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5.18 광주로부터 해방으로, 민중진군 28년 5월 18일
  2. 2005.12.19 [♬] 우리들의 죽음

-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8년 7월 11일 03시 37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5월. 그리고 5월의 광주. 더이상 대학의 5월에선, 5.18을 느낄 수 없다. 몇몇 학생운동 활동가 후배들의, 힘겨운 몸짓은 보이지만, 그것도 더이상, 학생회 기반의 대중 정치 활동으로서 풀어내어 지고 있지는 못한 듯 보인다. 07년에 80년의 광주를 되새기는 건, 참 버거운 몸짓이었던 걸까…. 정말 80년 5월의 광주는 이제 우리의 머릿속에 '박제'화 된 기억일 뿐인 것일까.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이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광주를 아픔으로써, 치열함으로써, 기억한다는 것은 이제 촌스러운 짓이 된 것일까.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이제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학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토익과 토플 점수,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취업준비. 그렇다면 나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 걸까.

 

민중진군 18년 5월 18일. 그로부터 10년이 흘렀고,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당신에게 있어서 광주는 무엇이었는가.'

 

 

 

80년 5월의 빛고을 광주.

그날을 기억하려는 자들과 그날에 대한 헛된 망발을 일삼는 자들의 공존.

그리고 대한민국 2007년.

  

정태춘씨의 노래 가사처럼.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 5.18 - 정태춘 & 박은옥 ]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날에 아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위에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동 언덕배기에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너희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앞에 그 훈장을 묻기전 까지 

 

 

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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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8년 7월 11일 01시 30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이 노래를 언제 처음 접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이노래를 처음 들었을때, 내눈엔 눈물이 흘렀던거 같다. 추석때, 영월 할머니집으로 향하던 삼촌과의 동행길. 그 차안에서, 이노래를 틀었을때, 삼촌이 나에게 말씀하셨었다. 삼촌께서도 이노래를 처음듣고 눈물을 흘리셨었다고. 대학2학년 때였나... 동강 강변에 포장마차에서, 삼촌에게 학생운동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을때, 그 어린 조카에게 '20년을 기다렸다'고 말씀하시며, 소줏잔을 기울이셨던 삼촌은, 지금도 나에겐 참 멋진 분이시다.(난 78년생. 삼촌은 79학번)

 

대학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철거촌에서의 경험이었다. 처음 방패를든 전경(실제로는 의경이겠지)들에게 쫓겨본것도 대학 1학년 3월달, 동대문구에 있었던 철거촌이었으며, 세상이 내가 생각하던대로 아름답지만않다는 것을 깨달았던것도 철거촌이었다. 용역깡패들에 의해서, 70넘게 나이드신 할아버님이 온몸의 뼈가 수십군데 부러지시고, 27살의 어떤 형님은 깡패들에게 잡혀서, 깡패들이 만들었던 사제 화염방사기같은 물건에 의해서, 온몸에 중증화상을 입으시고 온몸이 형체를 알아볼수도 없을만큼 화상을 입으셨던 그때. 온갖 연예인의 시시콜콜한 얘기들도 뉴스에서 까지 주절거리는 언론이, 그 철거촌에서의 치열한 싸움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는것을 보면서, 눈으로, 몸으로... 이 세상이 반드시 정의롭지는 않을수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깨달음들을 배울수 있었다,아주 강렬한 느낌으로. 마치 79년 19살 까까머리의 삼촌이 리영희 교수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세상이 꺼꾸로 뒤짚히는 느낌이었다는 것처럼.

 

이 노래의 배경이 되었던, 그 아이들의 죽음... 그 죽음에 대한 다큐를 대학에서 '여성학' 수업을 들으면서 다큐로 본적이 있었다. 그때 정태춘씨는 이노래를 통기타 하나를 들고, 아이들의 장례식장에서 특유의 구슬픈 목소리로 불렀었던걸로 기억한다.

 

이 노래를 들으며, 눈물흘릴수 있었던, 나를 잃고 싶지 않다. 현실속에 무감각해지며, 그져 당연스러운 불가피한 세상사로... 이런일들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려면,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하겠지. 내가 보수적인 입장에서 진보적인 눈빛을 가지는데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했지만, 다시 보수적인 눈빛으로 회귀하는데는 그 어떤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단지 '무관심', '내앞가름하기에도 정신없는 삶을 살고 있다'라는 몇마디 변명이면 충분하니까...




[ 우리들의 죽음 - 정태춘 ]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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