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13년 12월에 아들이 태어나고 시간이 흘러, 내가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을 무렵부터 사진을 띄엄띄엄 찍기 시작했고, 이유식 단계를 지나 식판에 밥을 먹기 시작했을 무렵인 2014년 말~ 2015년 즈음부터 아이의 식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은 쌓이고 쌓여가는데, '조만간 한번 싹 정리해서 올려야지...' 하면서 미루다 보니, 어느덧 2021년 한 해도 다 지나가고 있다.

올해 초, 인스타그램에 아이들 식판 사진을 올릴 계정을 하나 만들었었다. ( http://www.instagram.com/im_daddy_cook ) 그리고 2021년 1월 24일부터 계정에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2021년 1월 24일에 무려 6년여 년 전. 2015년 1월 30일의 식판 사진을 올렸었다. 

[2021년1월 24일 인스타에 처음으로 올린 사진]
→ ( https://www.instagram.com/p/CKZ0rgGjTof/?utm_source=ig_web_copy_link )     

그리고 며칠간 6년 전 사진들을 찾아서, 굉장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며 사진을 인스타에 업로드 하다가, 이런저런 일이 생기고 흐름이 끊겼다가, 결국 유야무야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인스타에 사진 업로드 하는 작업을 다시 시작할 예정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올려볼 생각. 그러다가 내 블로그 카테고리에, 육아에 관련된 '아버지 되기'라는 카테고리를 보고는 블로그에도 한 번 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주 즉흥적으로 만들었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이렇게 적어 내려가 본다.

처음부터 정리하듯 예전 것부터 다 찾아서 글을 작성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늘 그런 식으로 접근하다가 제풀에 지쳐왔었다. '처음부터 제대로 차근차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틀린 생각은 아니지만, 과한 욕심이자 집착이기도 했다.  그런 식으로 어떠한 일의 태초부터 정리하는 것, 그렇게 진짜(?) 처음부터 완벽하게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서 그것이 지금의 기록들까지 이어져야, '제대로'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오히려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들었음을 떠올렸다. 그래서. 앞뒤 가리지 않고. 그냥 오늘부터 기록해보려고 한다. 부담 없이. 강박을 가지지 않고. 마음 편하게 올리고 싶을 때 올릴 생각. 매일매일 무엇 무엇을 해야만한다는 MUST를 가지고 싶지는 않다. 그냥 마음 편히 내가 행하는 무언가들을 기록하고 싶을 뿐이다. 

 


☆ 인스타그램 계정 :  http://www.instagram.com/im_daddy_c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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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발 태풍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그 '솔릭'이라는 녀석이 올라올 때도, 비는 찔끔 오는 둥 마는 둥 했더랬다. 어제 저녁 여덟시 즈음… 옥상의 평상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머리 위로 비가 몇방울씩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가 내리는 밤이 오면 구구가 떠날 것 같아.' 

곁에 있는 아내가 대답했다. '응.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구구. 비강종양으로 투병해왔던 구구. 구구의 상태가 마지막이 임박했다고 느낀 것은 이미 10일이 넘었다. 그간 많은 아이들을 떠나보내오면서,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는 마지막에 대한 예감이 있다. 목까지 올라온 할딱거리는 숨. 발작하듯 경련하다 축 처지는 몸. 초점 없는 눈빛. 그리고 여태까지 슬픔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사실 그것은 '예감'이라기 보다는 축적된 경험에 의한 예측이었다 ) 그러나 구구는 죽음의 문턱에서 온 힘을 다해, 다시 되돌아오곤 했다. 그리고는 다시 아내의 품에서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던 구구. 

 

구구의 비강 안에서 자라나 구구의 안구를 밀어내고 , 얼굴 뼈를 밀어내며 커지는 암 덩어리가 주는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이 삶의 끈을 놓지 않는 구구를 보면서, 도대체 구구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도대체 무엇이 구구를 이 '생'에 붙잡아 두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비강 전체를 막아버린 암 덩어리로 호흡조차 힘겨운 상태에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아이가 버텨내 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처절한 아픔이고 짙은 괴로움이었다.

 

매일 한두 차례씩,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며 힘겨워하는 구구를 쓰다듬으며, 우리 부부는 '구구야. 정말 고생 많이 했어. 너 이제 편히 쉬어. 이렇게 아프지 말고 편히 쉬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구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려다 다시 우리의 곁으로 돌아와, 탈진한 듯 지친 몸을 누인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구구는 그렇게 자기 삶의 모든 에너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듯,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모습이 존경스럽기 까지 했다. 주어진 생의 순간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내려는 모습을 통해, '삶' '죽음'이 진정 모두 고귀하다는 것을 배웠다. 구구에게 배웠다.

 

 

그로부터, 시간 후인. 2018년 8월 26일 23시 59분.

 

구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창밖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태풍이 올라올 때도 볼 수 없었던 시원한 빗줄기들이었다. 비가 내리면 구구가 떠나갈 것 같았는데, 정말로 비가 내리고 구구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구구의 마지막은 평온했다. 아이가 겪었던 지독한 고통들 앞에, 감히 평온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써도 되는지 주저케 되지만. 그간 아이가 힘겨워했던 모든 모습에 비하면, 그래도 평온한 모습으로 이 생에서 '구구'로서의 마지막 길을 떠나갔다. 오른쪽 눈에 맺힌 맑은 눈물들은, 아쉬움이었을까… 슬픔이었을까…

 

구구야. 정말 고생했다. 너무 아프고 힘들었지. 너무 잘 견뎌주고, 이겨내 주었다. 고통을 겪는 너에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해줄 없어서 정말 미안하고 괴로웠어.  구구야. 사랑한다. 너는  최고의 아이였다. 나의 든든한 북극곰. 나의 포비. 나의 , 구구.

