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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5.21 미리 쓰는 유언장


오늘은 2016년 5월 18일. 내일 있을 수술을 위해 입원을 한 상태이다. 수술 자체는 위험한 수술이 아니지만, 전신마취를 동반하는 수술이라 이래저래 싱숭생숭한 마음이 드는 와중에 문득 가상의 유언장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의 유언장이라기보다는 미리 쓰는 유언장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 


주변의 사랑하는 이들에게 마지막 말을 전하지 못하고 갑작스레 떠나가는 준비되지 죽음들을 볼 때마다, 나에게는 그런 죽음이 다가오지 않기를… 아니 그러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마지막 말이라도 남길 수 있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이 글들을 작성한다. 이글의 발행일은 며칠 후인 2016년 5월 21일, 나의 퇴원일로 예정해놓을 생각이다. 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성현이와 태어날 나의 딸에게 남기는 글이 될 것이다. 내일 오전에 바로 수술이기에, 글을 쓰기 위한 시간이 좀 촉박하다. 유난스럽게 방정 떨려고 이러는게 아니라,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게 되는 이 상황들을 내 삶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 돌아볼 기회로 삼아보려 한다. 진짜 유언장이 되지 않기를 빈다, 진심으로.



미리 쓰는 유언장.  김태훈.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 저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시면서 보여주셨던 사랑과 믿음에 감사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최상의 지원과 사랑을 아끼지 않으셨는데, 흔한 말로 인풋대비 아웃풋이 너무 저조한 저였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저에게 예전에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셨죠. ‘내가 태어나서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이 너를 낳은 일이다.’ 라고. 아버지, 어머니 저는 부모님께서 저의 부모님이라는 사실에 늘 안도했고 늘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쫓겨 어디론가 숨고 싶을 때,  언제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던 나의 부모님. 한살 한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부모님께서 연세가 들어가시는 모습을 목도하게 되었지요. 그렇게 강인하고 총기 넘쳤던 엄마가 약해져 가는 모습을 볼 때도 혼자 가슴 아파했고, 언제나 빛 바랜 사진 속의 젊고 강한 아버지 그대로이실 것같은 아빠가 조금씩 늙어가시는 모습을 보면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어요. ‘아…내가 부모님을 지켜드려야 하는데.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 자책하곤 했습니다. 아름드리 큰 나무처럼 늘 저에게 안식의 그늘을 드리워주셨던 나의 부모님. 언제나 받기만 했네요. 조금도 제대로 되돌려 드리지 못했어요.  사랑하는 엄마…아빠… 잘하겠다는 마음만 먹고,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던 이 못난 아들을 언제나 보듬어주셨죠. 감사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식사를 조금만 더 양껏 하세요. 그리고 못한다 하지 마시고, 새로운 것을 자주 접해보세요. 엄마가 얼마나 총기 넘치던 사람이었는지 전 기억하거든요. 아빠, 아빠는 아빠 어깨에 지워진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스트레스에서 좀 벗어나셨으면 해요. 그리고 잠을 좀 푹 주무셔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부모님께 또 이렇게 마지막 부탁하나 드릴게요. 성현이와 태어날 딸아이에게, 저에게 그러하셨듯 많은 인생의 가르침 부탁드려요.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 좋은 가르침 많이 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합니다. 엄마, 아빠의 아들로 태어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 나의 벗, 나의 연인. 2000년 당신을 만났던 그 눈부신 봄날을 아직 기억합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봄날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16년여의 시간들. 연애 그리고 결혼. 몇 마디 글로 그 시간들을 풀어내려니 순간 말문이 막혀버리는 느낌이네요. 뜨겁게 사랑한 만큼 또 많이 다투기도 했던 우리. 당신과 내가 함께 그리는 생의 도화지에 늘 좋은 그림만 그리고자 했는데, 삶이란 게 또 일상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어요. 멋진 모습,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지요. 그대는 내 모습을 비추는 진실의 거울. 그대 앞에서 못난 모습도 참 많이 보였네요. 이렇게 자책을 해보기도 했지만, 또 우리 부부는 친구같이 연인같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재밌게 즐겁게 연애하듯 결혼생활을 해오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더 안정된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있었는데 그것을 완성하지 못한 채 미완의 사랑으로 ‘우리’를 남겨두고 떠나게 되네요. 그대에게도 나와 함께 한 삶의 시간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기를 바래요.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 시간이 짧았고, 인생의 마지막에 쉼표란 없네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찍어진 마침표. 당신을 너무나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더 사랑하고자 했고, 더 많이 사랑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말을 전하는데 아쉬움이 가득한 걸 보니, 좀 더 나은 내가 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가 드네요. 이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너무나 달라진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게 되네요. 똘똘 뭉쳐져 작아져 버린 마음에 너무나도 바보 같은 나였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대. 그대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싶었는데 나에겐 그러한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네요. 너무 갑작스러운 이별에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아지지만, 정리가 되지 않고 머릿속을 맴도네요. 그대를 정말로 사랑했고 또 지금 이 순간도 사랑하며 앞으로도 사랑하고 싶습니다. 그대에게 내 사랑이 기억되기를. 너무 많이 슬퍼하지 말고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기를 빌어요. 다음 세상에서 다시한번 그대와 연인이 될 수 있다면 좀더 키가 큰 사랑을 주고 싶네요. 사랑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부탁할게요. 내가 가고 나면 부모님께서는, 단 하나 있는 자식을 잃으신 거에요. 부모님 외로우시지 않도록, 자기와 성현이 그리고 태어날 딸아이가 내 빈자리를 조금이라도 채워주기를 부탁해볼게요. 진심으로 부탁해요.


