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8월 12일 00시 50분에 옮겨 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검이를 보내고, 지난주 내내, 많이 힘들었습니다. 죽음 그자체가 가져오는 커다란 벽때문이기도 했고, 그때 그순간에 조금만 잘 대처했다면, 검이가 살아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또 더 잘해줄수 있었는데, 검이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려서, 그 너무나도 깊은 후회가 마음을 후벼파더군요. '있을때, 잘해라~'라는 말은, 비단 남녀간의 문제에 한정되는게 아닌가봅니다.

삶과 죽음, 왜 그토록 철학자들이, 그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많은 사색과 고민을 했어야 했는지. 또 많은 종교들이 왜 저마다의 '내세론'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지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무신론자입니다. 절대자로서의 '신'이라는 존재까지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특정한 '종파'를 따르고 싶은 생각은 없는 사람이지요. 예수를 신으로 믿는 사람도 있을테고,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의 말들을 경전 처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탐크루즈 처럼, '과학'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을테구요. 아니면, 어떤 신부의 '고해'처럼, '인류진화의 역사'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껍니다. 각자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지요.

제가 검이를 추억하는 글을 보면서, '과학적 이성'을 지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이지요. 특정한 문화 혹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자들과의 논쟁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전 훗날, 저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더라도, 늘 제곁에서 저를 지켜주실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설령, 나 혼자만의 '착각'속의 가정이던간에,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함께 해왔던 세월속에서의 부모님의 따뜻함을 잊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분명 저에게 있어 엄연한 실존이자, 사실일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함께 해왔던 시간들에 대한 '사랑의 기억'일 테니까요.

검이를 대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이것도 엄연히 '구별짓기'라는 속성을 지닌, 문화의 문제일수도 있을꺼에요. 인간 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사랑했던 문화속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공유할수 있는 감정일껍니다. 그런것이겠지요. 검이는, 저에게 분명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9월 6일 새벽, 검이가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고나서, 몇시간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어제그저께만해도, 제가 기타칠때면, 꼭 자기가 관객이라도 되는것처럼, 옆에 의자에 앉아서 저를 응시하던 따뜻한 검이가 있었으니까요. 아니,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병원에서는 제대로 먹지도, 눈을 뜨지도, 일어나서 걷지도 못하던 아이가, 그래도 자기 집에 왔다고, 일어나서 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또 캔 하나를 다 먹어치우면,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검이였으니까요.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은, 체온을 앗아가버리고, 검이는 많이 차가워졌더라구요.

검이를 땅에 묻고 돌아올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연락을 했습니다. 9월 6일 오후 2시 30분쯤에 연락을 했었는데, 1시간여 후에, 차가 저희 동네 입구까지 오더군요. 나머지 6마리의 냥이들에게, 검이와 인사를 시키고, 검이를 처음 구조한 그장소에 잠시 들렸다가, 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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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장례업체로 이동하는중, 차안에서.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검이를 눈에 가슴에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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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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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아, 아픈 몸에서 벗어던지고, 우리와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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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의 엔젤스톤의 모습













검이를 다시 데리고 돌아오면서, 홍대에서 버스를 내려서, 늘 검이가 가던, 동교동의 동물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검이가 발작하는 것때문에, 밤새 간호를 해주시면서, 아침에 퇴근하시곤 하셨거든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늘 검이가 좋아하던 장소에, 검이를 잠시 쉬게 했습니다. 늘 캣타워 아래에가서 앉아 있었거든요. 유독 검이가 좋아하던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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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검이











이렇게 검이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저희 부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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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를 위해 마련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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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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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ill Always Love You








































































그러다가, 문득 제가 기타칠때마다, 곁에와서 그 기타소리를 듣고 있던 화검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제 기타의 이름을 '화검'이라 지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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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욱더 소중해진 나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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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 GUM
































기타도 못치는게, 기타 조금 알았다고 이런저런 '꿈의 기타'들에 눈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제 이 기타는 평생 버릴수 없는 가장 소중한 기타가 되어버렸습니다. 열심히 기타 연습해서, 내년 9월 6일에는, 검이에게 '제대로된' 노래를 불러주려고 합니다.

지금은, 아직 손끝에서도, 검이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지만, 시간이 흐르고나면, 그 아픔의 자리를, 부드러운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채워주겠지요. End가 아닌 And를 위하여, 늘 검이와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또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제2, 제3의 검이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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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4일 새벽, 우리 곁으로 다가왔던 검이는,
2007년 9월 6일 새벽,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비가 오던 어느날, 우리에게 다가왔었던 검이는,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 새벽, 떠나가네요.