 

모든 게 아쉽기만 하지만, 이 생에서 우리 사이에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였나보다. 그렇지만 구구야. 이게 끝은 아닐 거라 믿는다.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닐꺼야. 우리 어떤 모습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꼭 다시 만나자. 우리 다시 만나자.




아내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서, 고통이 덜어지진 않았더라도, 외롭지는 않았을게다.


태어난지 1년도 되기 전, 이미 거묘의 기질을 보였던 든든한 구구. 그립다.




[ 비와 당신의 이야기 -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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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태어난 지는 이제 50일을 향해가고 있고, 올해 12월 26일이면 세 돌이 되는 아들 성현이는 나날이 놀랍게 발전해간다. 이전에도 그러했겠지만 요즘 들어 부쩍, 요 녀석이 자신의 뚜렷한 의지와 주관을 가진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2013년 12월 26일생. 아직 36개월도 안 된 아이이지만, 벌써 몇 개월 후면 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 된다. 한창 예쁜 짓을 많이 할 시기. 애교도 많이 부리고, 뜻밖의 언어적 성장을 보여주어서 주변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제는 제법 말도 잘 통한다. 감정표현도 풍부해지고, 스스로의 감정 그 자체도 성인의 그것과 비슷한 것 같다. 또 혼내면 자못 서운한 기색을 보이기도 한다. 당연하겠지.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혼내고 훈육하면 그것을 그대로 아무 서운함 없이 받아들이기만 하는 듯 했던 영유아시기는 이제 거의 다 지나간 듯하다. 아이는 하루하루 드라마틱하게 자라가는데, 정작 부모인 나는, 아이의 성장과 변화를 제대로 인지 못 한 채 아이를 대하기도 하는 것 같다.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란다. 부모가 챙겨주고, 먹여주고, 입혀주고, 부모가 선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수동적 객체에서, 점점 능동적 주체로 자라나고 있다. 오로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고, 부모의 통제(?)에 따라야 했던 아이가, 이제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스스로 날기 위한 어설픈 날갯짓을 시작했다고나 할까. 아이는 무언의 이야기를 한다. ‘아빠 !!! 나도 이제 컸어요!!!’


이제 아직 세 돌도 안 된 아이를 바라보면서,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은 좀 과한 것일까?


뭐라 설명하기 힘든, 묘한 시원섭섭함. 뭐랄까… 아쉬움이 좀 더 진하게 배어 나오는 감정이다. 시간은 화살과도 같이 날아가고, 우리 인간들은 그것을 잡을 수 없다. 뒤집기도 못하던 그때,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던 그때, 배밀이를 하던 그때,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하던 그때, ‘아빠, 아빠, 아빠’ 말 한마디에 기뻐하며 동영상을 찍던 그때 그 시절들엔, 아이가 좀 더 빨리 자라나서 의사소통도 하고 같이 능동적으로 교감하게 되기를 바라며, 그렇게 앞날을 바라보며 정겹기만 한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시간을 잡고 싶은 심정이다. 


조금만 천천히 자라주면 안 될까… 아들아. 내사랑 성현아. 



마왕의 추모식에 참석한 아들 성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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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6년 5월 18일. 내일 있을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한 상태이다. 수술 자체는 위험한 수술이 아니지만, 전신마취를 동반하는 수술이라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마음이 드는 와중에 문득 가상의 유언장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의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미리 쓰는 유언장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떠나가는 준비되지 죽음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는 그런 죽음이 다가오지 않기를… 아니 그러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마지막 말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글들을 작성한다. 이글의 발행일은 며칠 후인 2016년 5월 21일, 나의 퇴원일로 예정해놓을 생각이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성현이와 태어날 나의 딸에게 남기는 글이 될 것이다. 내일 오전에 바로 수술이기에,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좀 촉박하다. 유난스럽게 방정 떨려고 이러는게 아니라,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게 되는 이 상황들을 내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볼 기회로 삼아보려 한다. 진짜 유언장이 되지 않기를 빈다, 진심으로.



