비는 찔끔 오는 둥 마는 둥 했더랬다. 어제 저녁 여덟시 즈음… 옥상의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머리 위로 비가 몇방울씩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밤이 오면 구구가 떠날 것 같아.' 

곁에 있는 아내가 대답했다. '응.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구구. 비강종양으로 투병해왔던 구구. 구구의 상태가 마지막이 임박했다고 느낀 것은 이미 10일이 넘었다. 그간 많은 아이들을 떠나보내오면서,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마지막에 대한 예감이 있다. 목까지 올라온 할딱거리는 숨. 발작하듯 경련하다 축 처지는 몸.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여태까지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사실 그것은 '예감'이라기 보다는 축적된 경험에 의한 예측이었다 ) 그러나 구구는 죽음의 문턱에서 온 힘을 다해,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내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던 구구. 

 

구구의 비강 안에서 자라나 구구의 안구를 밀어내고 , 얼굴 뼈를 밀어내며 커지는 암 덩어리가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이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구구를 보면서, 도대체 구구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도대체 무엇이 구구를 이 '생'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비강 전체를 막아버린 암 덩어리로 호흡조차 힘겨운 상태에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이가 버텨내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처절한 아픔이고 짙은 괴로움이었다.

 

매일 한두 차례씩,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며 힘겨워하는 구구를 쓰다듬으며, 우리 부부는 '구구야. 정말 고생 많이 했어. 너 이제 편히 쉬어. 이렇게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구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려다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 탈진한 듯 지친 몸을 누인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구구는 그렇게 자기 삶의 모든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듯,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모습이 존경스럽기 까지 했다. 주어진 생의 순간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내려는 모습을 통해, '삶' '죽음'이 진정 모두 고귀하다는 것을 배웠다. 구구에게 배웠다.

 

 

그로부터, 시간 후인. 2018년 8월 26일 23시 59분.

 

구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풍이 올라올 때도 볼 수 없었던 시원한 빗줄기들이었다. 비가 내리면 구구가 떠나갈 것 같았는데, 정말로 비가 내리고 구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구구의 마지막은 평온했다. 아이가 겪었던 지독한 고통들 앞에, 감히 평온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도 되는지 주저케 되지만. 그간 아이가 힘겨워했던 모든 모습에 비하면, 그래도 평온한 모습으로 이 생에서 '구구'로서의 마지막 길을 떠나갔다. 오른쪽 눈에 맺힌 맑은 눈물들은, 아쉬움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구구야. 정말 고생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 너무 잘 견뎌주고, 이겨내 주었다. 고통을 겪는 너에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해줄 없어서 정말 미안하고 괴로웠어.  구구야. 사랑한다. 너는  최고의 아이였다. 나의 든든한 북극곰. 나의 포비. 나의 , 구구.

 

모든 게 아쉽기만 하지만, 이 생에서 우리 사이에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였나보다. 그렇지만 구구야. 이게 끝은 아닐 거라 믿는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닐꺼야. 우리 어떤 모습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꼭 다시 만나자. 우리 다시 만나자.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고통이 덜어지진 않았더라도, 외롭지는 않았을게다.


태어난지 1년도 되기 전, 이미 거묘의 기질을 보였던 든든한 구구. 그립다.




[ 비와 당신의 이야기 -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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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고인이 되신 노회찬 의원님의 비보를 접하고, 정신줄을 반쯤은 놓고 있다가,  오늘... 아내와 조문을 다녀왔다.  마음이 다 무너져내린 느낌... 뭐라 글을 쓰고 싶지도 않고, 글을 쓰는 것도 죄송스럽기만 하다.  기억을 기록하고자. 일단 포스팅은 남겨놓는다.


감사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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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의 비강 종양.  현재로서는, 특별한 치료방법이 없다. 그저 아이가 고통스럽지 않도록 도와주는 소극적인 치료. 방어적 치료가 약을 먹이는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암'이라는 녀석은 기존의 여타 질병과는 궤를 달리한다.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저 암세포를 '질병'이라고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는 게 큰 차이점이다. 다른 질병들, 고양이의 경우로 예를 들어 말해보자면 '범백'(범 백혈구 감소증) 같은 질병의 경우, 잘 먹여서 몸의 컨디션을 유지해주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적극적 치료행위가 된다. 몸이 정상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해 '적'과 싸우는 치열한 전장에 식량과 탄약을 보급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의 경우 위에서 말했듯, 몸이 '암세포'를 '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암세포를 대상으로 하는 '항암치료'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전장'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아무리 잘 먹이고 케어해봤자, 암세포도 같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구구의 비강에 자라나는 종양은 구구 몸의 비정상적인 일부인 셈이다.

 


너무 빨리 커지고 있다. 생각보다 그 속도가 너무 빠르다.

 

우리 집 고양이를 소개하는 글들을 준비해보려고, 집에 고양이들 사진을 제대로 각 잡고 찍는 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 일단, 구구가 비강에 종양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에, 구구 사진을 먼저 찍기로 했다. 지난 6월 27일 나름대로 정성 들여 사진을 찍고, 사진들을 검토해보았는데, '이 사진보다 안 아파 보이는 사진을 찍어야겠다.'라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2주가량 흘렀다. 그런데, 지금 구구의 상태는 그 날 찍은 사진보다 더 안 아파 보이는 구구의 모습을 찍을 수가 없다. 그 날의 모습이 최선이었다. 구구의 상태는 날이 갈수록 나빠졌던 것. 현재, 구구의 비강 속에서 자라나는 종양 덩어리는 구구의 왼쪽 얼굴 - 콧잔등과 눈두덩이를 많이 부풀어 오르게 했다.

 

코는 막히고, 비강과 얼굴 뼈 안쪽에서 뭔가 묵직하게 부풀어 올라오는 뻐근한 통증을 겪고 있을 구구. 왼쪽 눈 또한 많이 불편해졌을 것이다. 비중격 수술과 비염 수술을 하느라, 수술실에서 나오고 이틀가량 코를 단단한 거즈 대체물질로 꽉 막고 지내본 경험이 있는 터라, 구구가 느낄 답답함과 불편함을 명확하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구구가 느끼는 고통은, 그때 내가 겪었던 불편함과는 비할 수 없으리라.


 

그러나.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그저 아이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아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이의 코를 꽉 막아 오고 있는 저 악마 같은 살덩어리를 남김없이 다 잡아 빼주고만 싶다. 얼마나 답답할까. 단 몇 시간 만이라도 구구가 원래 가졌던 뻥 뚫린 코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숨 쉬게 해주고 싶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하는 안타까움과 대상을 알 수 없는 원망만 내 안을 맴돌 뿐이다. 구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애써 외면해보지만, 그럴수록 구구의 모습은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구구…. 녀석. 다가오는 현실이 두려워 한걸음 물러나는 나인데, 그런 나를 보면서 너무 반가워하고 좋아해 준다. 눈물이 돌게 미안하다. 너를 구원해줄 능력이 나에게는 없구나. 구구야.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하다.

 

구구는 사실 그냥 구구이다. 아파도 고통스러워해도, 구구는 그냥 구구이다. 병의 걸리기 이전의 구구와 지금의 구구는 달라진 없다. 그냥 덩어리가 자라나, 많이 불편해하고 있는 구구만 있을 뿐이다 구구와 자주 마주하자. 아내처럼 구구와 최대한 자주 마주하며 함께 하자. 구구의 곁을 지키자. 지금 순간에도… 구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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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시간의 지층을 우리는 '세월'이라 칭한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그 거센 물결 속에 서 있을 때는 세월의 위력을 잘 체감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 잠시 무중력상태의 진공과도 같은 균열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퇴적층의 단면을 바라보게 되는 찰나와 같은 순간, 우리는 세월이라는 존재의 위력을 체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 그대로인데, 변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느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보던 내 얼굴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 나는 세월의 민낯과 마주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것.



거울 속에 앳된 얼굴의 아이가 있다. 마냥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그 아이는 연신 웃는 얼굴이다. 그러다 그 아이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호기롭게 담배를 문 대학생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울긋불긋 벌게진 청년의 얼굴도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는 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내가 오버랩되면서,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수염 까칠까칠, 웃으면 누가에 잔주름도 보이는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서 있다. 아뿔싸. 저게 나구나.


그런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슬픈 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변화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사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대개 늘 같아 보이기 마련이거든.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조차, 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공간의 균열이 생기는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선사해주는 진정한 비극은,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늙어가고,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게 참 슬픈 일이더라. '네 나이 먹는 것은 생각 안 하냐?'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제 나이 먹는 것'은 잘 생각 못 하기 마련이거든.


젊고 강하고 매력적이던 아빠, 엄마는 자글자글 주름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렸고, 젊음의 에너지 가득하던 청년이고 아가씨였던 '나의 어른들'은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나의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입관하던 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죽음'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실체화된 모습에 대한 낯섦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내가 알던 나의 세상, 그 세계의 한 축을 짊어져 오던 친숙한 존재가, 영원히 퇴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서글픔과 허망함이었다.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떠밀려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 역시 그렇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그 시절 '나의 어른들'에게 거금 1000원을 받고 300원을 쓴 어린 꼬마아이. 거스름돈으로 남은 그 크나큰 700원을 어찌할 바를 몰라, 남의 집 대문  앞 계단 위에 일곱 개의 동전을 고스란히 쌓아놓고 집으로 돌아오던 유치원생 아이가,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되었으니, 그만큼의 세월만큼 '나의 어른들'도 저만치 앞으로 걸어 나가신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할게다. 그렇지만 그 퇴적된 시간의 단면을 체감하는 그 순간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의 세월이 흘러가고, 내가 나이를 먹어감과 동시에, '나의 어른들'도 나이를 먹고, 늙고 약해져만 간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문득문득 인식될 때마다, 애잔하고 슬프다. 생로병사. 우리네 삶에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그 과정들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다가,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 나에게 있어 세월이란, 그런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는 슬픈 상념들을 일단 끄적여본다. 
그냥 끄적여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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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게가 너무나 버겁게 느껴진다.