7,8월 방학동안 찍어놓은 사진들, 올리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가버렸네요.
귀차니즘을 핑계로 미루고 미루고 있었는데...

어린시절의 학대 때문인지, 아니면 선천적인 질병때문인지, 잘 알수는 없습니다.
처음에 구조했을때, 간질 발작 증세가 있었는데, 서서히 호전되어갔었고,
한동안은 발작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안심하고 있었고, 이 아이가 우리곁에 있어줄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검이가, 2007년 9월 4일 아침부터 , 잦은 발작과 경련을 일으켜서,
병원에 입원시켰었습니다. 그 전날까지만 해도, 다른 냥이들과 잘 뛰어놀던 녀석이었는데 말이지요.

2007년 9월 5일 저녁 즈음, 검이의 상태가 안좋다고, 병원에서도 특별히 할수 있는 처치가 없다는
말을 듣고 집에 데리고 왔습니다. 처음에 데리고 왔을때는, 그래도 자기 집이라는걸 아는지,
병원에서는 걷지도 못했는데, 엉금엉금기어서, 자신이 늘 있던 장소로 가기도 하고,
캔사료도 잘 먹고해서, 저희는 기적을 꿈꾸었습니다. 검이가 다시 일어나 뛰노는 모습을요.

그러나, 조금전, 2007년 9월 6일 새벽. 검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간질발작에, 괴로워하다가, 마지막 가뿐숨을 몰아쉬며, 떠나갔습니다.

검이... 화검이...

7년 만에 잡은 기타, 그 투박한 소리를 소음처럼 뚱땅거려도,
늘 그 곁에서 나를 격려라도 해주는듯, 내 투박한 기타소리를 들어주던 검이.
침대에서 자고 있으면, 어느샌가 침대위로 올라와, 슬쩍 나의 종아리에 털복숭이 몸을 기대던 검이.
늘 책상에 앉으면, 책상에 와서, 은근슬쩍 머리를 기대던 검이.
그 따스한 체온의 검이는 이제 더이상 볼수도, 느낄수도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죽음, 그 무시무시한 단절감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다시는 되돌릴수 없다는것. 다시는 검이의 야옹소리를 들을수 없고,
다시는 그 모습을 볼수 없다는것. 그 삶과의 단절감앞에, 슬퍼하며...
이제 검이를 보내야 겠네요.

더 잘해줄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난 늘 네녀석이 함께 해줄 꺼라 생각했어. 그 안일함이 참 후회스럽다.
너에게 잘해줄수 있는 시간도 앞으로 많이 남아있을꺼라 생각했고.
뭐가 그리 급해서, 이리 빨리 떠나가니... 아직 태어난지, 반년도 안된 녀석이.
가슴이 아프다. 다음 세상에 태어날때는, 행복하고 안락한 삶으로 태어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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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겨운 숨을 몰아쉬던 검이의 모습... 이제 아픔없는 곳에서 편히 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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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0년 8월 17일 23시 01분에 옮겨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계획에 없었던 포스팅... 그러나 이렇게라도, 마음속에 있는것을 풀어내보고 싶었습니다.

여자친구님집에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있습니다. 찾아오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상주하고 있지요. 3대의 아이들이 여자친구님집에 찾아와서, 사료를 먹고 안식을 취합니다. '대모' - '제1대냥이들'(♂- 1마리, ♀- 1마리) - '제2대냥이들'(제1대냥이들중 여아가 낳은 자식들 ♂- 1마리, ♀- 1마리)가 찾아옵니다. 약 2개월전, '대모'인 냥이가 노익장을 과시하사, 아이들을 총 4마리를 출산했습니다. 남아2, 여아2 이렇게요.

그러나 냥이들이 살아가기에, 이 서울이라는 멋대가리 없는 콘트리트 도시는 참으로 척박한 공간들입니다. 훔친것도 없는데, 잘못한것도 없는데, '도둑고양이'라고, '재수없다.'고 쫓겨다니기 일수이지요. 그래서, 그 아가들이 어느정도 젖을 뗀다음에 입양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저희가 다 거둘수 없으니, 좋은 반려인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우선 그 아가들을 한번 소개해드릴께요.(사실 이 포스팅은 올해 11월의 그날이 지나간후, 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반드시 해야만 하게 되어버렸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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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이 섞인 고등어 여아입니다. 좋은 남자분께 입양되어,'라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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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모색이, 매력적인 고등어 여아입니다. 좋은 여자분께 입양되어 '샛별'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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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철학자라고 불렀던 남아입니다. 역시 좋은 여자분께 입양되어 '까뮈'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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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시도 남아 아가. 우리가 이 아이를 '우주'라 이름붙였었습니다. 부부에게 입양되었으나...