미리 쓰는 유언장.  김태훈.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면서 보여주셨던 사랑과 믿음에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최상의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흔한 말로 인풋대비 아웃풋이 너무 저조한 저였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전에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태어나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다.’ 라고. 아버지, 어머니 저는 부모님께서 저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에 늘 안도했고 늘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쫓겨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던 나의 부모님.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부모님께서 연세가 들어가시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강인하고 총기 넘쳤던 엄마가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볼 때도 혼자 가슴 아파했고, 언제나 빛 바랜 사진 속의 젊고 강한 아버지 그대로이실 것같은 아빠가 조금씩 늙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어요. ‘아…내가 부모님을 지켜드려야 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처럼 늘 저에게 안식의 그늘을 드리워주셨던 나의 부모님. 언제나 받기만 했네요. 조금도 제대로 되돌려 드리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엄마…아빠… 잘하겠다는 마음만 먹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이 못난 아들을 언제나 보듬어주셨죠. 감사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식사를 조금만 더 양껏 하세요. 그리고 못한다 하지 마시고, 새로운 것을 자주 접해보세요. 엄마가 얼마나 총기 넘치던 사람이었는지 전 기억하거든요. 아빠, 아빠는 아빠 어깨에 지워진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나셨으면 해요. 그리고 잠을 좀 푹 주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께 또 이렇게 마지막 부탁하나 드릴게요. 성현이와 태어날 딸아이에게, 저에게 그러하셨듯 많은 인생의 가르침 부탁드려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 좋은 가르침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벗, 나의 연인. 2000년 당신을 만났던 그 눈부신 봄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봄날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16년여의 시간들. 연애 그리고 결혼. 몇 마디 글로 그 시간들을 풀어내려니 순간 말문이 막혀버리는 느낌이네요. 뜨겁게 사랑한 만큼 또 많이 다투기도 했던 우리. 당신과 내가 함께 그리는 생의 도화지에 늘 좋은 그림만 그리고자 했는데, 삶이란 게 또 일상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어요. 멋진 모습,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지요. 그대는 내 모습을 비추는 진실의 거울. 그대 앞에서 못난 모습도 참 많이 보였네요. 이렇게 자책을 해보기도 했지만, 또 우리 부부는 친구같이 연인같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게 즐겁게 연애하듯 결혼생활을 해오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안정된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의 사랑으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게 되네요. 그대에게도 나와 함께 한 삶의 시간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기를 바래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짧았고, 인생의 마지막에 쉼표란 없네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찍어진 마침표. 당신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더 사랑하고자 했고, 더 많이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말을 전하는데 아쉬움이 가득한 걸 보니,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가 드네요. 이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너무나 달라진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네요. 똘똘 뭉쳐져 작아져 버린 마음에 너무나도 바보 같은 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대. 그대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나에겐 그러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네요.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지지만, 정리가 되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네요. 그대를 정말로 사랑했고 또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대에게 내 사랑이 기억되기를.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빌어요. 다음 세상에서 다시한번 그대와 연인이 될 수 있다면 좀더 키가 큰 사랑을 주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게요. 내가 가고 나면 부모님께서는, 단 하나 있는 자식을 잃으신 거에요. 부모님 외로우시지 않도록, 자기와 성현이 그리고 태어날 딸아이가 내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기를 부탁해볼게요. 진심으로 부탁해요.


나의 아들 성현아. 너와 함께 한 29개월여의 시간들. 정말 최고의 시간이었다.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나의 아이를 사랑하게 될지. 네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너에게로 가 최고의 아빠가 되고자 했다. 부모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를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내게 가르쳐준 나의 아들. 너와 함께 하고픈 일들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정말정말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너무나도 아쉽구나. 기나긴 삶을 함께해가며, 너와 이야기 나누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몇 마디 말로 너에게 나의 바람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통하기만 하다. 아빠가 좋아했던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에게 들었던 말을 너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흔히들,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 어떠한 거창한 소명이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거 없어, 없다고. 그냥 태어난 게 목적이야. 태어난 거로 된 거야. 이미 넌 목적을 다한거고. 목적을 다 했는데 또 무슨 성취고 소명이 필요하겠니. 너에게 주어진 인생은 그냥 보너스게임인거야. 이제 너는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남은 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 거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더 좋고 말이야. 성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빠의 바램이야. 그리고 또하나, 아빠는 성현이가 자기 고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고집이 성현이를 지켜줄 '자부심'이 되도록 잘 컨트롤하며 키워주고 싶었던 아빠의 소망을 기억해주렴. 늘 네 자신의 선택을 믿어봐. 모든 영역에서 네 자신을 믿고 그 자신감 위에서 살아가기를 바래. 그리고 더 나아가, 검증될 수 없는 믿음을 택하기보다는 네 자신과 네 자신이 가진 의심과 회의의 힘 - 이성을 믿기를 바래. 설령 그 길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할지라도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너무 아쉽다. 좀 더 자란 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성현아. 사랑한다. 그리고 아빠가 늘 성현이 곁에서 지켜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엄마 뱃속에 있는 나의 딸에게. 아버지들은 딸이 생기면 딸바보가 된다고 해. 딸이 생긴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지금인데, 이렇게 뜻밖의 이별이라니. 네가 태어나면 얼마나 새로운 경이로움을 맛보게 될까? 늘 궁금하기만 했어. 그런데 딸바보가 되어보기는 커녕, 아빠가 너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가는 것에 아쉬움보다 너무나 큰 미안함이 앞선다. 너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기만 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그리고 네 오빠 성현이가 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빌 수밖에 없는 이 무기력감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너를 한번 쓰다듬어보지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번 건네보지 못한 이 아빠를 용서해주렴. 너에게도 최고의 아빠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과 계획들을 어지러이 세워보곤 했는데 그것이 이젠 아빠의 몫이 아니구나. 미안하다. 늘 당당하고 건강하게 커다오. 그리고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만 같지만, 사랑한다. 나의 딸아. 다음 세상에서 아빠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딸의 아버지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네 곁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 미안하다. 네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 너에게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고 원통하구나. 미안하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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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했던가... 아니다. 더아픈 손가락이 있을게다. 여러  자식들 가운데서도 유독 더 정이가고 예쁜아이. 유리는 그런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지금 너무나도 힘겨운 숨을 내쉬고 있다.

 

 '아...이 고양이는 사람을 배려해서 행동하고 있구나.'

 

이런 느낌을 유리한테서 처음 받아봤었다. 반려인인 내가 오히려 고양이한테 배려받는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착했던 고양이. 조심조심 사뿐사뿐. 발톱 한번 실수로 세운적 없는 아이. 뭐하나 빠지는게 없는 아이. 2008년에 아이를 가진 유리를 유기묘로 처음 만났고,  그후 자손이 번성하며 우리집의 대모격 고양이가 된 유리.  그런 유리가 지금 너무나 힘겨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이별예감이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워...억울하고 원통하다.

