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고양이들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1. 이름 : 체라

2. 태어난 날 : 2006년 5월 경으로 추정

3. 체라는 2006년 내가 밥을 주던 길냥이가 낳은 아이였다. 당시 무리에서 밀려서 제대로 엄마 젖을 먹지 못해서 거의 아사 상태에 이른 녀석을 구조해와서 초유를 먹이며 키워낸 게 바로 체라였다. 2007년 우리 부부의 신혼집에서 제일 막내였던 체라는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우리 집 고양이들 중에서 서열 1순위의 대모 고양이가 되었다. 이러한 체라를 바라보면, 말 그대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래 예전에 작성했던 글들의 링크를 살짝 올려놓아 본다.  우리 집의 1세대 고양이들이라고 할 수 있는 옹이, 똘레, 앙팡이... 그리운 얼굴들도 보인다. 

 

파란만장 체라

-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7월 23일 16시 37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함께 살아가는 네마리의 냥이중 유일한 홍일점 체라. 그이름도 거룩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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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체라 ( + 똘레)

-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7월 23일 16시 52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쪼만한 체라, 홍일점 체라. 앙탈쟁이 체라. 성깔쟁이 체라. 잠꾸러기 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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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아주 오랜만에 하드디스크 안에 폴더 안에 고이 잠자고 있던 예전 사진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2006년 7월의 체라 사진들과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이제는 우다다도 잘 안 하시는 묘르신들의 존안만 뵙다가, 아깽이 시절의 체라가 우다다하면서 팔짝거리고 뛰어다니는 영상들과 15년 전 아깽이 시절 앳된 모습의 체라를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세월이 많이 흘렀구나... 아! 그러고 보니, 저때는 나도 20대였네?!'

앙팡이, 체라, 옹이



쫑긋했던 체라의 왼쪽 귀는 이개혈종 수술을 여러 차례 하면서, 스코티시폴드의 귀처럼 접혀버렸다. 체라의 귀는 여러 차례 수술을 하면서 체라가 힘든 시간을 이겨낸 증표이다. 체라는 현재 신부전으로 투병 중이다. 매일 하루에 두 번 피하 수액 주사를 맞는다. 2017년 12월에 신부전 진단을 받았고, 그다음부터 피하 수액을 놓았었는데, 가끔 빼먹기도 하고 들쭉날쭉 주사를 놓았었다. 그러다가 작년 11월. 체라가 아주 위험한 상황까지 겪었었다. 다행히도 체라가 회복해주었고, 그 이후로는 빠뜨리지 않고 매일 피하 수액을 주사하고 있다. 우리와 함께 했던 냥이들 중, 최장수 기록을 매일매일 경신해가고 있는 체라.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기네스북 한번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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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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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 멀어져 간다.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간다. 그렇게 하루, 하루,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진 시간의 지층을 우리는 '세월'이라 칭한다.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 그 거센 물결 속에 서 있을 때는 세월의 위력을 잘 체감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그러다, 어느 날 그 연속되는 시간의 흐름에 잠시 무중력상태의 진공과도 같은 균열이 생길 때가 있다. 그때 문득 고개를 들어, 켜켜이 쌓인 그 시간의 퇴적층의 단면을 바라보게 되는 찰나와 같은 순간, 우리는 세월이라는 존재의 위력을 체감한다.


나는 어린 시절의 나 그대로인데, 변한 것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어느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바라볼 때, 거울 속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매일 보던 내 얼굴을 타자화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그 순간. 나는 세월의 민낯과 마주한다.



나이를 먹어간다는것.



거울 속에 앳된 얼굴의 아이가 있다. 마냥 세상이 신기하기만 한 그 아이는 연신 웃는 얼굴이다. 그러다 그 아이의 얼굴에 여드름이 생기기 시작하고, 호기롭게 담배를 문 대학생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울긋불긋 벌게진 청년의 얼굴도 보인다. 그래도 나에게는 늘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렇게 수많은 내가 오버랩되면서, 어느 순간 거울 속에 수염 까칠까칠, 웃으면 누가에 잔주름도 보이는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서 있다. 아뿔싸. 저게 나구나.


그런데,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슬픈 건,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변화하는 것 때문은 아니다. 사실 거울 속의 내 얼굴은, 대개 늘 같아 보이기 마련이거든. 나이를 먹어간다는 사실조차, 본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 보면 체감하지 못할 때가 많다. 시공간의 균열이 생기는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나에게 있어,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이 선사해주는 진정한 비극은,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이 늙어가고, 변해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게 참 슬픈 일이더라. '네 나이 먹는 것은 생각 안 하냐?' 하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원래 '제 나이 먹는 것'은 잘 생각 못 하기 마련이거든.


젊고 강하고 매력적이던 아빠, 엄마는 자글자글 주름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버렸고, 젊음의 에너지 가득하던 청년이고 아가씨였던 '나의 어른들'은 머리 희끗희끗한 장년의 나이가 되었다. 그 시절 나의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나시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장례식, 입관하던 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느낀 것은, '죽음'이라는 추상적 개념의 실체화된 모습에 대한 낯섦의 감정이기도 했지만, 내가 알던 나의 세상, 그 세계의 한 축을 짊어져 오던 친숙한 존재가, 영원히 퇴장한다는 사실에 대한 서글픔과 허망함이었다.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 속으로 떠밀려갈 것이고, 그러다 보면 나 역시 그렇게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가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까지.

그 시절 '나의 어른들'에게 거금 1000원을 받고 300원을 쓴 어린 꼬마아이. 거스름돈으로 남은 그 크나큰 700원을 어찌할 바를 몰라, 남의 집 대문  앞 계단 위에 일곱 개의 동전을 고스란히 쌓아놓고 집으로 돌아오던 유치원생 아이가, 마흔 살 넘은 아저씨가 되었으니, 그만큼의 세월만큼 '나의 어른들'도 저만치 앞으로 걸어 나가신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할게다. 그렇지만 그 퇴적된 시간의 단면을 체감하는 그 순간들은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나의 세월이 흘러가고, 내가 나이를 먹어감과 동시에, '나의 어른들'도 나이를 먹고, 늙고 약해져만 간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견뎌낼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그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문득문득 인식될 때마다, 애잔하고 슬프다. 생로병사. 우리네 삶에 주어진 피할 수 없는 그 과정들을, 글자로만 이해하고 머리로만 이해하다가,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으로 체감하게 되는 것. 나에게 있어 세월이란, 그런 것 같다.

가슴 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는 슬픈 상념들을 일단 끄적여본다. 
그냥 끄적여보고 싶었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생각이다. 








Posted by H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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