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5.27 숙이를 보내고.
  2. 2010.05.25 똘레를 보내주고... 4
  3. 2007.09.10 Now And Forever, We Will Be Your Friend.


아무리 생각해도 갑작스러운 이별이다. 


내 감정이 한 박자 늦게 켜지는 형광등마냥 굼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한 방 세게 얻어 맞았을 때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조금 화끈거릴 뿐 멍하게 통증도 못 느끼다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통각이 나의 의식을 잡아끌며 욱신욱신한 통증을 느끼게 되듯이. 죽음을 대할 때도 그러하다. 죽음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의 이별이란 언제나 갑작스럽게 마련이고, 그 갑작스러움 앞에 멍해진 채 슬픔의 감정이 나를 적셔오는 것을 느끼다가 시간이 흐르고 나면, 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는 그 존재의 부재를 절감하면서 가슴이 칼로 베인 듯 애려 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기억들.  부질없는 후회들. 파도처럼 격정적으로 몰아치는 슬픔보다 더 깊은, 밀물 같은 슬픔이다.


2016년 5월 26일 새벽 2시 7분경. 숙이가 떠나갔다. 그로부터 12시간가량이 흐른 후 숙이를 병으로 얼룩진 아픈 몸에서 해방시켜주기 위한 길을 다녀왔다.  숙이의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았기에, 더는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던 길, 그러나 앞으로도 또 가야 할 그 길.


늘 병원에 갈때, 숙이야…숙이 안 아프게 해주려고 가는거야. 다시 돌아오자. 꼭 다시 돌아오자. 를 되내였었다.


숙아. 아픈 몸에서 벗어나서 훨훨 날아가자. 정말 힘들었지? 꿈에라도 나타나 언니의 눈물을 닦아주렴.





자그마치 9년의 세월이다. 고개를 들어 거실을 볼 때마다, 고양이 방을 볼 때마다. 숙이가 예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나의 시각과 나의 기억에는 여전히 숙이가 우리 집 어딘가에 앉아있는 모습의 잔상들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리라. 그게 분명 나에게는 더 익숙한 모습이니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숙이의 부재가 익숙해지는 순간도 오겠지. 그러나 지금은 계속해서 숙이와 함께 했던 시간의 추억들을 더듬어보려 한다. 


숙이의 투병 기간이 짧지는 않았지만, 다행히도 내 기억의 영사기는 숙이의 아프기 전 모습을 내 눈앞에 환영처럼 뿌려준다. 너무나도 토실토실 예쁜 아이였다. 반년 넘게 카라를 쓰고 있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숙아… 이제 카라 벗고, 마음껏 뛰놀며 그루밍도 하고 있는 거지? 곁에 있을 때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늘 곁에 있어 줄 것만 같았어. 이렇게 갑작스런 이별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  보고 싶다. 숙아. 너의 목소리. 묵직한 존재감. 모든 게 다 그리워.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네. 숙아... 어제도 말했었지만,  우리 다시 만나자. 어떤 식으로든, 어떤 인연으로든 꼭 다시 만나자. 










2007년 9월 경의 숙이. 숙이를 구출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던 때 였다.


잘 때면 사람처럼 누워 자면서, 웃음 짓는 듯한 눈매가 너무나도 예쁜 숙이였다.


컴퓨터의 사진들을 넘겨보면서, 9년 전으로 돌아가 본다. 한때 모든 사진 폴더들이 고양이들의 사진으로만 가득 채워지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다행이다. 사진이 많이 남아있어서 이렇게 그때의 기억을 추억할 수 있구나. 내일부터 당장 사진기를 들고, 내 주변의 모든 일상을 다 기록해야겠다. 사진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예쁜 숙이의 모습을, 내 기억의 심연에서 끄집어 낼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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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3일...똘레를 보내주고 왔다. 아니, 똘레의 아픈 육신을 보내주고 다시 함께 돌아왔다. 이 세상 그 어떤 죽음이 아쉬움과 회한이 남지 않겠냐만은... 본격적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24시간도 안되어서 급작스럽게 마주했던 똘레의 죽음앞에, 난 여전히 가슴이 아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며칠의 시간을 다시 되돌릴수 있다면, 지금 똘레를 이렇게 보내지 않았을 것만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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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부터로 보면, 똘레와 가장 긴시간을 함께하셨던 우리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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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가 유독 잘따르고 좋아했던 우리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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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와 늘 함께 놀아주고자 했던 마음따뜻한 내 아내



   나를 포함해, 모든 가족들이 똘레의 마지막길을 배웅해주고 돌아오는길... 똘레의 엔젤스톤이 담긴 유골함을 품에 안고 돌아오던 길.  여전히 하늘에선 비가내렸다. 촉촉히 내리는 저 비가 차라리 좋았다. 똘레가 떠나가고 화창한 햇살을 마주해야 했다면 더 힘들었을 것 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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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이틀의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난 마음속에서 똘레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9년의 시간을 함께 했던 똘레. 이 녀석과의 시간을 다시 추억해보고 싶다. 아직 똘레를 떠올리며 아쉬움 섞인 미소를 지을 수 있기까지는... 나에게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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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블로그에 있던 글을 2011년 8월 12일 00시 50분에 옮겨 놓습니다.
- 글작성 시간은 원본 글의 작성시간에 따릅니다.