 

 

2014년 7월 30일 00시 12분에 병원에 데리고 갔었다. 갑작스런 호흡곤란. 급성신부전도 잘 이겨냈었고, 작년엔 귀에 혈종수술이후 지혈이 잘 안되서 한동안 고생했지만, 그래도 유리는 잘 이겨냈었다. 그런데...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너무나도 갑자기 다가온 이별의 순간.  도무지 받아들일수가 없다. 눈앞에 힘겨운 숨을 몰아쉬는 유리가 있지만, 뭐랄까... 아직 나는 이 슬픔을 제대로 직시하고 있지 못하다. 꿈인것만 같다. 어서 이 나쁜 꿈에서 깨어났으면...

 

너무나도 못해준게 많다. 늘 함께 할거라고 생각했기에. 그래 언젠간 이별의 순간이 온다는것을 알았지만, 그 이별의 순간이 이렇게 빠를줄은 몰랐다. 그래서 난 지금. 지독히 깨지 못하는 악몽을 꾸고만 있다.

 

놓치기 싫은데, 점점 유리는 멀어져만 가고 있다. 부디 마지막이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2011년 9월의 사진이다. 벌써 3년이 흘렀네. 왼쪽귀도 혈종수술하기 전이라 쫑긋. 예쁜 모습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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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어야 할 기억들. 그러나, 너무나 아프고 아픈 일이기에... 쉽사리 감행하지 못했다. 너무나 감정적으로 버거워서, 차일 피일 미루어둔 아픈 글쓰기. 글을 쓰기위해, 그 기억들을 떠올리고 사진들을 바라보는게 너무나 아프고 힘들게만 느껴졌었다.

 

무지개 다리를 건너 별이 된 아이들. 그렇게 별이 되어 다시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그 아이들. 우리와 함께 울고, 웃고, 숨쉬었던 나의 친구들... 욘석들을 무의식의 저편, 기억의 서고속에 묻어둘 수 만은 없다.

 

너무 아파, 그 삶과 죽음의 기록들을 꺼내어 풀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아무리 강고한 기억들도 조금씩 휘발되어감을 느낀다. 아이들과 우리가 나누었던 기쁨과 사랑, 그리고 슬픔. 그 찐득한 감정들이 휘발되어, 딱딱한 무기질의 박제로 남아버리기 전에... 다시한번 기억을 떠올리고...또 그러기 위해 기록해야 한다. 블로그에 짤막하게 기록해두고, 비공개로 잠자고 있는 아이들의 기억을 다시 복원해야 할 때가 왔다. 힘들어도...다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

 

 

 

 

 

2008.09.01 훈이

2008.10.03 레이

2008.10.26 미래

2008.11.15 주니

 

2011.02.28 옹이

 

2012.03.26 희열

2012.05.02 희망

 

2013.04.08 은돌

2013.06.19 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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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님께서, 깜짝 선물로 안겨주신 발렌타인 데이 선물. ^^ 

 

실상 '무슨무슨 데이'류의 날들은 제빵/제과업계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기념일 특수를 노리는 업자들의 상술이 콜라보미션을 수행하는 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 생각해왔기에 이런 날들과 서서히 작별해가려 하는 요즈음!!! 와이프님의 깜짝 발렌타인 데이 선물. 실용과 감동이 함께하는 마음의 선물 앞에, 입이 귀에 걸린 나를 발견하게 된다. ^^;;;

 

 

 

 

좌측 상단, 까메오 출연 '베티'

 

 

'라리'와 '보배'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선물을 노리고 있... -_-+

 

 

공부할 때 먹으라고, 맛있는 아이템을 준비해주신 와이프님께 너무 감동을 받았다. 물론 이 소중한 선물을 어찌 나혼자 가져가서 먹으리오. 와이프님과 커피 한잔씩 하면서 나눠먹어야지. 거기에다 운치있는 노란 튤립과 용돈^^*... 그리고 가장 큰 선물인... 마음이 담긴 편지까지 ㅠ_ㅠ

 

비록, 자본의 상술에 의해 기획된 날 일지라도, 그 상술에 휘둘리는 수동적 객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묻혀 무덤덤하게 지내기 쉬운 서로에게 가끔 이렇게 편지와 마음의 선물을 전달할수 있는 날로 활용하는 주체가 될수 있다면... 이런 날들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고마워요~ 자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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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가 떠나간지 1년하고 6개월이 지나갔다.  불과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을뿐인데. 너무나도 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온 것만 같은 느낌이다. 10년전, 생초보 집사였던 서투른 나에게 와주었던 녀석. 나와 함께 몸을 맡대고 살았던 첫 고양이. 나 밖에 몰랐던 나의 친구이자, 동생 같았던 나의 똘레. 그녀석은 나의 형제와도 같았다. 괴로울때나,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기쁠때나, 술에 취했을때나, 피곤할때나... 그 모든 시간을 함께 해주었던 나의 벗. 나의 고양이...

역시나 슬픔은 기억의 저편에 잠시 밀어두는 것일뿐.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똘레를 떠올릴때면... 똘레가 떠나간 작년의 기억들을 되새길때면, 그 며칠사이의 기억을 떠올릴때면 가슴이 내려앉는 듯한 후회들이 나를 감싼다. '아...내가 이렇게 대처했다면, 똘레가 그렇게 갑작스레 떠나가지 않았을텐데...' 하는 회한과도 같은 감정. 똘레의 부재를 다시한번 기억의 저편에서 현실로 꺼내왔을때 느끼게되는 울컥하는 마음. 그립다. 그립고도 너무나 그립다.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 유일하다. 그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를 대체할수 없다. 각각의 존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우주이다. 우주가 지고나면, 영원한 공허와 공백만이 남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6년 초, 어머니와 똘레의 하트놀이.