30마리가 넘는 냥이와 함께 하는 삶. 이제 가장 어린아이들도 7~8살. 다들 제법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 보니, 죽음은 늘 곁에 있다. 아주 가끔 찾아오는 존재가 아니다. 매년, 아픈 기억의 상흔들이 좀 옅어질 만하면, 찾아오는 죽음. 그 영원한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에 드리워지는 죽음의 그림자의 무게는 잔혹하리만치 무겁다.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열심히 글을 쓰고, 포스팅하다가도, 여지없이 찾아오는 죽음이라는 녀석을 맞닥뜨리고는 엎어져 주저앉아버리곤 했다. 이 블로그에서 고양이를 주제로 포스팅하는 글들의 목록을 살펴보면, 아픈 글들이 참 많다. 비공개로 잠자고 있는 글들까지 포함하면 더더욱 그렇다.


범백, 복막염,  신부전(신장질환)... 이러저러한 질병들로 함께 했던 냥이들을 떠나보내야 했었다. 그리고, 구구가 비강 종양 진단을 받았다. 종양, 종양이라니…. 말문이 막힌다. 사람의 의료에서도 '암'이라는 진단이 주는 의미는 너무나 무겁거늘, 동물의 의료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대처하고 무엇을 해줘야 구구에게 최선일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그리고 실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진단. 그 '진단'이 있기 전과 후는, 모든 게 달라진다. 눈에 띄게 아픈 모습의 아이만 덩그러니 눈앞에 있다. 보들보들 윤기 흐르는 털에 큰 덩치로 '북극곰'이라 불리던 구구. 보기만 해도 든든하고 기분 좋아지던 풍성한 풍채의 구구. 그 귀여운 모습에 대한 기억은, 빠른 속도로 침습되어 지금의 아픈 구구의 모습으로 대체되어버린다. 내 기억의 얄팍함에, 너무 화가 나 분통이 터진다.


많은 냥이들과 함께 하는 삶. 어쩔 수 없이, 죽음은 자주 찾아오게 마련이다. 모든 생명엔 필연적으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며, 삶과 죽음은 결국엔 하나라는 되내임…. 이성적으로 무언가를 되 내여도 가슴은 여전히 요동친다. 아니, 어쩌면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죽음'이라는 개념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머리로는 냉철한 이성주의자인 척, 구구의 현 상황을 바라보려 하지만, 내 가슴은 그저 나약한 이상주의자일 뿐이다. 바보처럼 아직 기적을 꿈꾼다. 혹, 다른 치료법이 있지 않을까... 


이 순간에도, 구구에게 주어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아픈 구구와 무기력한 우리만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감당키 어려운 죽음의 무게를 짊어지고 휘청이며 서 있을 뿐이다.   함께 하는 냥이들의 케어. 그 최전선에서 온몸으로 부딪혀야 했던 아내는, 완전 그로기 상태이다.  지난 4월, 아롱이를 복막염으로 떠나보내고, 오래지 않아, 구구가 종양 진단을 받은 것이니, 마음이 여린 아내는 더더욱이 힘들어 보인다.


그저, 죽음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시간만이 우리 앞에 남은 것일까... 힘겹게 고개를 저어보지만, 죽음의 그림자를 밀어 재껴버리고, 새 생명을 구구에게 불어넣어 줄 힘이 나에게는 없다. 그래서 다시 한번 무기력하다. 











ps. 이 블로그 우측 상단에 위치한 프로필 사진. 기타위에 올라가있는 고양이가 구구이다. 구구 어릴때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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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처음 우리와 만나, 15년을 함께해온 앙팡이가,   2017년 3월 25일 토요일 오전 08시 37분경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 별로 떠났다.  다시 만날 그곳이  하늘 나라건, 아니면 이 세상에서 또 다른 모습, 또 다른 인연으로 만나게 되건 간에. 오늘의 헤어짐이 끝이 아니며...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꺼야. 


앙팡아. 한 생을 살아오며, 고생 많았다. 우리 집의 최고 꽃미남 고양이. 최고 존엄 카리스마 앙팡아. 사랑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리고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랑할께.  너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다.  다시 글을 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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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 2016년 10월 27일.  마왕의 2주기. 


마왕이 떠난 지 벌써 2년이라니. 시간은 이렇듯 속절없이 지나간다. 붙잡고 싶은 마음에 두 손으로 바둥거리며 움켜쥐려 해도 그럴 수가 없는 게 시간이고 세월이다. 그 무정한 세월의 흐름에 풍화되어 깎여나가는 기억의 나약함에 맞서려면, 무언가를 계속 기록하고 또 되새겨야 한다. 


신해철의 죽음… 그의 부재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여전히 박탈감과 황량함으로 가득 차 있다.


어찌, 빼앗긴 들에 봄이 오겠는가…


나는 한국사회가 신해철이라는 사람… 그리고 그가 가진 에너지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더 정확히 말하면 빼앗겨버렸다. 그의 부재가 주는 아쉬움, 안타까움, 그 원통함은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가도 도무지 옅어지지 않는다. 


내가 그랬듯, 나의 아이들도…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생각을 공유하며 자라나 주기를 바랬다. 넥스트 1집에 수록 된,  ‘아버지와 나 Part 1’을 아버지의 차에서 틀었던 중학생의 내가, 아버지가 되어 내 아이와 그 노래를 들으며 얘기하고. 또 혹시 알겠는가. 마왕이 살아있었다면,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마왕이, 아버지의 관점에서 또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주었을지. 뭐… 영영 이루어질 수 없는 바람이 되어버렸다.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서, 원통하다. 


어찌, 빼앗긴 들에 봄이 오겠는가… 그저 내 마음은 황무지일 뿐이다.


몰아치는 망각에 맞서, 굳건한 기억을 지켜내고, 의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를 데리고 마왕의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무언가였다. 



마왕의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하기 위해,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으로 출발.




1년 만에 찾은 이곳. 두 번째 발걸음이어서 인지,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2016년 10월 27일, 목요일. 평일에 치러진 추모식.




주말이나 휴일이 아닌, 목요일. 평일임을 감안할때, 꽤나 많은 사람이 마왕의 기일에 마왕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아들 성현이에게도 보라색 리본을 달아주었다.

1주기 추모식 때는 애기티 풀풀 나던 성현이가, 1년이 지나 제법 늠름하게 자랐다.










"신해철 아저씨, 편히 쉬세요." 성현이가 국화꽃 한 송이를 올렸다.




마왕…. 편히 쉬소서. 내년에 또 찾아올게요.







마왕의 의료사고에 대한 재판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마침표가 찍어지기까지 아주 시간이 걸리는, 지리한 법정 다툼이 되겠지.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고, 마왕의 수술을 집도했던 집도의는 제대로 책임을 지게 되기를 바란다. 여기서 잠깐 덧붙이자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의사집단 모두를 싸잡아 도매금으로 매도하고, 비난하려는 아니다. 다만 책임을 방기하고 명백한 과실을 저지른 특정한 의사와 그의 직무유기 행위에 대해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의료행위는 기본적으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그들의 의료행위에 대해 결과만을 가지고 심판하려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심한 외상을 입고 실려 환자를 응급수술한 의사가 환자의 생명을 살리지 못했다고 해서, 다수대중이 의사의 의료행위를 의료사고로 몰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실낱같은 가능성을 보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메스를 의사에게 박수를 쳐야겠지. 그러나 또한 분명한 것은, 의사집단의 의료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해 무조건 덮어놓고 모든 것에 면죄부를 주는 것도 옳지 않다.   신해철 케이스를 보아도, 그것은 불합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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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다. 


내 감정이 한 박자 늦게 켜지는 형광등마냥 굼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한 방 세게 얻어 맞았을 때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조금 화끈거릴 뿐 멍하게 통증도 못 느끼다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통각이 나의 의식을 잡아끌며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끼게 되듯이. 죽음을 대할 때도 그러하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이별이란 언제나 갑작스럽게 마련이고, 그 갑작스러움 앞에 멍해진 채 슬픔의 감정이 나를 적셔오는 것을 느끼다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그 존재의 부재를 절감하면서 가슴이 칼로 베인 듯 애려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억들.  부질없는 후회들. 파도처럼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슬픔보다 더 깊은, 밀물 같은 슬픔이다.


2016년 5월 26일 새벽 2시 7분경. 숙이가 떠나갔다. 그로부터 12시간가량이 흐른 후 숙이를 병으로 얼룩진 아픈 몸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한 길을 다녀왔다.  숙이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에, 더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길, 그러나 앞으로도 또 가야 할 그 길.


늘 병원에 갈때, 숙이야…숙이 안 아프게 해주려고 가는거야. 다시 돌아오자. 꼭 다시 돌아오자. 를 되내였었다.