나의 아들 성현아. 너와 함께 한 29개월여의 시간들. 정말 최고의 시간이었다. 나도 몰랐어. 내가 이렇게 나의 아이를 사랑하게 될지. 네가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순간, 나는 너에게로 가 최고의 아빠가 되고자 했다. 부모가 되어 자신을 바라보며 웃는 아이를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내게 가르쳐준 나의 아들. 너와 함께 하고픈 일들이 아직 너무나 많이 남아있는데, 정말정말 하고 싶은게 많았는데 너무나도 아쉽구나. 기나긴 삶을 함께해가며, 너와 이야기 나누며 여러 가지 생각들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는데, 이렇게 몇 마디 말로 너에게 나의 바람들을 전해야 한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통하기만 하다. 아빠가 좋아했던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에게 들었던 말을 너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흔히들, 우리 인간이 태어나면서 어떠한 거창한 소명이나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런 거 없어, 없다고. 그냥 태어난 게 목적이야. 태어난 거로 된 거야. 이미 넌 목적을 다한거고. 목적을 다 했는데 또 무슨 성취고 소명이 필요하겠니. 너에게 주어진 인생은 그냥 보너스게임인거야. 이제 너는 그저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남은 생을 즐겁고 편안하게 즐기면 되는 거야.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면 더 좋고 말이야. 성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아빠의 바램이야. 그리고 또하나, 아빠는 성현이가 자기 고집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고집이 성현이를 지켜줄 '자부심'이 되도록 잘 컨트롤하며 키워주고 싶었던 아빠의 소망을 기억해주렴. 늘 네 자신의 선택을 믿어봐. 모든 영역에서 네 자신을 믿고 그 자신감 위에서 살아가기를 바래. 그리고 더 나아가, 검증될 수 없는 믿음을 택하기보다는 네 자신과 네 자신이 가진 의심과 회의의 힘 - 이성을 믿기를 바래. 설령 그 길이 미지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으로 가득할지라도 말이야.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너무 아쉽다. 좀 더 자란 너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성현아. 사랑한다. 그리고 아빠가 늘 성현이 곁에서 지켜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


엄마 뱃속에 있는 나의 딸에게. 아버지들은 딸이 생기면 딸바보가 된다고 해. 딸이 생긴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한 지금인데, 이렇게 뜻밖의 이별이라니. 네가 태어나면 얼마나 새로운 경이로움을 맛보게 될까? 늘 궁금하기만 했어. 그런데 딸바보가 되어보기는 커녕, 아빠가 너를 안아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떠나가는 것에 아쉬움보다 너무나 큰 미안함이 앞선다. 너에게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정말 미안하기만 하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 그리고 네 오빠 성현이가 너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빌 수밖에 없는 이 무기력감을 어떻게 떨쳐버릴 수 있을까. 너를 한번 쓰다듬어보지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 한번 건네보지 못한 이 아빠를 용서해주렴. 너에게도 최고의 아빠가 되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과 계획들을 어지러이 세워보곤 했는데 그것이 이젠 아빠의 몫이 아니구나. 미안하다. 늘 당당하고 건강하게 커다오. 그리고 이런 말 할 자격이 없는 것만 같지만, 사랑한다. 나의 딸아. 다음 세상에서 아빠에게 또 한 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 딸의 아버지가 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땐 네 곁을 오래오래 지키고 싶다. 미안하다. 네가 정말 보고 싶었는데. 너에게 정말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는데. 너무나도 안타깝고 원통하구나. 미안하다. 사랑한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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