사용자 삽입 이미지2005년 크리스마스날 찍은 사진. 똘레와의 영원할 것 같았던 시간들은, 결국 영원하지 않았다.



인간은 존재를 넘어선, 무형의 가치, 형이상학적인 것을 늘 추구한다지만.  자신이 가진 오감--감각으로 구체화되지 못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구체적인 경험으로 환원되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어떠한 유형의 실체를 갈구한다. 과거 원시인들이. 거대한 조각상을 만들거나, 하다못해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것도. 어떠한 무형의 존재에 대한(절대자 혹은 죽음건너 저편으로 떠나간 존재에 대한) 구체적 실존형태를 만들고 싶었음이리라.

내가 이번에 진행한 작업 또한 비슷한 연장선상에 있는건 아닐까...생각해본다.





바로 이것↓↓↓






사용자 삽입 이미지얼핏보면, 예전 그대로 같지만, 자세히 보면 11플렛에 하얀띠가 들어가있는걸 볼수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펄아크릴 박스 위에, 청자개로 새겨져있는 똘레(ddolre)

사용자 삽입 이미지ddolre가 콩글리쉬이고, 발음대로 따라가면 thol~ 또는 ttol~ 로해야 하지만, ddol~로 새겨넣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헤드 아랫쪽에, 똘레 어렸을때 모습같은 메탈스티커 한장.



똘레가 내곁에 함께 있었을때, 마치 똘레가 영원히 내 곁에 있어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가던 시절. 똘레가 놀아달라고 칭얼거릴때, 놀아주지 않고 이 기타만 뚱땅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에 대한 섭섭함이었을까...이 기타를 조율하고 있으면 똘레가 무척 칭얼거리며 싫어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E-A-D-G-B-E(미-라-레-솔-시-미)음이 귀에 거슬렸던 걸까... 아니면, 자기와 놀아주지 않고. 요상한 물체를 안고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나에대한 섭섭함의 표현이었던 걸까... 그때 똘레와 더 놀아줄껄... 08년에 3월에 이 기타를 들여왔었으니까... 똘레와 2년 2개월정도의 시간을 공유한 기타이다. 이렇게 똘레 커스텀으로 인레이(지판에 문양)를 새겨넣기 전에도, 이 기타를 똘레라 이름 붙였었다. 똘레라는 이름을 11번 플렛에 새겨넣은 이 기타. 이번 인레이 커스텀 작업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 Guitar 카테고리에서 새로 포스팅 할 예정...

   cf. 예전 기타 사진 포스팅 --->>   Cort Earth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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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의 저 편으로 멀어져가는 똘레와의 추억들을 움켜쥐고 싶었지만, 그 시간들은  손가락 사이로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고운 모래알과 같았다.    '4월 22일 마지막 예비군 훈련을 다녀왔을때는 똘레가 떠나기 한달전이었네...',   '어제 이맘때쯤엔 똘레가 내곁에 살아있었는데...',   '이틀전 이맘때즘엔, 삼일전 이맘때쯤엔...'  그렇게 똘레와의 이별을 기준으로 시간들을 세어온지 이제 일주일 조금 넘는 시간이 흘렀다.

   더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꼽아가는 시간들이 열손가락을 넘어서면서...그 숫자가 커져갈수록... 그렇게 슬픔의 빛깔도 조금씩 옅어져 가겠지. 똘레의 빈자리에 익숙해지는 듯 하다가도, 불현듯 가슴이 먹먹해지곤 한다. 똘레가 없는 9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9일이라는 시간동안 똘레가 없었다는 사실이 갑작스레 낯설게 느껴진다.


#1 / 똘레의 마지막 인사

   5월 21일 저녁, 똘레가 활동성과 식욕이 급감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날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몇 시간후 5월 22일 새벽에도 똘레를 곁에서 보는데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 듯 보였다. 호흡도 나빠지고 걷지도 못한채  아예 얼굴을 바닥에 대고 누워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일어나서 걸으려 할때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다리가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양옆으로 벌어지는 모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병원에 갈 요량으로 우선 집에 내려가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눈을 붙였다. 2시간정도 잤을까... 전화벨이 울렸고, 어머니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똘레가 일어서지도 못하고 아예 옆으로 누워서 오줌을 싼다는 것이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아침 9시가 약간 넘은 시간, 택시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똘레는 그렇게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똘레를 보내주고 이틀정도 지난 월요일인가 어머니가 나에게 한가지 말씀을 해주셨다. 똘레의 마지막 인사에 대한 이야기를...  

   똘레가 병원가기 몇시간전 아침 6-7시즈음에 부모님께서 식사하시고 계시는데. 똘레가 '야앙'하면서 자기방에서 마루쪽으로 나오더란다. 어머니께서 일어나셔서 똘레방에 갔을때도 누워있기만해서 그냥 쓰다듬어주고 나오셨다는데... 얼마 있다가 똘레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야앙~'하면서 마루로 나와 부모님께서 식사하고 계시는 식탁쪽으로 걸어와서는 식탁에 앉아계신 부모님 다리 사이를 몇 번 자기 몸으로 툭툭 부비며 지나가더란다. 그래서 부모님은, 저 녀석이 힘을 차렸나보다하며 잠시 안도하셨다는데. 그러다가 방으로 들어가서 야옹거리더니,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아예 누워서 오줌을 싸는 것을 보시고는 바로 나한테 전화를 하신거라는 이야기였다. 어머니께서는 '그날 아침 똘레가 엄마하고 아빠한테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던것 같다'며 눈물 지으셨다. 똘레의 마지막 인사. 밤새 몸조차 일으키지 못했던 똘레가 자신의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했던,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인사... 자신이 다음 날 아침을 맞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이었을까...