숙아. 아픈 몸에서 벗어나서 훨훨 날아가자. 정말 힘들었지? 꿈에라도 나타나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렴.





자그마치 9년의 세월이다. 고개를 들어 거실을 볼 때마다, 고양이 방을 볼 때마다. 숙이가 예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시각과 나의 기억에는 여전히 숙이가 우리 집 어딘가에 앉아있는 모습의 잔상들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분명 나에게는 더 익숙한 모습이니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숙이의 부재가 익숙해지는 순간도 오겠지. 그러나 지금은 계속해서 숙이와 함께 했던 시간의 추억들을 더듬어보려 한다. 


숙이의 투병 기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내 기억의 영사기는 숙이의 아프기 전 모습을 내 눈앞에 환영처럼 뿌려준다. 너무나도 토실토실 예쁜 아이였다. 반년 넘게 카라를 쓰고 있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숙아… 이제 카라 벗고, 마음껏 뛰놀며 그루밍도 하고 있는 거지?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어.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보고 싶다. 숙아. 너의 목소리. 묵직한 존재감. 모든 게 다 그리워.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네. 숙아... 어제도 말했었지만,  우리 다시 만나자. 어떤 식으로든, 어떤 인연으로든 꼭 다시 만나자. 










2007년 9월 경의 숙이. 숙이를 구출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때 였다.


잘 때면 사람처럼 누워 자면서, 웃음 짓는 듯한 눈매가 너무나도 예쁜 숙이였다.


컴퓨터의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9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한때 모든 사진 폴더들이 고양이들의 사진으로만 가득 채워지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다행이다. 사진이 많이 남아있어서 이렇게 그때의 기억을 추억할 수 있구나. 내일부터 당장 사진기를 들고, 내 주변의 모든 일상을 다 기록해야겠다.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예쁜 숙이의 모습을, 내 기억의 심연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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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을 모시고 사는 다묘 가정에서 살아가는 집사의 삶. 다묘 가정이라면, 고양이에 대한 포스팅들이 블로그에 넘쳐나기 마련이건만, 이 블로그에서는 2014년 8월 1일에 포스팅한 ‘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라는 유리에 대한 글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고양이에 대한 글쓰기는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죽음에 지쳐왔다. 그리고 유리는 카운터 펀치 였다. 한방에 다운되어버렸다. 그러나 고양이에 대한 글쓰기를 멈추었다고 해서, 아이들과의 이별이 멈추진 않았다. 비공개 글의 짧은 기록에 잠자고 있는 슬픈 기억들. 언젠간 다시 복원해내야 할 기억들. 


숙이가 아팠다. 반년 넘는 시간을 지리한 싸움을 해왔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이마의 상처에서 시작된 병원행. 이마에 생긴 상처를 꿰매고 오자. 하면서 시작된 두 차례의 수술. 검사. 투병. 투병. 투병. 그리고 얼마 전 갑자기 상태가 심하게 기울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숙이의 몸에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져가고 있다.



어제, 5월 24일 아침 병원에 가기 전 숙이.



어제 병원에 가서 힘겹게 처치를 받고, 오늘… 숙이를 데리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무척이나 고민하다가 내린 결단이었고. 그것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숙이에게 더 나은 길을 택해주기 위함이었다. 데리고 와서 숙이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낯설고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이어지는 치료행위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 하루사이에 상태는 더 나빠져 버렸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실낯같은 희망을 놓을수가 없었던 우리를 용서해주렴. 숙아…


죽음. 죽음. 죽음.


계속되는 죽음들을 마주하면서, 감정의 굳은살이 생겨갔는지. 죽음이라는 게 한낱 명사(名詞)의 존재감으로써 다가오기도 했다. 죽음은 죽음이지. 그런데… 숙이에게 다가온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가슴에 떠올렸다. 나의 의식을 강하게 감싸던 보호기제의 갑주를 하나하나 벗어, 의식의 기저에 내려놓아 보았다. 아… 죽음이란, 숙이의 생(生)이 만들어낸 거대한 우주의 멸절이고 붕괴. 단절이었다. 도무지 내가 마주할 수 없는 어마 무지한 압박감. 도무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저 '존재의 부재'라는 현실에 투영된 그림자로써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우리 모두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그저…숙이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줘야겠다. 


오늘 저녁, 숙이를 데리고 와서. 언니의 품에 안긴 숙이.



땅딸막한 토실토실한 몸매로 엉덩이 덩실덩실, 짧은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 집의 깡 좋은 여자 고양이 군기반장이었던 숙아. 9년의 세월 너로 인해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   




아주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다. 거의 9년 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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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5일. 마왕의 1주기 추모식에 다녀왔다. 포스팅을 작성하는 지금은 10월 27일 새벽. 마왕의 기일이다. 창 밖에는 울적하게만 느껴지는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신해철이라는 이름을 가슴속에 담았던 사람이라면, 오늘 마왕의 기일에 내리는 창밖의 비를 보면서 나와 같은 공허함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을게다. 


벌써 1년. 


그러나 여전히 너무나도 원통하고, 원통하다. 정말 너무 소중한 존재를 빼앗겨 버린, 아픈 상실감을 지울 수 없다. 너무나도 슬프지만, 마냥 슬퍼하고만 있진 않겠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중요한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기에...



마왕의 1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러,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으로 출발하기 직전


아들 성현이에게도 보라색 리본을 달아주었다


내가 그랬듯, 성현이도 마왕의 음악과 말들을 들으며 자라길 바랬었다



'Here I stand for you'라 명명된 이번 1주기 추모식. 실내 추모관에 모셔졌던 마왕의 유골함을 야외 안치단으로 옮겨서 모시는 봉안식도 거행되었다. 추모식, 유골함, 야외 안치단, 봉안식. 이런 단어들을 내 손으로 써내려가다가도, 소스라치게 깜짝 놀라게 된다. '신해철'이라는 이름과 이 단어들이 같이 쓰이고 있다니. 신해철이라는 이름 석 자 앞에 故 라는 글자를 붙여야 한다니. 알 수 없는 차가운 낯설음의 감촉이 내 가슴을 할퀸다.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린 이 상황들에 조금씩 익숙해져만 가는 나 자신이 슬프다. 죽음에 대해 여러 고민 어린 메세지들을 던져왔지만, 왠지 죽음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았던 한 남자의 부재(不在)는, 나에겐 죽음-영원한 소멸의 무한한 지속-이라는 관념만큼이나  받아들여지기 힘든 그 무언가이다. 

















그에 대한 기억을 글로 써내려가기도 힘든 지난 1년여의 시간이었다. 정말로 글을 쓰지도 못하겠더라. 가슴 속에 켜켜이 쌓인 그리움과 슬픔의 실타래들이, 부정과 분노의 감정들과 뒤엉킨 채 정리되지 않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봐도 너무나 아까운 사람이다. 이렇게 떠나가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다.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았던 사람. 


그가 무슨 암 투병이라도 하다가, 그렇게 치열하게 병마와 싸우다가 영원한 안식의 길로 떠났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으리라. 신해철이라는 사람에게서, 스스로 마지막을 정리하거나 사고할 수 있는 기회조차도 앗아가 버린 그 상황들은 분명 인간의 실수와 실수의 연속이었다.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었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들로 그는 생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아산병원으로 이송되는 앰뷸런스 안에서 잠시 눈을 떴었다고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눈에 담았을 세상의 풍경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어찌 그가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끝내고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겠는가. 원통하고 또 원통할 뿐이다.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여행을 끝내리...미련없이








민물장어의 꿈  

좁고 좁은 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나를 깎고 잘라서 스스로 작아지는 것뿐

이젠 버릴 것조차 거의 남은 게 없는데
문득 거울을 보니 자존심 하나가 남았네

두고 온 고향 보고픈 얼굴 따뜻한 저녁과 웃음소리
고갤 흔들어 지워버리며 소리를 듣네

나를 부르는 쉬지 말고 가라 하는
저 강들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다가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익숙해 가는 거친 잠자리도 또 다른 안식을 빚어
그 마저 두려울 뿐인데

부끄러운 게으름 자잘한 욕심들아
얼마나 나일 먹어야 마음의 안식을 얻을까

하루 또 하루 무거워지는 고독의 무게를 참는 것은
그보다 힘든 그보다 슬픈 의미도 없이
잊혀지긴 싫은 두려움 때문이지만

저 강들이 모여 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는 
정말로 내가 누군지 알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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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혼자 나가던 고양이 밥주는 길.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와이프와 같이  아들 성현이를 아기띠로 가슴에 안고선, 세식구가 길냥이들을 만나러 나갔었다.  처음이었다. 그때 사촌동생의 문자를 받았다. 요며칠사이 늘 조마조마해왔던 일이었다. 핸드폰으로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내 마음속 불안의 그림자속에 부유하던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이름이 있었다.

 

신해철. 허혈성 뇌손상으로 사망

 

수많은 죽음들을 보면서, 슬픔에 익숙해져버렸다고 생각했었다. 눈물이 많이 말라버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내 가슴 속으로 훅하고 파고 들어오는 그 감정들. 가드도 올리고 있지 않다가 정통으로 한방 맞아버렸다. 길위에서 아기띠로 아이를 가슴에 안은채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37살짜리 남자가 바보같이...   

