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을 모시고 사는 다묘 가정에서 살아가는 집사의 삶. 다묘 가정이라면, 고양이에 대한 포스팅들이 블로그에 넘쳐나기 마련이건만, 이 블로그에서는 2014년 8월 1일에 포스팅한 ‘보내고 싶지 않은 아이’라는 유리에 대한 글을 마지막으로 한동안 고양이에 대한 글쓰기는 완전히 정지해 있었다. 죽음에 지쳐왔다. 그리고 유리는 카운터 펀치 였다. 한방에 다운되어버렸다. 그러나 고양이에 대한 글쓰기를 멈추었다고 해서, 아이들과의 이별이 멈추진 않았다. 비공개 글의 짧은 기록에 잠자고 있는 슬픈 기억들. 언젠간 다시 복원해내야 할 기억들. 


숙이가 아팠다. 반년 넘는 시간을 지리한 싸움을 해왔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던 이마의 상처에서 시작된 병원행. 이마에 생긴 상처를 꿰매고 오자. 하면서 시작된 두 차례의 수술. 검사. 투병. 투병. 투병. 그리고 얼마 전 갑자기 상태가 심하게 기울어버렸다. 그리고 지금 숙이의 몸에 생명의 불꽃이 조금씩 사그라져가고 있다.



어제, 5월 24일 아침 병원에 가기 전 숙이.



어제 병원에 가서 힘겹게 처치를 받고, 오늘… 숙이를 데리고 왔다.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무척이나 고민하다가 내린 결단이었고. 그것은 포기의 의미가 아니라, 숙이에게 더 나은 길을 택해주기 위함이었다. 데리고 와서 숙이를 살펴보면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꼈다. 낯설고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이어지는 치료행위가 이제 더이상 의미가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 하루사이에 상태는 더 나빠져 버렸다. 기적이라는 이름의 실낯같은 희망을 놓을수가 없었던 우리를 용서해주렴. 숙아…


죽음. 죽음. 죽음.


계속되는 죽음들을 마주하면서, 감정의 굳은살이 생겨갔는지. 죽음이라는 게 한낱 명사(名詞)의 존재감으로써 다가오기도 했다. 죽음은 죽음이지. 그런데… 숙이에게 다가온 죽음을 마주하면서 죽음이라는 단어를 다시 가슴에 떠올렸다. 나의 의식을 강하게 감싸던 보호기제의 갑주를 하나하나 벗어, 의식의 기저에 내려놓아 보았다. 아… 죽음이란, 숙이의 생(生)이 만들어낸 거대한 우주의 멸절이고 붕괴. 단절이었다. 도무지 내가 마주할 수 없는 어마 무지한 압박감. 도무지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저 '존재의 부재'라는 현실에 투영된 그림자로써만 인식할 수 있을 뿐.


우리 모두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그저…숙이가 외롭지 않도록 곁을 지켜줘야겠다. 


오늘 저녁, 숙이를 데리고 와서. 언니의 품에 안긴 숙이.



땅딸막한 토실토실한 몸매로 엉덩이 덩실덩실, 짧은 꼬리 살랑살랑 흔들며 우리 집의 깡 좋은 여자 고양이 군기반장이었던 숙아. 9년의 세월 너로 인해 행복했다. 고맙고 사랑한다.   




아주 오래전에 찍은 사진이다. 거의 9년 전 사진.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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