#2 / 내 동생 같았던 똘레

   2000년 7월부터 옹이를,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가 키우기는 했었지만
  똘레는 내가 키운 첫 고양이였다. 나만의 똘레였고, 똘레만의 나였다. 추운 겨울이면 두툼한 이불속으로 파고 들어 내 종아리 근처에 몸을 누이고 자던 녀석이었다. 가끔 술한잔 기울이고 집에 들어와서는 잠자는 녀석을 깨워서  그녀석을 향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고... 슬플때 똘레에게 하소연하고 있으면 그녀석은 책상에 앉아있는 내 두 팔사이로 와서 털써덕 안겨서는 나의 이야기에 화답하기도 했다. 모기가 출현하면...똘레와 합동작전을 벌이며 그 모기를 잡기도 했다(사람눈은 모기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똘레는 모기의 움직임에 시야확보가 가능했다)  강산이 한번 변할 시간을 함께 해왔던 추억을 어찌 이 짧은 글에 다 담을수 있을까... 똘레는 내 동생이었고, 나는 똘레에게 때론 퉁명스럽고, 마음만 앞서는 그러나 행동은 상냥하지 못했던 못난 형이었다.

   똘레야...우리 처음만난 날... 넌 조리뽕 과자봉지에 몸이 다 들어갈 정도로 작았었어. 그런 너를 보며  아가였던 네가, 밖에서 겪었을 배고픔과 두려움 대신, 따뜻한 편안함과 안식의 자리를 주겠다 맹세했었어. 그렇게 작았던 네가... 나보다도 훨씬 늦게 태어나고, 어렸던 네가 어째서 나보다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이렇게 형이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길을 먼저 떠나간거니... 미안하다. 넌 언제나 나에게, 그 누구에게 보다도 가장 큰 신뢰와 믿음을 보내주었는데. 난 그에 화답하지 못한 것만 같다.




#3 /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간다

   5월 22일, 아침에 나에게 야옹거리던 똘레를 맡기고 왔던 병원에서, 더이상 나에게 아무말도 하지 못하는 똘레를 안고 병원을 나서던 그날 저녁. 아무 것도 먹기 싫었다. 똘레는 배가 고팠을텐데... 나혼자 무언가를 먹는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미안했고, 나의 슬픔이 가식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다음 날, 똘레를 보내주고 돌아주고 오는 차 안. 슬픔 속에서 고개를 드는 강한 배고픔을 느꼈다.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인 인간...그 생의 억척스러움이었을까...   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았다. 하강과 상승 이미지의 대비니 뭐니 하는 텍스트의 이해가 아니라, 그 말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먹어야 산다는 것. 누군가의 떠나감을 슬퍼하면서도, 눈물을 훔치며 우걱 우걱 무언가를 입으로 밀어넣어야 생을 유지 할 수 있는 유기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의 억척스러움을 보며 느끼게 되는 서글픔이랄까... 말로 풀어 설명하기 힘든 무언가를 느꼈다.  그래...눈물은 떨어져도 숟가락은 올라가지만... 떨어지는 눈물은 여전히 짭자름하고 아프다.



#4
/ 2006년 8월 11일

   똘레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더듬어보다가 똘레 가출사건이 문득 떠올랐다. 그 당시 느꼈던  간절함과 다시 똘레를 만난 안도감을 그 글에 기록해둔 것 같았는데, 싸이월드 미니홈피나 예전 블로그를 훑어보아도 도통 그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작년 11월에 블로그를 새로 갈아엎으면서, 예전 블로그의 글들은 무료호스팅계정에 걸어두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가출사건(?)에 대한 포스팅은  '비공개 상태'로 잠자고 있었다.  그 글의 포스팅의 말미에 난 이렇게 써놓고 있더라...

 [  똘레 실종사건 060811 (부제 : 다시 찾은 똘레)   http://hunsblog.tistory.com/161  ]

우리는 늘 잊고 살아간다, 늘 소중한 존재들이 곁을 지켜주고 있는데, 늘 함께 있을때는 그 존재들의 소중함을 알지 못하다가, 그 소중한 존재의 '부재'상황을 맞이하고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는것 같다. 늘 내곁에 있는 모든 소중한 존재들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과연 나는 그날로부터, 똘레를 정말 보내야했던 2010년 5월 22일까지... 4년에 가까운 시간들을, 내가 내뱉은 그 말처럼 살았던 것일까...혹시 그 소중함과 간절함을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희석시켜온 것은 아니였을까... 난 선언적인 말만 내뱉을 줄 알았지,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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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3일...똘레를 보내주고 왔다. 아니, 똘레의 아픈 육신을 보내주고 다시 함께 돌아왔다. 이 세상 그 어떤 죽음이 아쉬움과 회한이 남지 않겠냐만은... 본격적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24시간도 안되어서 급작스럽게 마주했던 똘레의 죽음앞에, 난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며칠의 시간을 다시 되돌릴수 있다면, 지금 똘레를 이렇게 보내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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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부터로 보면, 똘레와 가장 긴시간을 함께하셨던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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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가 유독 잘따르고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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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와 늘 함께 놀아주고자 했던 마음따뜻한 내 아내



   나를 포함해, 모든 가족들이 똘레의 마지막길을 배웅해주고 돌아오는길... 똘레의 엔젤스톤이 담긴 유골함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길.  여전히 하늘에선 비가내렸다. 촉촉히 내리는 저 비가 차라리 좋았다. 똘레가 떠나가고 화창한 햇살을 마주해야 했다면 더 힘들었을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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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이틀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난 마음속에서 똘레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9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똘레. 이 녀석과의 시간을 다시 추억해보고 싶다. 아직 똘레를 떠올리며 아쉬움 섞인 미소를 지을 수 있기까지는...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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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0년 8월 15일 17시 53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2007년 12월 12일, 나의 생일...그리고, 뚤레의 갑작스러운 죽음.
어제까지만 해도, 나에게 냐앙~거리며  꼬리 세우며 나를 반갑게 맞이하던 뚤레가,
이 삭막한 콘크리트 덩어리 도시의, 지배되지 않는 맑은 영혼이었던 뚤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몸을 우리에게 허락하는구나.
널 거두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서 느껴지는 너의 차가운 체온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어.