4월 11일, 샛별이와 까뮈가 좋은 반려인을 만나 떠났습니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어 마음이 아팠지만, 이 아가들이 굶주리고, 천대받는 삶이 아닌, 반려묘로서 예쁜 삶을 살아가게 될꺼라 생각하니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남은 라라와 우주. 특히 턱시도냥이인 우주는 아파서, 병원에 데리고가서, 기생충검사를 받고, 약먹이고 가장 우리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아가였습니다. 사람품에 안겨자는걸 그리도 좋아했고, 애교가 많은 아이였지요. 4월 15일 라라와 우주도 반려인을 만나 입양이 되었습니다. 역시나 가슴이 아팠지만, 그 아이들앞에 펼쳐질 행복한 삶을 생각하며, 허전한 저희의 마음을 위로했었습니다.

지금 12시가 넘었으므로, 어제그저께네요. 어제 그저께 4월 20일 아침에, 여자친구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왠지 '우주'가 걱정된다고. '우주'가 꿈에 나왔는데,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그래서 저는 괜한 걱정하지 말라며, 여자친구에게 핀잔을 줬었습니다. 사실 저도 그전에 입양보낼때부터, 왠지 마음이 이상했기에, 내심불안했으나 저까지 불안한 기색을 보이면 여자친구님이 더욱더 불안해할까봐 참았습니다.

오후 2-3시쯤됬나? 울먹이는 여자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우주'가 죽었다고... 자다가 입양해간 부부의 남편분한테 깔려서 그렇게 죽었다고... 전화를 받았다면서, 울고 있었습니다. '말도 안돼'를 되내이면서, 입양해가신 부부의 여자분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분도 무척 슬퍼하시더군요. 많이 고민하다가, 그 아이를 이쪽으로 데려와서 묻어주고 싶다고. 저희가 보내주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이미 아침에 아이를 묻었다고, 꼭 그러셔야 하겠냐고 되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잠시 전화를 끊고 고민하다가, 안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그분들이 아가를 묻은 장소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상왕십리역 근처 무학초등학교로 혼자 찾아갔습니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맨채. 우여곡절끝에 초등학교 뒷편 언덕기슭에서 아이가 묻혀있는 곳을 찾았지요. 아이는 깊이 묻혀있지도 않았고, 장갑낀손으로 흙을 한두번 쓸어내리니까, 아이가 들어있는 파란색 아디다스 상자가 나타나더군요. 그리고 상자를 열고선 저쪽 편에서 운동하시고 계시는 아주머니가 계신데도, 나이 29먹은 남자가 창피하게도 엉엉 울어버렸습니다. 입양보내려고 홍대입구역에 여자친구님과 나가있을때, 여자친구님 품에서는 정말 평안한게 자고 있던아이가, 입양받으실분께 넘겨주니 그렇게도 야옹거리면서 심하게 울었는데... 그 아이가, 이렇게 싸늘하게 식어서 굳어있는 모습을 보니.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구요. 그 아이는 등을 목과 등을 쓰다듬어주면 '골골골' 거리면서 제 품에안겨 자곤했던 녀석이었는데... 장갑을 벗고, 차가워진 그 아이의 몸을 어루만져주고, 등을 쓰다듬어주어도, 더이상 그 아가는 '골골골'거리지 않았습니다. 아가눈에는 정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고,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려있더군요. 아가야...많이 힘들었구나...혼자 이 춥고 낯선곳에 남겨져서, 많이 무서웠지...