 

여전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오늘밤. 술한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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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다. 더아픈 손가락이 있을게다. 여러  자식들 가운데서도 유독 더 정이가고 예쁜아이. 유리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지금 너무나도 힘겨운 숨을 내쉬고 있다.

 

 '아...이 고양이는 사람을 배려해서 행동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을 유리한테서 처음 받아봤었다. 반려인인 내가 오히려 고양이한테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착했던 고양이. 조심조심 사뿐사뿐. 발톱 한번 실수로 세운적 없는 아이. 뭐하나 빠지는게 없는 아이. 2008년에 아이를 가진 유리를 유기묘로 처음 만났고,  그후 자손이 번성하며 우리집의 대모격 고양이가 된 유리.  그런 유리가 지금 너무나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예감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억울하고 원통하다.

 

 

2014년 7월 30일 00시 12분에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 갑작스런 호흡곤란. 급성신부전도 잘 이겨냈었고, 작년엔 귀에 혈종수술이후 지혈이 잘 안되서 한동안 고생했지만, 그래도 유리는 잘 이겨냈었다. 그런데...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너무나도 갑자기 다가온 이별의 순간.  도무지 받아들일수가 없다. 눈앞에 힘겨운 숨을 몰아쉬는 유리가 있지만, 뭐랄까... 아직 나는 이 슬픔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지 못하다. 꿈인것만 같다. 어서 이 나쁜 꿈에서 깨어났으면...

 

너무나도 못해준게 많다. 늘 함께 할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래 언젠간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것을 알았지만, 그 이별의 순간이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다. 그래서 난 지금. 지독히 깨지 못하는 악몽을 꾸고만 있다.

 

놓치기 싫은데, 점점 유리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부디 마지막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2011년 9월의 사진이다. 벌써 3년이 흘렀네. 왼쪽귀도 혈종수술하기 전이라 쫑긋. 예쁜 모습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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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어야 할 기억들. 그러나, 너무나 아프고 아픈 일이기에... 쉽사리 감행하지 못했다. 너무나 감정적으로 버거워서, 차일 피일 미루어둔 아픈 글쓰기. 글을 쓰기위해,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사진들을 바라보는게 너무나 아프고 힘들게만 느껴졌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 별이 된 아이들. 그렇게 별이 되어 다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그 아이들. 우리와 함께 울고, 웃고, 숨쉬었던 나의 친구들... 욘석들을 무의식의 저편, 기억의 서고속에 묻어둘 수 만은 없다.

 

너무 아파, 그 삶과 죽음의 기록들을 꺼내어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아무리 강고한 기억들도 조금씩 휘발되어감을 느낀다. 아이들과 우리가 나누었던 기쁨과 사랑, 그리고 슬픔. 그 찐득한 감정들이 휘발되어, 딱딱한 무기질의 박제로 남아버리기 전에... 다시한번 기억을 떠올리고...또 그러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 블로그에 짤막하게 기록해두고, 비공개로 잠자고 있는 아이들의 기억을 다시 복원해야 할 때가 왔다. 힘들어도...다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2008.09.01 훈이

2008.10.03 레이

2008.10.26 미래

2008.11.15 주니

 

2011.02.28 옹이

 

2012.03.26 희열

2012.05.02 희망

 

2013.04.08 은돌

2013.06.19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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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더위를 많이 타는 나에게도... 반팔 차림이 부담스러워지는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슬픈일 들에 지치고 뜨거운 여름햇살에 힘겨워, 가슴속 한켠으로 파고 들어있던 감성이, 서늘하게 코끝을 스치는 가을바람의 감촉에 다시금 기지개를 켠다.


2012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 마냥, 집에서 모시는 냥이님들이 서른 여섯. 바람 잘날 없었다.


지난해 말부터 드리운 복막염의 어두운 그림자. 1월 24일...금동이까뮈가 고양이별로 떠나갔고, 그후로도 이어진 희망이희열이의 투병. 그 이후에도...올 여름내내 계속해서 병원에 드나드는 시간이 지속되고, 그 시간의 무게에 눌려...너무나 기진맥진 지쳐왔다. 물론 슬픔의 기억만 있었던건 아니었다. 네이버 카페에서, 보호 기간이 만료되어 안락사 위기에 닥친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고, 길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 그 아이를 데려오기도 했다. 슬픈 이별의 기억과 새 삶을 찾게된 아이들과의 만남의 기억들이 혼재되어, 시간이 흘러갔다. 당장 글로 기록하진 못해도. 늘 사진으로 모든 시간들을 기록하려 했다. 마음이 추스려지면,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시 써봐야지...하면서.


바람이 분다. 우리 곁에 함께 했고, 또 함께 하고 있는 아이들의 기록은... 더디더라도 계속되어야 할 것 같다. 밀린 숙제 하듯 굵직한 슬픔의 기록들만 써내려가다보니, 일상에서 우리 부부를 웃게 하는, 냥이님들의 모습이 자주 기록되지 못하는게 아쉽지만. 힘들고 되새기기 버거운 아픈 기억들을 먼저 끄집어내서 기록해야 한다. 내가, 우리 부부가 기록하고 기억한다면, 그 아이들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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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이 흘렀다. 지난 해 12월, 복막염의 그림자가 다시 우리 부부와 고양이들에게 드리워진후. 4개월 여의 시간들.  금동이가 처음 아프다는 것을 인지하고. 며칠 후, 포스팅 (http://hunsblog.com/tc/90) 을 썼던 그 날 이후로, 우리 부부는 기나긴 터널 속으로 한발자욱 한발자욱 걸어들어온 느낌이다. 그 실체는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으나, 몸에 눅눅히 감겨오는 불쾌한 죽음의 그림자...기분 나쁜 안개와도 같은 병마와 싸워왔다.

이 시간의 흔적들. 기억하기 위해 기록되어야만 하는 이 시간들을... 마음의 괴로움을 이유로 잠시 묻어둬야 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용기를 내어 한자 한자 적어본다.
금동이의 경우. 금동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음을 인지한 시점자체도 빨랐다. 우선 복수가 미세하게 찼을 때, 사람의 병으로 말하면, 발병초기에 조기 진단이 된 것과 같았다. 그리고 여태까지 보아왔던 복막염 케이스와는 달리, 금동이 스스로도 잘 버텨내 주었다. 무려 한달여의 시간들을. 한달 동안 아이가 힘을 내서 싸워주었다. 그러나 21세기 초엽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복막염에 투병 중인 고양이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生의 시간들을... 가능성과 기회의 시간들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며 흘려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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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5일 금동이. 금동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것을 인지했던 즈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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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27일. 금동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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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9일. 금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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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4일. 금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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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까뮈와 함께 병원 갈 준비를 할때, 금동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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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병원에서 돌아온 후 금동이. 복수를 조금 뺀후 컨디션은 더 안좋아졌다.





























   
 
 
1월 초순이 지날 무렵. 까뮈도 컨디션이 떨어지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처음 컨디션이 떨어졌을때, 같은 또래에 금동이가 복막염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을 걱정하며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 물론 까뮈는 금동이와 달리 복수가 차오르진 않았다. 등뼈가 심하게 만져질 정도로 살이 빠지고 있는 상태였다. 피검사 후, 복막염이나 범백보다는 무리에서 도태되어, 제대로 먹지 못하고 조금씩 쇠약해져 오면서, 몸 전반적인 곳곳에 문제가 생긴것으로 진단 받고, 집중치료에 들어갔다. 몇일동안 인큐베이터 같은 곳에서 수액과 영양제 등을 맞으면서도, 상황이 호전 되지 않았다. 그 이후 시행된 PCR검사에서 복막염과 범백 진단을 받았다. 이미 종합예방접종을 2-3회에 걸쳐 다 시행한 아이들인데...범백이라니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예방접종을 마친후, 남자아이들의 경우는 중성화까지 마친 후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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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4일. 검사 받으러 가는 길의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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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7일. 입원하고 집중치료 받고 있는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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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8일. 계속해서 집중치료 받고 있는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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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까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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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0일. 금동이와 함께 병원에 간 까뮈.














































 

금동이도 피검사 결과에 기반한 첫 진단이, 오히려 복막염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복수가 차오르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에 무게가 실렸고, 초반에는이뇨제와 항생제를 처방받으며 투병을 시작했었다.  백만원이 넘는 금액을 아이들을 위해 투자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가 아이들을 도와준 것은 전혀 없었다는 기막힌 현실.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아이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 고양이별로 떠나갔다. 이 분야에 대해서 알고 있는 지식이, 파편적이고 제한적인 상황에서. 마음 속에서 고개를 드는 아쉬움과 의혹감 등등이 뒤섞인채, 아이들을 떠나 보낼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함. 그 불쾌한 지적 공백은... 여전히 가슴에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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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3일. 마지막 힘겨운 순간을 함께 견디고 있던 두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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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3일. 금동이와 까뮈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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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23일. 서로의 몸을 의지해 누워있는 금동이와 까뮈.

































     
     
     

2012년 1월 24일 07시 20분경에 금동이가 먼저 무지개 다리를 건넜고, 20시 25분경에 까뮈도 아픈 몸을 벗어나 금동이 오빠를 따라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1월 20일... 갑작스레 호출받고 찾아간 병원에서의 mercy-killing 권유를 거절하고 돌아와서. 우리 부부는 부엌에서 금동이 까뮈와 함께 자고 생활하며 아이들의 마지막을 함께 하고자 했다. 우리의 마음을 헤아려 준것일까... 금동이와 까뮈는 크게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잠들듯...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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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보내주러 가던 길. 차안에서.


