너는 마지막까지도 우리를 기다린듯 늘 있던 차 아래에, 있었지.

왜일까...보통때에는 불러도 나오지 않을때, 조금 기다리다가, 그냥 밥을 주고 오곤 했었는데.
뚤레야. 오빠를 불렀던거니? 오늘 따라, 잘 살피지 않던 그 구석쪽으로의 알수없는 이끌림을 느꼈고,
어두워서 확인할수 없었기에,  후레쉬까지 비춰보았었는데... 뚤레야. 오빠를 불렀던 거구나.

뚤레네 식구들이 점점 줄어들어간다...이제 남은건 웅이 하나.

2006년 6월 이전까지만 해도,  228-2에서 보금자리를 가지고 있을때까지만 해도, 뚤레, 웅이, 꼬미, 깜둥이, 쪽이...이렇게 번성했던 가족들이었는데. 아니, 불과 지난 여름까지만 해도, 뚤레, 웅이, 꼬미, 그리고 짱이를 포함한 꼬미의 아이들까지 외롭지 않은 패밀리들이었는데...

밥주던 곳을 옮기기전 그 창살쪽에 있을때, 골목에 내가 들어서면, 냐앙거리면서, 나에게 달려오던 아이들이었는데, 이제 웅이 하나 남았구나.

어제까지만해도, 넌 우리 곁에 있었는데... 긴 시간동안 너무나도 잘 지내주었기에, 넌 언제나 괜찮을꺼라 생각했었어. 뚤레야. 너를 너무나도 좋아하며 잘따르던,  네 아들 웅이. 웅이가 너무 애처롭다.

기억하니? 웅이는 우리가 밥을 줘도 먹지않고 기다리면서, 냐옹거리면서 널 불렀었어. 그리고 네가 오면 골골거리면서, 너에게 몸을 부비며, 그제서야 밥을 먹곤 했었지. 네가  늘 웅이를 지켜주었으면 좋겠어. 그 순해서 물러터진 녀석을 말이야...

2006년 초. 네가 네마리의 아가를 낳았었지. 아이들을 우리가 입양시키려고,
방에 데리고 들어왔을때, 구슬피 울며 냐앙거리던 네가 생각난다. 우주가 유독 너를 따랐었는데.

우주가 떠나가고, 깜둥이쪽이가 작년 여름 사라지고, 꼬미가 몇달전부터 안보이기 시작하고, 짱이가 떠나가고... 이제 네가 가는구나.

네가 사랑하던 아이들을 다시 만나서, 다시 몸을 부비며, 함께 하겠지. 이렇게 각박한 도시에서, 메마른 인간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일이 참 힘든 일이었을꺼야. 이제 편히 쉬기를 바랄께. 고생했어.


뚤레야.
01년부터 시작되었던 너와의 인연, 우리의 인연이 참 소중한 인연이었음을... 기억해줘.
그리고, 잊지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님을,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임을 말이야.

나와 현숙이에게, 길냥이 사랑의 시작을 만들어주었고, 늘 든든한 대모 로서, 우리 곁에 있어주었던 너.
네가 있어, 참 좋았어. 고마워. 다시 태어나도, 우리의 친구로 태어나주기를...

너의 마지막 아들. 준이. 너의 아이 맞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키울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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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월드에 올렸던 사진. 2003년 12월 13일, 4년전의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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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년말~06년초,(깜둥이), 꼬미, 쪽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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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이, 꼬미, 저뒤에 깜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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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깜둥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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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쪽에 깜둥이, 쪽이, 뒤쪽에 꼬미,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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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둥이, 쪽이, 꼬미,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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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둥이, 쪽이, 뚤레, 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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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웅이, 깜둥이, 쪽이, 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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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0일, 뚤레. 꼬미. 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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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7월 23일 21시 23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뭐, 블로그가 거의 고양이판이 되어가는 것 같기는 한데 -_-;;;, 뉴페이스 화검이(이하 '검이')를 소개하는 일을 빼놓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포스팅을 하면서, 화들짝 놀란 것은, 화검이가 들어온게, 6월 14일 새벽이니, 검이가 들어온것도 벌써 한달이 다되어간다는 것. 시간은 빠르구나.