그 아이를 수습해서, 미리 가지고간 상자에 고이 넣고, 가방에 넣고 가방을 옆으로 뉘여서 들고 왔습니다. 등에 매고 오면, 아가가 누워있지 못하고 서있는 상태로 불편할테니까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저희집으로 돌아오면서도, 혼자 지하철에서 모자 깊숙히 눌러쓰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5일전, 아가가 그렇게 낯설어하며, 자기를 다른사람에게 보낸 형과 누나를 원망하며, 엄마의 익숙한 체취가 묻어 있는 곳을 그리며 울면서 떠났을 이 길을... 이렇게 차갑게 식어서 내 가방안에 상자에 누워서 돌아오게 될줄이야... 바보같이 고양이가 자존심도 없이 상자안에 넣어놨는데도, 야옹야옹거리지도 않고, 조용히 있는걸 타박하면서, 바보같다고 타박하면서. 미안하다고 되내였습니다. 내가 편히 자고 있었던 새벽... 너는 육중한 남자의 몸에 깔려 숨이 막혀 힘들어하면서, 가슴아파하면서 죽어갔겠구나... 많이 힘들었지? 미안해... 형이 정말 미안하다. 너는 왠지 기르고 싶었었어. 왠지 우리가 기르고 싶었었는데...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그렇게 우주랑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내내 울었습니다. 다른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길래 지하철과 지하철이 연결된 칸으로 가서 혼자 일렁이는 그 연결부위에 서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게 아가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 아가가 떠났던 그길 그대로 따라오면서, 아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이동장안에서 주변의 시끄러운 차소리에, 낯선 환경에 놀라하며 야옹거리던 우주의 놀란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듯 했습니다. 그렇게 홍대입구역을지나 동네로 접어드니, 하늘에서 바람이 불면서, 빗방울이 뿌리더군요. 그래... 너도 고향에 돌아온걸 느끼는구나...

여자친구집에 데리고 갔습니다. 여자친구가 충격받을까봐 보여주지 않았었는데, 여자친구가 마지막으로 보내기전에 얼어있는 몸을 녹여주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5일전에 뛰놀던 방으로 그 아이는 다시 돌아왔습니다. 차갑게 식은 몸을 여자친구가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리면서, 제발 살아나라고... 너 이렇게 보낼수 없다고 흐느끼며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 품에 안겨 자던 그녀석. 하필이면 혼자 유독 잔병치례를 해서, 동교동에 있는 동물병원으로 그녀석을 품에 안고 가면서 핀잔을 줬었는데... 지금도 눈앞에는 라라와 함께 우다다 하던 그녀석의 모습이 선한데... 지금도 컴퓨터에는, 그녀석이 뛰노는모습을 찍은 동영상들이 그대로있는데. 이렇게 차가워진 녀석을 바라보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차갑게 식었던 몸이, 따뜻하게 다시 녹았고, 왠지 눈을 뜰것만같은 기적을 바랬지만, 역시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를 몇시간... 마지막으로 우주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아가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때는 새벽2시.

찾아 헤매이고 헤매이다가, 은행나무옆 햇볕잘드는 양지바른곳을 찾았습니다. 공원같은 곳이었지요. 몇시간동안 정성들여, 아주 깊이 땅을 파고, 아가가 살아있을때 들으면 사르르 잠들었었다는 노래를 핸드폰으로 조용히 틀어줬습니다. 그리고 그 이불처럼 안개꽃을 덮어주고,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흙을 한삽한삽 덮을때 마다, 마음이 정말 아프더라구요.

낯선 한양대근처 상왕십리 초등학교의 후미진 언덕기슭에 묻어졌던 아이가, 여자친구의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자기를 데리고가 달라고 불렀었나봅니다. 결국 우주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구요.

그렇게 우주를 묻어주고 와서 잠을 잤는데, 여자친구님의 꿈에 우주가 나타났답니다. 정말 예쁜 모습으로요. 아마 좋은곳으로 떠났을꺼라 믿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데리고 있었고, 아프기까지 해서, 약먹이고 걱정을 많이 했던 아이라서, 유독 정이많이 들었던 우주였기에, 더 눈에 밟히네요. 그래도, 아가를 수습해서 정말 좋은 자리에 묻어주고 명복을 빌어주고 나니, 한결 마음은 가벼워졌습니다. 여전히 슬픔의 무게는 무겁지만 말입니다. 만약 그 아이를 데리고 오지 않고, 그 낯선 곳에 그대로 방치했다면... 하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하네요.

우주야... 다음세상, 꼭 아픔없는 곳에서 태어나서, 행복하게 웃을수 있기를 바랄께... 아침마다, 네가 묻혀있는 은행나무근처로, 현숙이와 너를 보러가기로 했어. 이제 너도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 모두 잊고... 편히 쉬렴... 넌 정말로 사랑스러운 고양이였어, 우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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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5일 사진찍던날... 유난히도 울어서, 예쁜사진을 찍기 힘들었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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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들과 함께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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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방안에서 지내면서 정말 보내기싫을정도로 매력적인 냥이였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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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벅꾸벅 졸고있는 우주. 정말 예쁘고 애교많은 턱시도 냥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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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에 안으면, 어느새 얼굴을 팔에 기대고 잠들곤 했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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