       
      

이렇게 두아이를 보내고... 한달이 지났을까... 삶이 다시 일상적 삶으로 돌아오는 듯 했던 그때... 희망이의 배에 복수가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절망감...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에...포스팅을 하려고... 글쓰기 버튼을 눌렀지만. 차마 마무리하지 못한 글...희망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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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으로...

(금동이와 까뮈의 이야기를 다시금 마음속에서 꺼내어 놓는 일은, 이미 했어야 하는 일이었고,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지만... 아픔이 아로새겨진 시간을 되새기는 일은, 정말 힘든 글쓰기 과정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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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동이의 글 이후, 한달여의 시간이 흘렀다. 음력 설도 지나가고. 와이프와 함께, 거실과 분리된 부엌에 임시 격리소를 마련하고, 금동이와 까뮈 곁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이제 벌써 5일째이다. 금동이의 투병기. 까뮈의 이야기. 써야 할 글들이 많지만... 지금은 도저히 글을 쓸수가 없다. 그러나, 기록하지 않는 기억이 희미해져감을 느끼면서, 다시금 무언가를 써내려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로그인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몇자 주저린다. 자세한 기록들은, 이후에 포스팅해야겠다. 승리의 기록이 아니라, 여전히 아픈 되새김의 기록이 될 것이라는게 너무 아프다.

금동이는 한달 여의 시간을 복막염으로 추정되는 병과 싸우며 버텨주었다. 그러나,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금동이가 강한 체력으로, 활동성과 식욕을 보이며. 과거에 지켜보았던 복막염에 걸린 아이의 모습과는, 다른 의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해줄수 있는게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금동이의 생의 시간들을, 어찌보면 가능성과 기회의 시간들을... 무기력하게 흘려보냈다. 억만금을 주고라도, 뭔가 도움이 될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지만. 우리가 할수 있는 방법은 보조적인 서포트 밖에는 없었다. 지독한 무기력함...

며칠째, 안방 침대가 아닌 부엌바닥에서 선잠을 자며 생활하다보니. 기억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시간이 지나가는 듯하다.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헷갈리는 기억의 흔적들을 보며, 금동이 곁에서 블로그에 로그인해서 글을 쓴다.

금동이기 힘든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전반적인 징후들이, 우리 곁에 다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음을 예감케 한다. 목까지 올라온 힘든 숨. 힘겨움이 묻어있는 이 아이의 몸짓. 아...불과 일주일 전만해도, 금동이는 야옹거리며, 활동성도 보였고 식욕을 보이며 삶의 의지를 느끼게 해주었었는데... 라는 아쉬움의 탄식과 후회를 내뱉어보지만. 그 시간들도 벌써 일주일가량이 흘러버렸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각인된 기억과 흘러간 시간사이에서 체감되는 간극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래...그것도 벌써 일주일 가량의 시간이 흘러버렸구나...

금동이의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시간들. 외롭지 않게... 힘들지 않게... 곁에서 지켜주는 수밖에. 현재 우리는 할수 있는게 없다. 아쉽다. 원통하다. 생의 시간들. 뭔가를 바꾸어낼수 있는 기회의 시간들이 있었는데. 현재 우리 인간이 가진 기술은, 여전히 복막염이라는 병마 앞에 무기력하기만 하다. 진단조차 명확히 할수 없는 이 병...4년만에 다시 우리집으로 찾아들었다.

삶과 죽음. 유한한 생을 가진 유기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지나가야할 그 과정. 그러나 그 과정들을 지켜보는건, 너무 아프다. 힘겹다. 그리고 무기력하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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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가 떠나간지 1년하고 6개월이 지나갔다.  불과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을뿐인데. 너무나도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것만 같은 느낌이다. 10년전, 생초보 집사였던 서투른 나에게 와주었던 녀석. 나와 함께 몸을 맡대고 살았던 첫 고양이. 나 밖에 몰랐던 나의 친구이자, 동생 같았던 나의 똘레. 그녀석은 나의 형제와도 같았다. 괴로울때나,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기쁠때나, 술에 취했을때나, 피곤할때나...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나의 벗. 나의 고양이...

역시나 슬픔은 기억의 저편에 잠시 밀어두는 것일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똘레를 떠올릴때면... 똘레가 떠나간 작년의 기억들을 되새길때면, 그 며칠사이의 기억을 떠올릴때면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후회들이 나를 감싼다. '아...내가 이렇게 대처했다면, 똘레가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가지 않았을텐데...' 하는 회한과도 같은 감정. 똘레의 부재를 다시한번 기억의 저편에서 현실로 꺼내왔을때 느끼게되는 울컥하는 마음. 그립다. 그립고도 너무나 그립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유일하다. 그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대체할수 없다. 각각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우주이다. 우주가 지고나면, 영원한 공허와 공백만이 남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6년 초, 어머니와 똘레의 하트놀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5년 크리스마스날 찍은 사진. 똘레와의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들은, 결국 영원하지 않았다.



인간은 존재를 넘어선, 무형의 가치, 형이상학적인 것을 늘 추구한다지만.  자신이 가진 오감--감각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구체적인 경험으로 환원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어떠한 유형의 실체를 갈구한다. 과거 원시인들이.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거나, 하다못해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도. 어떠한 무형의 존재에 대한(절대자 혹은 죽음건너 저편으로 떠나간 존재에 대한) 구체적 실존형태를 만들고 싶었음이리라.

내가 이번에 진행한 작업 또한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는건 아닐까...생각해본다.





바로 이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얼핏보면, 예전 그대로 같지만, 자세히 보면 11플렛에 하얀띠가 들어가있는걸 볼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펄아크릴 박스 위에, 청자개로 새겨져있는 똘레(ddolre)

사용자 삽입 이미지ddolre가 콩글리쉬이고, 발음대로 따라가면 thol~ 또는 ttol~ 로해야 하지만, ddol~로 새겨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헤드 아랫쪽에, 똘레 어렸을때 모습같은 메탈스티커 한장.



똘레가 내곁에 함께 있었을때, 마치 똘레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던 시절. 똘레가 놀아달라고 칭얼거릴때, 놀아주지 않고 이 기타만 뚱땅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섭섭함이었을까...이 기타를 조율하고 있으면 똘레가 무척 칭얼거리며 싫어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E-A-D-G-B-E(미-라-레-솔-시-미)음이 귀에 거슬렸던 걸까... 아니면,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요상한 물체를 안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나에대한 섭섭함의 표현이었던 걸까... 그때 똘레와 더 놀아줄껄... 08년에 3월에 이 기타를 들여왔었으니까... 똘레와 2년 2개월정도의 시간을 공유한 기타이다. 이렇게 똘레 커스텀으로 인레이(지판에 문양)를 새겨넣기 전에도, 이 기타를 똘레라 이름 붙였었다. 똘레라는 이름을 11번 플렛에 새겨넣은 이 기타. 이번 인레이 커스텀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Guitar 카테고리에서 새로 포스팅 할 예정...

   cf. 예전 기타 사진 포스팅 --->>   Cort Earth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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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블로그에 잠자고 있던, 아이들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을 정리해보려 하다가,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꼈다. 시간이 흘렀건만, 가슴속에 묻어둔 그 기억들을 끄집어 내는 일은, 여전히 불편한 작업인가보다. 역시나 아픈 기억은 잊혀지는게 아니라, 잠시 가슴속에 묻어두는 것인듯 하다. 그러나 힘들어도 기록해야 한다. 기록하고, 기억한다면 그 아이들은 영원히 살아있는 것일테니... '아이들아. 우리는 너희를 늘 기억하고 있단다.'

가슴이 답답해져옴을 느끼면서, 그 무게를 잠시 내려놓고 싶어, 하드에 있는 냐옹이 사진을 뒤적거리는데.  얼마 전에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풋~'하는 웃음을 짓게 만드는 사진들. 그래서 한 번 올려본다. 설마 이게 19금에 걸리진 않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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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이와 찌롱이. 남녀상열지사 아닙니다. 둘다 여자 야옹이들이에요~








본론으로 들어가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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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와 찌롱이(제이) 커플. 행운이가 찌롱이 목덜미를 너무 아프게 물길래, 혼내면서 순간 카메라를  들어서 찍어본 사진이다. 행운이는 오래전에 중성화 수술이 되어있는 아이라. 보면서 풋~ 하면서 사진을 찍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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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해탈 상태의 행운이 ^^;;;








글을 올리며 보니, 플래쉬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기능도 있었다...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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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비가 아이들을 3마리 출산하고, 이어서 마리가 아이들을 또 3마리 출산하고 한창 정신없을 무렵인 8월 19일 새벽. 은별이도 아이들을 출산 했다. 검은색과 회색빛 털에 예쁜 흰양말을 심은 꼬맹이와, 마리가 낳은 아이와 닮은 옅은 노란색빛의 털을 가진 꼬맹이. 이렇게 두 녀석을 낳았다.