위에서 말한 대로, 때는 6월 14일 새벽이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던 날. 나는 다음날 있을 시험으로 밤샘을 하다가, 와이프님께 1시간만 눈좀 붙일테니, 깨워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잠시잠깐 눈을 붙였다. 얼마간 잔 것일까. 비몽사몽간에 와이프님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는 놀라 잠에서 깨었다. 아직 잠이 덜깨서 정신을 못차려서인지, 눈앞이 뿌옇게 되어있는데, 와이프님의 손에 들려있는, 작은 고양이 한마리를 보게 되었다. 그게 '검이'와의 첫 대면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본 즉, 와이프님이 비오는 날의 창밖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냐옹'거리는 냥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나가봤는데, 비오는 거리에서 자그마한 냥이 하나가 냐옹거리고 있었고, 와이프가 다가가도 피하지도 않고, 오히려 다가왔었다고 한다. 녀석을 안아들었는데도, 큰 반항없이 안기더란다. 비가 와서, 쌀쌀해진 새벽에 그 아이를 그대로 놓고 들어올수 없었기에, 녀석을 안고 들어온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불을 켠후, '검이'를 살펴보는데,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안좋았다. 코에 난 수염은 양쪽모드 라이터 불 같은것으로 태워져 그을려 있었으며, 온몸에 여기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다. 분명 사람에게 학대를 받은 흔적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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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엔 안나타나 있지만, 몸쪽에도 상처가 군데군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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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여기저기에 타박상의 흔적이 있고, 고양이의 트레이드마크인, 멋들어진 수염은 태워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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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발의 발톱이 빠져있다. 주로 이렇게 발톱이 빠지는 일은, 누군가를 공격해서가 아니라, 급하게 도망가느라 어딘가를 뛰어오를때 같이 급박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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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쪽에도 커다란 상처가 있다. 몸에 보이는 얼룩은, 상처에 포비딘을 발라주면서 생긴 자욱.

보통 저렇게 사람에게 학대를 당하고, 위해를 입는 고양이들의 특징은, 성격이 '친화적'인 아이들이다. 사람에게 다가가서 몸을 부비기를 좋아하는 성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통 사람이 터치하는 것을 싫어하고, 애교가 없는 아이들은, 사람이 다가가면 숨거나 도망가고, 사람에게 다가오거나, 안기지를 않으므로, 저런식의 학대를 당하게 될 일은 드물다. '검이'처럼 라이터같은 것으로 수염이 태워질수 있는 상황은, 검이가 원래 성격이 사람에게 친화적이었기때문에 발생한다. 동물보호단체에, 구조된 냥이들을 보아도, 사람에게 심하게 맞아서 크게 다친 아이들은, 대부분 성격이 친화적으로 분류되는 아이들이 많다.

'검이'를 데리고 와서, 상처를 치료해주고, 밥을 주면서, 검이가 안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문제는 몸에 생긴 상처만이 아니었다. 마음의 상처도 큰 문제였다.

사람도 큰 사고를 당하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장애증상을 보인다고 하는데,(외상후 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라고 하던가?) 검이가 그런증상을 보였다. 사람곁에 잘 안겨있다가도, 큰소리가 나면 펄쩍거리며 화들작 놀라거나, 갑작스레 공격적 성향을 보였다. 특히나 쓰다듬으려, 머리에 손을 가져가면, 자신을 때리려는 줄알고, 놀라면서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거기다가, 갑작스레 후다닥 거리면서 '발작'을 하면서, 나중에는 간질증상처럼 몸이 경직되면서, 나중에는 입에 거품을 물기도 했다. 그렇게 발작이 끝난후에는, 몸을 못가눌정도로, 힘겨워하며, 곧 숨쉬기를 멈추기라도 할듯, 힘겹게 몸으로 겨우 숨을 쉬어내고 있는 모습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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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의 어린 영혼이, 힘겨워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 애처로웠다. 숨쉬기조차 버거운듯,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검이'를 바라보는 일은, 참 가슴아픈 시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검이에겐 유독 많은 애정을 쏟았다.
 
사실, 검이를 데려오고나서, 처음에는, 가끔씩 너무나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 녀석, 거기다 간질발작까지 일어나는 이녀석을 계속해서 키울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엔, '사랑'만이 해답이 된다. 몇차례 병원도 다녀왔고, 약도 먹고, 이런저런 치료도 병행했다. 그런 치료와 함께, 사랑과 안락을 주고자 했다. 그리고 보름정도 지나 6월 말이 되면서, 서서히 검이는 회복되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하루에도 몇번씩 일어나던 간질발작과 같은 증상도 없어졌다(병원에선 과흥분상태에서의 간질발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조금씩 상처도 나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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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6월 말에 찍은 사진. 처음데려왔을때보다, 많이 호전된 모습이다. 체라와 함께 널부러져있는 검이.


그리고, 지금 '검이'는 아직도 큰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하긴 하지만, 많이 나아진 모습이다. 고양이의 트레이드 마크인, 수염도 다시 예쁘게 자라나고 있다.이제 행복해 지는 일만 남았구나, 검아.



아래는 6월 말에서, 7월 2일 사이에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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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위에서 자는 녀석을 흔들어 깨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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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 다시고 있는 순간 포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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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미묘'라도 망가질수 밖에 없다는, 하품샷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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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리 유심히 보시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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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와이프님과 버닝하고 있는 '대조영', 책상위에서 졸고 있는 검이... 검이 넌, 홍패인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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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호기심 많은 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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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얼짱 각도로 마무리. ^^


검이('화검이'를 줄여부르는건데, 화검이라는 이름의 이유는...음, 흰색과 검정색이 섞인 젖소냥이여서...-_-;;;)는 이로써, 우리집의 다섯번째 냥이가 되었다. 검이는, 대조영에서, 대조영의 아들 검이와 같은 이름을 가졌으며, 대조영에서 나왔던, 연개소문의 차남 '연남건'과 무척 닮았다. 사람옆에 붙어자는걸 좋아하며, 활발한 성격에, 무척 애교가 많다. 고양이 기르는 사람은 잘 알 말이지만, '골골골 머신' 이다. 이녀석의 본래의 성격을 앞으로도 계속 찾아주고 지켜줄수 있어야 겠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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