검이를 보내고, 지난주 내내, 많이 힘들었습니다. 죽음 그자체가 가져오는 커다란 벽때문이기도 했고, 그때 그순간에 조금만 잘 대처했다면, 검이가 살아있을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에, 또 더 잘해줄수 있었는데, 검이에게, 잘 대해주지 못한것이 너무나도 마음에 걸려서, 그 너무나도 깊은 후회가 마음을 후벼파더군요. '있을때, 잘해라~'라는 말은, 비단 남녀간의 문제에 한정되는게 아닌가봅니다.

삶과 죽음, 왜 그토록 철학자들이, 그 '죽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많은 사색과 고민을 했어야 했는지. 또 많은 종교들이 왜 저마다의 '내세론'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는지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무신론자입니다. 절대자로서의 '신'이라는 존재까지는 부정하고 싶지는 않으나, 특정한 '종파'를 따르고 싶은 생각은 없는 사람이지요. 예수를 신으로 믿는 사람도 있을테고,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으나, 마르크스의 말들을 경전 처럼 생각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탐크루즈 처럼, '과학'을 신으로 믿는 사람들도 있을테구요. 아니면, 어떤 신부의 '고해'처럼, '인류진화의 역사'가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껍니다. 각자 저마다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이지요.

제가 검이를 추억하는 글을 보면서, '과학적 이성'을 지닌, 혹자들은 이렇게 말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란, 생물학적 기능의 정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이지요. 특정한 문화 혹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은 자들과의 논쟁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전 훗날, 저희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더라도, 늘 제곁에서 저를 지켜주실꺼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게 설령, 나 혼자만의 '착각'속의 가정이던간에, 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함께 해왔던 세월속에서의 부모님의 따뜻함을 잊지 않는 이상, 그것은 분명 저에게 있어 엄연한 실존이자, 사실일것입니다. 그것은 '종교'로서의 믿음이 아니라, 함께 해왔던 시간들에 대한 '사랑의 기억'일 테니까요.

검이를 대하면서도,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이것도 엄연히 '구별짓기'라는 속성을 지닌, 문화의 문제일수도 있을꺼에요. 인간 뿐만이 아니라,  '동물'도 사랑했던 문화속에 있었던 사람들만이, 공유할수 있는 감정일껍니다. 그런것이겠지요. 검이는, 저에게 분명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9월 6일 새벽, 검이가 그렇게 무지개다리를 건너고나서, 몇시간동안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어제그저께만해도, 제가 기타칠때면, 꼭 자기가 관객이라도 되는것처럼, 옆에 의자에 앉아서 저를 응시하던 따뜻한 검이가 있었으니까요. 아니, 불과 몇시간 전만해도, 병원에서는 제대로 먹지도, 눈을 뜨지도, 일어나서 걷지도 못하던 아이가, 그래도 자기 집에 왔다고, 일어나서 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또 캔 하나를 다 먹어치우면,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검이였으니까요. 그러나, 죽음이라는 이름은, 체온을 앗아가버리고, 검이는 많이 차가워졌더라구요.

검이를 땅에 묻고 돌아올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반려동물 장례업체에 연락을 했습니다. 9월 6일 오후 2시 30분쯤에 연락을 했었는데, 1시간여 후에, 차가 저희 동네 입구까지 오더군요. 나머지 6마리의 냥이들에게, 검이와 인사를 시키고, 검이를 처음 구조한 그장소에 잠시 들렸다가, 차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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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장례업체로 이동하는중, 차안에서. 이제 다시 볼 수 없을, 검이를 눈에 가슴에 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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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의 마지막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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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아, 아픈 몸에서 벗어던지고, 우리와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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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의 엔젤스톤의 모습













검이를 다시 데리고 돌아오면서, 홍대에서 버스를 내려서, 늘 검이가 가던, 동교동의 동물병원으로 찾아갔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도, 검이가 발작하는 것때문에, 밤새 간호를 해주시면서, 아침에 퇴근하시곤 하셨거든요.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늘 검이가 좋아하던 장소에, 검이를 잠시 쉬게 했습니다. 늘 캣타워 아래에가서 앉아 있었거든요. 유독 검이가 좋아하던 장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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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검이











이렇게 검이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저희 부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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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이를 위해 마련한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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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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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Will Always Love You








































































그러다가, 문득 제가 기타칠때마다, 곁에와서 그 기타소리를 듣고 있던 화검이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하여, 제 기타의 이름을 '화검'이라 지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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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더욱더 소중해진 나의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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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 GUM
































기타도 못치는게, 기타 조금 알았다고 이런저런 '꿈의 기타'들에 눈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이제 이 기타는 평생 버릴수 없는 가장 소중한 기타가 되어버렸습니다. 열심히 기타 연습해서, 내년 9월 6일에는, 검이에게 '제대로된' 노래를 불러주려고 합니다.

지금은, 아직 손끝에서도, 검이의 감촉이 느껴지는 듯하지만, 시간이 흐르고나면, 그 아픔의 자리를, 부드러운 그리움이라는 이름의 감정이 채워주겠지요. End가 아닌 And를 위하여, 늘 검이와 함께 살아가려고 합니다. 또 언젠가 우리에게 다가올 제2, 제3의 검이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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