출산의 과정도 순탄치 못했는데... 우선 8월 19일 새벽 1시정도에 검은색/회색 빛깔아이를 먼저 낳았다. 그리고선 12시간 가량 경과 할 동안, 아이를 출산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힘겨워하기만 했다. 결국 8월 19일 오후 13시경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마리의 아이처럼 옅은 노란색빛을 띤 꼬맹이를 출산했다. 엄마가 수술후 너무 힘겨워해서 아이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집에 있는 다른 엄마고양이에게 우선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16시경에 병원에 가서 먼저 노란아이를 먼저 데리고와야 했다. 은별이는 8월 19일 21시가 되어서야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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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기 몇시간 전의 은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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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새벽 1시즈음 첫째 아이를 낳고 얼마지나지 않았을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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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수술하러 병원가있는 동안 은비의 젖을 물고 있는 꼬맹이. 처음엔 젖을 잘 못물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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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태어난 꼬맹이와 태어난지 2주가량된 아이의 크기 차이. 은비의 아이들이 쑥쑥 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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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별이 퇴원후. 휴식중





은별이가 아가들에 대한 애착은 보이는데, 수술한 직후라 그런지 제대로 케어해주지 못했기에, 두녀석을 돌보는데에 많은 정성과 노력을 쏟아야 했다. 이미 생후 1일째에 사람손에서 초유먹고 길러진, 마리와 호랑이때의 경험이 있는지라, 이 아이들도 사람이 조금 고생하면서 정성과 노력을 들이기만 하면, 잘 클꺼라는 믿음이 있었다.

처음에 까만녀석은 엄마가 병원에 있는사이, 다른 엄마들의 젖을 잘 물고 열심히 젖을 먹곤 했는데. 병원에서 제왕절개 수술후 데리고온 노란 녀석은 젖을 애타게 찾으나, 막상 젖을 대주고 위치잡아주고해도 젖을 물지 못해서 초유를 인공수유해야 했다. 그렇게 은별이 돌보고, 노랑이녀석 몇시간마다 한번씩 초유먹이고 하면서 8월 20일이 저물고, 8월 21일 오전에야 노랑이 녀석이 드디어 젖을 물고 힘차게 꾹꾹이를 해가며 젖을 빨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이번엔 먼저 태어났던 녀석이 젖을 잘 빨지 못하는게 아닌가. 야옹야옹거리긴하는데, 제대로 젖을 물지 못하고 무리에서 밀려나는 듯 해서, 다시 이 녀석에게 초유 인공수유를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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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2일 오전 2시경... 초유를 먹이기 위해 폭신한 타월로 녀석을 감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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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그래...제발 먹어주기를 마음속으로 되내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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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트름해야 하니까 살짝 톡톡 등도 두드려주고


그렇게 또 정신없이 8월 22일이 지나가고. 8월 23일...다시 두마리다 엄마들 품으로 돌아가 젖을 먹고, 안정이 오는듯 했다.  짧은 안정도 잠시.  8월 23일 저녁. 노란녀석이 컨디션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먹는것도 잘 먹지 못하고, 너무나 아프게 비명지르듯 울기 시작했다. 예전에 07년에 짱이가 장염이 심하게 걸렸을때, 너무 배가 아파서, 내지르듯 야옹거리던 그 목소리였다. 아... 안좋은 예감이 스친다. 휴... 이녀석은 어떻게 하다보니, 사진 한장 찍어주지 못했던 녀석인데. 사진을 찍자니, 내가 살아있는 이 녀석을 포기하고 영정사진 찍는 것만 같아. 사진기 대신 초유 젖병을 들고선, 계속해서 아주 조금씩 밖에 못먹더라도 초유를 먹여주고. 따뜻하게 해주려고 했다. 단발마 비명소리 같은 간헐적 야옹소리를 들으니, 이녀석이 너무 아파하는구나... 그리고 떠나가려고 하는구나...를 어렴풋하게나마 느낄수 있었다.

배변시켜줄때, 피가 나오는걸 보고 병원에 전화했을때, 선천적으로 장이 안좋게 태어난 아이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이  녀석의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게 분명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꼬맹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 안식을 향해 떠나갔다. 8월 24일 새벽 3시 42분. 아... 이녀석. 사진한장 남겨주지 못하고. 이름 한번 붙여주지 못했는데...  

그렇게 날이 밝고. 은별이의 하나 남은 아이인, 첫째 녀석은 잘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슬픔과 피곤을 밀어내려 했는데... 이 녀석또한 점점 활동성이 떨어지고. 먹지 못하고. 새벽에 노란녀석이 고통스럽게 내뱉던 야옹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병원으로 이 녀석을 데리고 갔다. 고통스럽더라도 생명을 몇일 더 연장시킬수는 있지만. 이미 몸에도 조직이 괴사하기 시작했고,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아이들인 것 같아. 힘들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작은 아이들이라, 정맥을 잡을수가 없어. 수액을 놓을수도 없고, 피하로 진통제와 영양제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힘겨운 숨을 몰아쉬는 녀석을 자기 엄마품에 안겨주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은별이의 첫째도 8월 24일 14시 20분경. 자기 형제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지 채 12시간도 못되어, 그 뒤를 따라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작고 연약한 생명들이, 그 작은 몸으로 견뎌내기에는 버거울정도로 너무나도 아파하고 힘들어 하다가,  아픈 몸을 떠나, 짧았던 세상에서의 시간을 뒤로 한 채, 무지개 다리 건너 저편의 안식의 공간으로 떠나갔다. 가장 예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려고 했던 걸까...겪었을 고통과는 달리, 너무나도 예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남긴 채, 나비처럼 훨훨 날아간 아이들. 그 둘은, 무지개 다리 저 건너편에서 다시 만나, 서로 몸을 부비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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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너무나도 따뜻한 몸. 그냥 깊은 잠에 빠져 못깨어나는것만 같았다. 첫 사진이자 마지막 사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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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품에 안겨있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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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근새근 잠자듯 떠나간 아이. 이세상에 왔다가 왜이리 서둘러 떠나간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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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작스러운 이별. 나와 10년을 함께 해온 똘레가 떠나갔다. 우리 부부와 인연을 맺고 함께 지내는 냥이들중에서 옹이를 2000년에 만났고, 똘레를 2001년에 만났으니 우리 고양이들 계보 서열상, No.2였던 똘레... 2007년 4월 결혼을 하고, 다른 고양이들과 함께 하려했으나, 심하게 스트레스받고 적응하지 못했기에, 2007년 8월부터 결혼전 똘레와 내가 늘 함께 했던, 내 방...부모님왈 '똘레방'에서 지내야 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결혼전 햇수로 7년을...한방에서 동거동락하며, 함께 지냈던 그녀석은, 내가 가장 애정을 많이 쏟는 아이였다.

   6.2Kg정도의 우량해보이는 건장한 아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죽음이다. 너무나도 건강해보였기에... 불과 엊그제까지만해도, 크게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었다. 어제부터 갑작스레 활동성이 떨어지고, 식욕이 감퇴했으며, 만질때마다 아파하기 시작했는데... 솔직히 불과 24시간전...아니...불과 7시간전까지만해도.... 똘레가 이렇게 떠나갈줄은 몰랐다. 똘레의 주된 병은 '당뇨'. 이미 다른 장기들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었다 한다. 말못하는 이녀석이 얼마나 속으로 끙끙 앓았을까... 난 얼마나 무심하고, 뻔뻔한 반려인이었던 것인가.  하늘이 꾸물꾸물 했다.  그리고 똘레가 떠나간 이후... 보슬보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의 눈물일까... 똘레의 눈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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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늘 네가 내곁에 있을 것만 같았어. 영원함을 기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갑작스레 이별할 줄은 몰랐어. 늘 나뿐이었던 너...똘레... 어머니께서 그러시더라구. 내 발소리만 나면, 현관문 앞에가서 날 기다리던 너. 내가 운동한답시고 런닝머신위 에서 뛰고 있으면...그게 새벽시간이건, 언제건간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나를 바라보며 함께하고자 했던 너. 하물며 내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때나, 샤워를 하고 있을때도, 앞발로 문을 톡톡 밀어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바라보던 너....  미안해. 넌 나를 많이 사랑해줬는데... 그리고 그 사랑을 표현해줬는데... 난 너를 사랑하고, 가장 아낀다는 말만 하면서,  표현하지는 못했어.... 네가 이렇게 떠나갈줄은 몰랐거든. 인간이란 이렇게 한심한가봐.... 곁에 늘 있을것만 같았거든...가슴속에 남는것은 짙은 후회뿐... 정말로 너와 나의... 이별의 날이 오늘일줄은 몰랐어. 내가 샴푸로 머리를 감고나와 누우면, 내 머릿결을 격하게 사랑하며 나의 머리를 움켜잡던 너의 그 두 손은... 지금 너무 차갑고... 더이상 내 머릿결을 움켜질수 없게 되어버렸구나.   정말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너의 아픔을 너무 몰라주었구나. 네가 이렇게 아프고 힘들동안, 난 지딴에 힘들답시고  밖으로 나도느라, 너에게 관심 못가져줘서 정말 미안해. 똘레야... 나를 용서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했던 냥이는 너였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미안한게 많다.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똘레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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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께(12/21) 밤 10시쯤... 밥을 주며 만났었다. 늘 그랬듯 내가 골목에 나타나면, 냐옹거리며 밥달라고 애교를 피우던 녀석, 그날 밤도 별다를바 없이 냐앙거리는 그 녀석과 그 패밀리들에게 밥을 주고 내일보자는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그로부터 10시간정도가 흐른후...  어제 아침(12/22) 8시 평상시 같았으면 이 아침시간대에, 그 길을 지나칠 일이 없는데 갑작스레 일이 생겼고, 어머니의 급한 호출을 받고 부시시한 머리 모자에 감추고선 종종 걸음으로 편의점 앞을 지나치는데,

   편의점앞 도로에, 그 아이가 쓰러져있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야옹거리며 애교를 피우던, 생기넘치던  예쁜 삼색냥이. 눈도 감지 못한채 떠난 그 아이. 이미 몸도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죽음이 주는 그 차가운 감각은, 자주접해도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후...이녀석 마지막 가는 길. 자신을 묻어 달라고, 나를 불렀던 것일까...

   살펴보니 차에 치였다거나 하는 눈에 띌만한 외상도 없었다. 그렇다면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우선 편의점앞으로 진입하는 차량에 훼손되는것을 막기위해, 그 녀석을 도로 위에서 옮겨야 했다. 그리고선 그 녀석을 인도 위의 가로수 곁으로 옮긴후, 벼룩시장 신문지를 가져와 덮어주었다. 일단 어머니의 급한 호출도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 잘 안띄기를 바라며 우선 자리를 떴다. 그리고 10~20분후 다시 돌아와서, 박스에 그 아이의 몸을 수습해놓았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아침시간이라 묻어줄수도 없는 상황. 밤까지 안전한 장소에 그 녀석을 데려다놓고, 밤에  같은 동네에 뜻을 함께 하는 지인과 함께 그 녀석을 좋은 곳에 묻어주었다.(삼색냥이는 지인을 무척이나 따르던 녀석이었다)   이 척박한 콘크리트 덩어리 도시에서의 고된 삶을 마감하고, 다음세상엔 무엇으로 태어나든 편안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빌며...  

   죽음. 그리고 운명.  가끔씩 이 세상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며 겪고 경험하는 일들은, 치밀한 각본이 짜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한한 삶의 살지만, 무한의 우주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유한함을 자주 망각하며 살다가, 가끔씩 유한한 生이 가진 처음과 끝을 목격할때면, 나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건 영원할 수 없다는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과의 조우. 그 불편함에 언제쯤 익숙해지게 될까.


야심한 밤에...정리되지 않는 상념들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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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8년 7월 13일 03시 10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9월... 나에겐 참 잔인할 달 같다. 삶과 죽음. 생명의 온기와 죽음의 차가움. 오감으로 절실히 느끼게 되는 그 크나큰 간극은 여전히 쉬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애써 머릿속에서 생각을 지우려 하지만, 이렇게 늦은 밤, 잠시 방심한 틈을 타 애써 외면하고 잊으려 했던 기억들은 내 가슴속에 파고든다.

 

 사람은 누구다 저마다의 가치로 살아간다.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쥐끈끈이를 놓아 잡아죽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그 끈끈이에 온몸이 붙어 죽어가는 아이를 데리고와 식용유 한통 쏟아부어가며 떼어내어 살리려고 하는 것 처럼. 다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자신에게 가치다고 생각하는 일들로 인해, 몸은 피곤 할 수는 있어도 마음이 진정 행복한 것인가 일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나는 행복하다. 다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무기력할 뿐.

 

 지난 추석때, 삼촌과 담배한대 피우며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98년이었던가 학생운동을 열심히, 그리고 깊숙히 하고 있다는 말을 했을때, 강원도 영월 동강 강변의 포장마차에서 나의 소줏잔에 술을 채워주시며, '20여년을 기다렸다'라고  웃음지으셨던 79학번의 삼촌. 03년에 반전집회에 나가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데, 누군가 뒷통수를 통 때려서 돌아보니, 웃음짓고 계셨던 그 삼촌. 

 

 그날.  머릿속에 고민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한다고 이야기했을때, 삼촌께선 웃으면서 이야기 하셨다. '살면서, 마음이 내키는대로 움직이고, 그 선택을 존중해보는것도 좋은거야... 난 살면서 그렇게 못살아와서, 요즘, 마음이 이끌리는대로, 마음이 내키는대로 하고 싶은것 하면서 사는걸 연습중이다. 하고 싶은 것 한번 시도해보고, 이후에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참 괜찮은거야.'

 

 먼저 떠나간 아이들이, 별이 되어... 나를 이끈다. 그때마다 흘렸던 마음의 눈물들은, 나에게 이정표가 되리라...

 

 08년 9월에만 세번째... 9월 1일, 9월 18일, 9월 24일... 이제 그 죽음의 랠리가 종지부를 찍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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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9월  2일 18시 13분에 옮겨놓습니다. (사진추가)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약 한달 반 전인, 작년(2007) 12월 12일. 내 생일날. 햇 수로 7년동안 인연을 맺어왔던 뚤레패밀리의 대모 '뚤레'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2006년 6월까지만해도, 성묘만 5마리로 이루어진 튼튼한 길냥이 패밀리였었다. '옹이'와 '똘레'가 고양이와 살을 부대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첫 시작이었다면, '뚤레'는 길냥이란 존재를 삶속 깊숙이 자리매김하게 해준, 첫 시작의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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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웅이.깜둥이.쪽이.뚤레

   [관련글]    12월 12일.                          ▷▷▷   http://hunsblog.com/tc/32     

    [관련글]  [♬] 안녕...턱시도 냥이, 우주야...    ▷▷▷   http://hunsblog.com/tc/33   
                                                                             뚤레는 우주의 엄마고양이     

    

당시는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네 집 창가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가끔은 그 보살핌이 고마웠는지, 가끔 쥐를 잡아다가 와서 와이프네 집 현관문 앞에 놓아두곤 하던 뚤레와 아이들. 번성했던 패밀리였던 녀석들중에, 무슨일이 생겼던 건지. 낭만을 알던 풍류고양이 같았던 멋진 쪽이, 방안까지 들어와서 예쁘게 야옹야옹 울던 깜둥이가 언제부턴가 안보이기 시작하고. 2007년 중반 즈음엔 뚤레, 꼬미, 웅이 이렇게 셋이 남게 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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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0일, 뚤레. 꼬미. 웅이.


몇 개월 전, 가을에서 초 겨울로 접어 들어 갈때 쯤. 짱이의 엄마이자, 뚤레의 예쁜 딸이었던 꼬미도 안보이기 시작했다. 자주 가는 동물병원 수의사쌤께서 이 근방에 길냥이들한테 범백이 돌고 있는것 같다고 하셨다. 불안했지만. 그래도 엄마 뚤레와 아들 웅이. 그리고 꼬미가 남긴 딸인 꼬맹이 미애가 서로 의지하고 지내는 것을 보며, 마음을 쓸어 내리곤 했다. 그러다가 한달 여전,  내 생일날. 뚤레가, 늘 저녁때마다 나를 기다리던 그 자리에서 잠자듯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뚤레가 떠나가고 몇일 간, 웅이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엄마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 높던 녀석이었는데. 홀로 남겨진 이 세상의 풍경들이 너무나 낯설고 외로웠을게다. 몇일 만에 본 웅이의 모습은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그로부터 또 며칠이 지난 후, 여전히 눈치보며 소심하게 밥먹으로 다가온 녀석의 몸에서 예전엔 볼수 없었던 상처 자욱과 피부병 같이 털이 웅큼웅큼씩 빠져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잔뜩 주늑이 든 모습, 어딘가 아파보이는 몸. 너무나 처량해보였다. 우리와 인연을 맺은 첫 길냥이가 남긴 유일한 핏줄인 웅이(그리고 미애)를 이대로 방치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녀석들을 집으로 데리고 들어오기로 마음을 먹게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두 아이들을 잡을 수 있을지 몰라, 고양이 관련 협회의 인터넷 카페에 문의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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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26일. Daum카페 '고양이보호협회'에 올렸던 글.


웅이와 미애를 데려오는 작전을 펴던 12월 28일, 12월 29일. 손 끝이 애리도록 차가운 겨울 바람이 불었다. 두 가지 어려운 점이 있었는데. 동네 분들의 간섭은 우리가 예상했던 어려움이었기에 괜찮았는데, 예상치 못했던 난관은. 동네에 밥을 주던 다른 길냥이들이었다. 웅이와 미애를 잡으려고 설치한 통덫에, 다른 애들이 털컥털컥 잡혔다. 웅이가 너무 조심성이 많은 녀석이었기에. 은밀한 곳에 통덫을 설치하고, 근처 건물 유리문 안쪽에서 그 곳을 관찰하곤 했는데(물론 너무 추워서 바람 피할 곳을 찾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털컥털컥~ 소리가 나서 가보면 계속 다른 아이들. 첫째 날 작전은 성과가 없었다.

둘째 날. 그날도 역시 매서운 칼바람이 불어댔고, 계속되는 구출(?)작전 실패에, 마음 속에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우던 자정무렵. 털컥 소리와 함께,  미애가 잡혔다. 와...근데 이녀석이 놀라서인지 온갖 괴성을 지르며 통덫안에서 우당탕 난리가 났다. 통덫을 들고 집으로 뛰었다. 집에 가서도 통덫에서 철장케이지에 넣는 과정에서 미애가 방안으로 탈출하여, 온갖 기물파손-_-;;;을 저지르며, 정말 날라다녔고 한동안 숨바꼭질을 벌인 후에야, 미애를 우선 마련해 놓은 철장 케이지에 넣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우리 둘은 진이 다 빠진 상태.  다시 통덫을 들고, 잠복장소로 향했다. 미애를 데리고 가면서 미애가 필사적으로 난동^^;;; 을 부렸기 때문에, 웅이를 다시 잡기 힘들어지는것이 아닌가 걱정했었지만. 다행히 웅이는 우리를 추위속에서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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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데리고 왔을때는 욕실안에 철장케이지를 설치하고 격리시켰고. 어느정도 안정후에, 케이지를 방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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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애는 아직 어렸기에(▶◀'짱이'랑 형제자매간) 오래지 않아,애들과 적응을 했다. 단 고양이들하고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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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이는 여전히 경계태세...ㅠㅠ


밖에서, 지배되지 않는 자유로운 도시의 영혼으로 6년가량 살았던, 야생성이 살아있는 웅이는 여전히 불안해하며 경계하고 있는 상태이다. 밖에서는 너무 왜소하고 연약해보이던 녀석이, 집안에 데리고 들어와서 보니. 완전 덩치큰 고집스러운 남정네의 모습.^^;;;  어릴때나 새끼때는 쉽게 집안 환경에 적응 할 수 있지만, 6년이나 바깥 삶을 살았던 녀석에겐, 좀더 긴 시간이 필요 할 것만 같다. 이로써, 우리 동네 길냥이계의 한 축이었던 뚤레네 패밀리는 더이상 바깥에선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제 우리집 안에서 뿌리를 내리게 되겠지. 보고 있니...? 뚤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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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0년 8월 15일 17시 53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2007년 12월 12일, 나의 생일...그리고, 뚤레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냐앙~거리며  꼬리 세우며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뚤레가,
이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도시의, 지배되지 않는 맑은 영혼이었던 뚤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허락하는구나.
널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서 느껴지는 너의 차가운 체온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어.

너는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기다린듯 늘 있던 차 아래에, 있었지.

왜일까...보통때에는 불러도 나오지 않을때, 조금 기다리다가, 그냥 밥을 주고 오곤 했었는데.
뚤레야. 오빠를 불렀던거니? 오늘 따라, 잘 살피지 않던 그 구석쪽으로의 알수없는 이끌림을 느꼈고,
어두워서 확인할수 없었기에,  후레쉬까지 비춰보았었는데... 뚤레야. 오빠를 불렀던 거구나.

뚤레네 식구들이 점점 줄어들어간다...이제 남은건 웅이 하나.

2006년 6월 이전까지만 해도,  228-2에서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을때까지만 해도, 뚤레, 웅이, 꼬미, 깜둥이, 쪽이...이렇게 번성했던 가족들이었는데. 아니, 불과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뚤레, 웅이, 꼬미, 그리고 짱이를 포함한 꼬미의 아이들까지 외롭지 않은 패밀리들이었는데...

밥주던 곳을 옮기기전 그 창살쪽에 있을때, 골목에 내가 들어서면, 냐앙거리면서, 나에게 달려오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 웅이 하나 남았구나.

어제까지만해도, 넌 우리 곁에 있었는데... 긴 시간동안 너무나도 잘 지내주었기에, 넌 언제나 괜찮을꺼라 생각했었어. 뚤레야. 너를 너무나도 좋아하며 잘따르던,  네 아들 웅이. 웅이가 너무 애처롭다.

기억하니? 웅이는 우리가 밥을 줘도 먹지않고 기다리면서, 냐옹거리면서 널 불렀었어. 그리고 네가 오면 골골거리면서, 너에게 몸을 부비며, 그제서야 밥을 먹곤 했었지. 네가  늘 웅이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 그 순해서 물러터진 녀석을 말이야...

2006년 초. 네가 네마리의 아가를 낳았었지. 아이들을 우리가 입양시키려고,
방에 데리고 들어왔을때, 구슬피 울며 냐앙거리던 네가 생각난다. 우주가 유독 너를 따랐었는데.

우주가 떠나가고, 깜둥이쪽이가 작년 여름 사라지고, 꼬미가 몇달전부터 안보이기 시작하고, 짱이가 떠나가고... 이제 네가 가는구나.

네가 사랑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다시 몸을 부비며, 함께 하겠지. 이렇게 각박한 도시에서, 메마른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일이 참 힘든 일이었을꺼야. 이제 편히 쉬기를 바랄께. 고생했어.


뚤레야.
01년부터 시작되었던 너와의 인연, 우리의 인연이 참 소중한 인연이었음을... 기억해줘.
그리고, 잊지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님을,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임을 말이야.

나와 현숙이에게, 길냥이 사랑의 시작을 만들어주었고, 늘 든든한 대모 로서, 우리 곁에 있어주었던 너.
네가 있어, 참 좋았어. 고마워.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친구로 태어나주기를...

너의 마지막 아들. 준이. 너의 아이 맞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키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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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올렸던 사진. 2003년 12월 13일, 4년전의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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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말~06년초,(깜둥이), 꼬미, 쪽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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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이, 꼬미, 저뒤에 깜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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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깜둥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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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 깜둥이, 쪽이, 뒤쪽에 꼬미,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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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둥이, 쪽이, 꼬미,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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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둥이, 쪽이, 뚤레, 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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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웅이, 깜둥이, 쪽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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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0일, 뚤레. 꼬미. 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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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8월 31일 17시 52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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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 오전, 짱이를 보내주러 가던길, 차창밖으로 내다본 파아란 하늘은 참 슬퍼보였다.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가며 뿌려놓은 씨앗들속에서,
우리의 추억과 기억이 싹트게 되지만,

또한 시간이 흘러가면, 그속에서 싹튼 우리의 추억과 기억은,
움켜쥔 손아귀에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고운모래의 감촉처럼, 흐릿하게 옅어져간다.

떠나간 존재에 대한 추억의 향기는,
눈물겹게 잡아보려 바둥대도, 언젠가는 희미해져갈 것이라는,
시간의 마법에 대한 예감은, 때론 내 가슴을 쥐어짜게 만들지마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삶의 Rule인것을 어찌하겠니...

그러나, 너와 내가 함께 한 시간의 발자취는, 영원히 내가슴에 남아있으리라.

너와 함께한 시간속에서의 웃음.
너와 이별한 후의 눈물.

영원히 내가슴속에 새겨보려, 다시한번 그 시간들을 더듬어본다. Timeless Time...

FOREVER  ZZ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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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8월 12일 23시 11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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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06시 13분, 걸려온 전화한통... 짱이를 맡겼던 병원으로부터의 전화. 솔직히 그 전화를 받기가 무서웠습니다. 이 새벽에 전화가 오는 이유가, 단 한가지 밖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피하고만 싶었지요. 엄습해오는 듯한 그 현실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지난 11월 22일, 짱이를 병원에 데리고 갈때... 이 길이 마지막 길인 줄은, 꿈도 꾸지 못했었는데... 원충치료를 위해 약을 먹고 있는 상태였고, 그 상황에서 식욕이 떨어지고 힘이 없길래, 그 원충때문에 문제가 생겨서 애가 기력이 없어진줄 알고, 감기 치료하듯 가벼운 마음으로 나섰던 그 길이, 이리 다시 돌아올수 없는 길이 될줄은 몰랐습니다.

마지막 일줄 몰랐기에, 다시 못보게 될줄 몰랐기에, 특별히 인사도 하지 않았는데...
금방 다시 보게 될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가볍게 인사하면 돌아섰는데, 그게 마지막이었을 줄이야.

짱이는 우리와 떨어진채, 병원에서 외로워하며 그리 떠나갔네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죽음.
5일동안, 홀로 병원에 맡겨두었을때, 자기를 홀로 낯선곳에 맡겨둔, 형과 누나가 원망스럽진 않았을지...
다 짱이를 위한 길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는데...

검이가 9월 6일 떠나가고, 11월 27일. 짱이도 떠나갔습니다.

지난 주에 서울에 첫눈이 내렸을때, 짱이에게 눈내리는 창가를 보여줬었습니다. 신기한듯 바라보면서 흥겨워하던 짱이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올해 여름에 태어나, 겨울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짱이는 떠나갔네요. 짱이가 보았던, 그 첫 눈이, 짱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눈이 되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영역, 그 사이의 억만급의 간극은, 삶의 공간속에 있는 나에겐 마주치게 될때마다, 가슴에 커다란 폐허를 남겨놓는것 같습니다.

짱이...우리 짱이의 눈이 너무 슬퍼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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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포스팅하면서, 몇일후 짱이가 돌아오면 [Welcome 짱] 이라는 제목으로 포스팅하려 했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어버렸네요. 휴... 핸드폰에 남아있은 02-3XX-XXXX  AM 06:13 라는 통화기록이, 짱이가 이제 우리곁에 없음을, 이 현실이 꿈이 아님을 상기시켜줍니다. 아직 사실 저와 제와이프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 와닿지 않아요. 그 不在의 현실이 피부로 와닿지 않네요. 믿고 싶지 않기에.

'11월 27일 짱이가 떠나갔습니다.' 라는 자판을 누르는게, 내마음속에 짱이의 묘비명을 새기는게, 너무나도 버거운 일이군요. 한 생명의의 탄생을 기록하는것은 축복이지만, 그의 마지막을 기록하는건 한자 한자... 새길때마다 마음이 애려옵니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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